그 환자는 암 말기였다
유난히 기침과 인후통을 호소하던 남자 환자가 있었다. 나이는 60대 초반. 기침 증상 때문에 용하다는 한의원, 내과, 약국, 건강원 등 안 다녀본 곳이 없다는 그 환자는 생각보다 자주 약국에 왔다. 이유는 기침을 조절하는 약을 사기 위함이었다.
그 환자에게 약국에서 가능한 약들을 다 써 본 것 같다. 그 때 약국에서 쓸만한 기침약이란 기침약은 다 접해 본 듯. 한방과립제제는 물론이고 관련하여 좋다는 건강기능식품, 영양제, 염증약 등 가능한 수준의 것들은 다 동원해 봤다.
그렇게 그 환자의 기침 증상을 접한지 두어달쯤 지났을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나보다. 툭 튀어나온 한마디.
서울 큰병원 호흡기 내과 한번 가서 검사 받아보시면 어때요?
한번쯤 그 환자에게 폐 관련하여 CT, MRI 검사를 받아보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원인을 알면 제대로 치료할 수 있지 않겠냐며. 그런데 그 환자는 그 때까지 그럴 생각을 못 해 봤다는 것이다. 본인이 너무 건강한 사람이고, 이렇게 오래 아플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거다.
그래도 이렇게 기침 증상이 오래가는 건 한번 검사 받는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무언가 찜찜하다는 표정을 짓던(암이라면 어떻게해야 할지 이미 고민하고 있던 건 아닐까 싶은) 그 환자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약국을 나섰다. 그리고 몇 달이 흘러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니가 뭔데 병원에 가 보라고 해!
어느 날 갑자기 그 환자는 약국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그 부인이라는 사람이 내 머리채를 휘어 잡는게 아닌가.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당한다는게 이런 거구나! 하아~ 바로 경찰을 불렀고, 약국은 한바탕 소란으로 가득했다. 여기저기 집기들이 쏟아지고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그 기침으로 고생하던 남자 환자는 내 말을 듣고 서울 빅5 병원 중 하나를 갔다고 했다. 그리고 호흡기 내과에 가서 폐 X-ray를 먼저 찍었는데, 의사가 암일 것 같다고 정밀 검사를 하자고 했다는 거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환자의 상태는 비소세포성 폐암 말기. 그 때는 지금처럼 먹는 폐암치료제인 이레사, 타그리소 같은 약들이 국내에서 사용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결국 그 남자 환자는 절망감에 집으로 돌아왔고, 그 화풀이를 나에게 한 거다. 부인과 함께. 젠장. 병원 괜히 가라고 했나. 그렇게 화풀이를 했다고 생각했던지, 아니면 잘못했다고 생각했는지, 부서진 집기들을 변상하고 그 부부는 집으로 돌아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 환자분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 한달 후 부고 소식을 전해 들었을 뿐이다. 항암치료 한번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고 한다. 차마 그 한달간의 이야기를 물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부인 역시 생을 마감했다. 그렇게 약국에 오던 환자는 환자 목록에서 지워졌다...
그 일이 있은 후 환자에게 큰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을 때 이야기를 할지 말지 고민하게 된다. 정답은 없다. 질병이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치료를 했다면, 그것만큼 다행인 경우는 없다. 그런데 암 말기 환자, 그것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는 질병을 아는 것 자체가 고통일지도 모르겠다. 사망까지의 기간이 지옥일수도, 아니면 생을 정리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으니까.
아직도 정답을 찾지 못한 채 갈팡질팡이다. 약국에서 마주하는 사람 중 꽤 많은 사람들에게서 이런 기미를 보는데, 말을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에 싸이는 일이 점점 쌓여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