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돈과 미래의 돈이 다른 이유
금융의 세계관에는 성장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내일의 자산이 오늘보다 더 커질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금융을 할 이유가 없다. 내일의 자산이 오늘보다 더 커진다는 말은 반대로 말하면 오늘의 자산은 같은 가격을 가진 내일의 자산보다 더 높은 가치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내일 100원인 것은 달라질 여지가 없지만 오늘 100원인 자산은 내일 110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시간이 주는 가능성, 시간의 가치를 금융은 인정한다.
시간가치를 대표하는 요소는 이자다. 우리가 돈을 빌리고 나중에 갚을 때 빌린 돈과 같은 금액을 갚는다고 하면 돈을 빌려준 채권자 입장에서는 그 사이에 돈을 투자하지 못한 것에 대한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물론 내일의 세상이 오늘보다 더 성장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하는 이야기지만, 대개 경제는 성장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기회비용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돈을 갚을 때 빌린 것에 이자를 쳐서 갚는다. 일반적인 금융 용어로 이야기하면 채권에는 그에 맞는 금리가 있고, 금리는 시간가치를 대표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물론 금융이 성장하기 이전에, 오래전부터 이자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고리대금업이 성행했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돈을 빌린 뒤에는 높은 이자를 쳐서 돌려줬다는 것을 반증한다. 하지만 과거 고리대금업에서 이자를 받는 이유를 시간가치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근대 이전에 전 세계 성장률은 지금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낮았다. 산업화나 식민지 확보를 통한 성장이 아니라면 오늘날과 같은 고속 성장은 바랄 수 없었다. 실제로 고대나 중세 시대가 산업화 이후보다 시간상으로는 훨씬 더 길지만 그 당시의 시대상은 시시각각 변하지 않고 일정했다. 그러니 내일의 돈이 오늘보다 더 커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는 어려웠다. 그 당시 이자를 받았던 이유는 신용을 바탕으로 한 금융이 자리잡지 않아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금융의 용어를 빌리자면, 채권에는 신용 위험이 있기 때문에 위험에 대한 대가가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채권의 이자는 시간가치와 함께 신용위험을 고려해서 결정된다. 은행에서 대출 심사를 받을 때, 각자 가진 신용도에 따라 다른 금리가 제시되는 이유가 바로 신용 위험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용도를 잘 관리해야 한다. 아무튼, 성장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었던 과거에 이자가 존재했던 이유는 시간가치 때문이 아니라 신용 위험 때문이었다.
그러다 세계가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시간가치도 생겨났다. 이제는 누구나 시간가치를 인식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간의 가치가 모두에게 동일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같은 시간을 살아가지만 각자가 가진 시간이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시간가치의 본질은 기회비용이다. 같은 시간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시간에 3%의 수익을 얻을 수 있고, 누군가는 1%의 수익밖에 얻지 못할 수도 있다. 3%의 수익을 벌던 사람에게 시간가치는 3% 이지만 1%를 버는 사람에게는 3%가 되지 못한다. 시간가치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시간가치는 기회비용이고 경제학에서 기회비용은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시간가치가 다르다는 말은 같은 투자안을 가지고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1년의 시간가치로 수익률 1%를 가진 사람은 1년 뒤에 2%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겠지만 시간가치가 3%인 사람에게 이 투자안은 그리 탐탁지 않은 선택지이다. 우리가 가진 투자안은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어떤 투자안은 가까운 시일 내에 투자의 결과를 보여줄 수 있지만, 다른 투자안은 오랜 시간을 들여야 결과를 보여줄 수 있다. 또 어떤 투자안은 투자의 결과가 만기 시점에 한 번에 드러나지만 다른 투자안은 매년 일정한 현금흐름을 우리에게 가져다줄 수 있다. 각각의 투자안이 성과를 낼 수 있는 확률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모든 투자안은 각자의 현금흐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단적으로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9년 동안 매년 100만 원을 주는 투자와 10년이 되었을 때 1,000만 원을 주는 투자를 비교할 때 단순히 현금흐름의 합계가 더 크다고 해서 후자를 선택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투자안이 만들어내는 현금흐름을 한 시점에 뭉쳐서 평가해야 한다. 시간가치가 있다는 말은 돈이 시점별로 흩어져 있다면 비교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래서 금융에서는 모든 투자안이 만들어내는 현금흐름을 현재 시점에 맞춰 평가한다. 1년 뒤에 100만 원은 오늘의 얼마와 동일한가? 지금부터 평생 10만 원을 주는 연금은 오늘의 얼마와 동일한가? 금융은 항상 이렇게 질문한다. 그리고 이 질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바로 시간가치이다.
