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금융과 가짜 금융
금융과 사기의 경계
금융은 참 묘한 경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금융상품이나 자산에 투자할 때 거기에는 항상 예상치 못한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금융에 뛰어드는 이유는 리스크를 감수했을 때 그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금융 같으면서 금융이 아닌 어떤 것들이 금융이라는 탈을 쓰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실현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마치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듯 금융이라는 이름으로 투자자들을 현혹한다. 그리고 그들이 이야기한 것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질 때쯤 슬그머니 자신들의 이익만을 취하고 발을 뺀다. 이때 자주 나오는 이야기는 금융이라는 것이 애초에 손실을 염두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발생한 손실도 투자자들의 책임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옳지 않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이익을 기대한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금융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중 어떤 것은 분명히 사기다. 우리는 리스크와 이익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어떻게 구분해서 진짜 금융과 가짜 금융을 구분할 수 있을까?
사실 ‘리스크가 있고, 그에 따른 보상이 있기 때문에 금융이다’라는 말은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세상 모든 일은 뜻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뜻대로 되면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세상 모든 일을 금융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되면 사업도 금융이고, 복권을 사는 것도, 심지어 명절에 고스톱을 치는 것도 금융이라고 해야 한다. 리스크와 초과이익의 존재가 금융이라는 도장을 찍어 줄 수는 없다.
금융이 사기나 도박이 아니라 금융이라는 엄연한 산업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거기에는 합리적인 기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누이 이야기해왔던 ‘성장’이다. 금융은 성장에 베팅하는 일이다. 우리가 어떤 기회에 자본을 투자함으로 인해서 그 기회가 실현되고, 그 실현의 결과는 우리 사회의 ‘부’를 증가시켜야 한다. 그게 성장이고 그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것이 금융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좋은 수익을 보장해준다는 말로 우리를 홀리는 수많은 것들이 있다. 그들은 무언가의 가격이 쭉쭉 상승하는 현상을 보여주면서 이 흐름에 합류하면 당신도 수익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가격의 상승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 가치의 상승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산이 자산인 이유는 그것을 소유함으로 인해서 미래의 경제적 효익이 우리에게 유입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산 가격이 상승하는 합리적인 이유는 그 자산이 가져다줄 수 있는 미래의 경제적 효익이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이 생산하고 있는 물건이 시장 지배력을 키워가고 있다면 과거에 비해 더 많은 매출을 올릴 것이고, 그에 따라 더 높은 순이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늘어난 순이익은 그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주주들의 몫이 된다. 이러한 기대가 합리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시장 지배력을 갖는 기업의 주가가 상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거래되는 어떤 자산은 실제로 자산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것을 소유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경제적 효익이 제공되지는 않는다. 물론, 그 대상 자체의 거래 가격이 상승한다면 싸게 사서 더 비싸게 파는 경우에 그 차익이 경제적 효익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건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폭탄을 돌리는 과정일 뿐이다. 가격이 상승하는 동안에는 그 말이 유효할 수 있지만, 가격이라는 게 무한정 상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젠가는 멈춰야 하는데 멈추는 순간 사람들은 그 자산의 가치를 떠올린다. 더 이상 가격 차이로는 자산이라는 말을 성립시킬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자산이라는 말이 가진 본질적인 정의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원점으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이건 아무런 경제적 효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즉, 자산의 가치가 0이다. 그런 인식이 드는 순간 ‘거래 가격으로 인정받는 자산’이라는 허황된 말은 붕괴된다. 붕괴되는 중에 누군가가 또다시 거래 ‘가격으로서의 자산’이라는 말을 주장하며 가격을 떠받칠 수 있겠지만 또다시 폭탄 돌리기가 시작될 뿐이다. 우리는 이것을 금융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건 단순히 가격 상승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한 도박일 뿐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여기에는 ‘성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끔 가격이 상승하는 현상을 보면서 금융을 떠올리지만 가격의 상승이 금융의 기초인 ‘성장’을 대변해주지는 못한다. ‘성장’은 그것이 실제로 효익을 가져다주고, 그 효익이 더 커질 때 말할 수 있는 개념이다.
‘성장’이라는 요인이 빠진 가짜 금융이 여기저기 퍼지는 현상은 대개 경기부양책이 사용될 때 심해진다. 경기부양책을 사용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시중에 화폐가 늘어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시중에 ‘가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화폐’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실제로 가치가 늘어났다면 경제가 성장했다는 뜻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진짜 금융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런데 경제 규모는 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화폐만 늘어나게 되면 아까 이야기했던 ‘가치는 그대로인데 가격은 상승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경제 전체적으로 이런 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에 거래가 가능한 모든 대상은 ‘가격 상승’을 겪는다. 그리고 그 가격 상승에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스토리를 붙여서 투자자를 모집하기 시작하면 폭탄 돌리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투자자를 모집하는 그들은 폭탄을 처음 돌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절대 폭탄에 희생되지 않는다. 그러니 경기부양책이 시시각각 쓰일 수밖에 없는 저성장 시기에는 더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투자하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일 가능성이 많은 시기다. 그리고 그 사이 모호한 경계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거기에 성장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성장 없는 투자 외에도 가짜 금융을 구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지금까지는 ‘수익’의 관점에서 가짜를 구별했다면 이번에는 금융의 다른 한 가지 요소, ‘리스크’의 관점에서 가짜를 구별하는 방법이다. 금융에는 반드시 리스크가 따라온다. 상대적으로 더 크거나, 작거나 하는 차이는 있지만 무엇인가에 투자하고 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뜻대로 되지 않을 리스크가 존재한다. 그리고 리스크에 대한 만고불변의 법칙이 하나 있다. 바로 ‘더 많은 리스크를