이렇게 미래의 현금흐름을 현재 시점에서 평가할 때 사용되는 시간가치를 우리는 ‘할인율’이라고 부른다. 대개 경제는 성장했기 때문에 시간가치는 양수(+)였고,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현금흐름을 시간가치를 고려해 현재 시점으로 가져오게 되면 항상 그 크기는 줄어들었다. 미래의 현금흐름을 현재 시점에서 평가할 때 할인되는 정도를 나타내기 때문에 ‘할인율’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혹시나 세계 경제가 성장을 멈추고 쪼그라드는 시기가 찾아온다면, 그래서 내일의 자산이 오늘의 자산보다 더 커지지 않고 작아진다면 그때는 할인율이 아니라 할증율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할인율이 금융에서 의사결정에 그토록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 한다면, 그 값은 어떻게 결정될까? 할인율의 본질이 기회비용이기 때문에 관점에 따라 이를 결정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개인이라면 자신이 얻었던 투자수익률에 기댈 수도 있고, 거기에 주관적인 생각이 관여할 수도 있다. 단,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할인율을 결정할 때는 위험한 투자에서 얻은 결과에 기대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위험한 투자는 실패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 위험 때문에 성공했을 때는 더 높은 수익을 가져다주게 된다.
시간가치로서 할인율이 갖는 의미는 그러한 투자를 하지 않았을 때 얻을 수 있었던 기회비용인데, 위험한 투자에 따른 성과는 항상 얻을 수 있는 결과가 아니라 기회비용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할인율을 고민할 때 ‘내가 언제든 얻을 수 있는 수준의 수익’을 생각해야 한다. 법인이라고 다르지 않다. 현대사회에서 법인의 주인은 대개 주주이기 때문에 주주요구수익률이 시간가치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 혹은 법인의 자기자본이익률이 기준이 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관점에서 할인율을 정할 수 있지만 위험을 고려하지 않아야 된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개인이든 법인이든 위험을 추가로 지지 않는 상태에서 얻을 수 있었던 수익의 기회가 바로 할인율을 결정짓는 기준이 된다.
이때 위험을 전혀 지지 않으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을 금융에서는 ‘무위험수익률’이라고 부른다. 할인율이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결국 모든 할인율의 기저에는 각자가 생각하는 ‘무위험수익률’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세상에 위험이 전혀 없는 자산, 무위험 자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안전자산이라고 부르는 것들도 상대적으로 크기는 작지만 위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상적인 무위험자산은 현실적이지 않기에 대표적인 안전자산의 수익률을 우리는 무위험수익률의 기준으로 삼는다. 오늘날에는 미국의 국채가 대표적인 안전자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채권은 구조가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위험을 가지지 않기도 하고, 대표적으로 채권이 갖는 위험은 신용위험인데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빚을 갚지 않을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미국 국채라 해도 만기에 따라 금리가 달라진다. 이를 설명하는 방법도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것은 더 긴 만기를 지닌 채권에 투자하는 사람이 유동성에서 더 많은 제약을 얻기 때문에 유동성 프리미엄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간에 따라 국채 금리가 달라지는데, 무위험수익률의 척도로서 미국 국채를 논할 때는 기간도 너무 길거나 짧지 않고, 가장 많이 거래되는 10년물을 기준으로 삼게 된다. 예를 들어 미국 국채 10년물의 금리가 1~2%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면 무위험수익률의 기준이 되는 금리가 1~2% 사이에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위험수익률의 기준인 미국 국채 수익률은 어떤 요소의 영향을 받아 움직이게 될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다 보면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복잡해 보이는 것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무위험수익률은 시간가치의 대표이다. 그리고 시간가치가 생겨난 이유는 세계가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간가치의 원동력은 성장률이다. 그래서 우리가 금융을 하고 싶다면 경제를 알아야 한다. 금융을 하려면 세상에 널려 있는 수많은 투자의 기회를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위험에 대한 선호에 따라 주관적인 의사결정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위험을 빼고 본다면 서로 다른 투자안에 할인율을 적용해서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할인율을 결정짓는 요소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경제가 서있다. 우리 경제는 내년에 얼마나 성장할 것인가, 이 사실이 시간가치를 결정하게 되고 서로 다른 투자안에 대한 우리의 의사결정을 바꾼다. 금융은 이렇게 경제와 이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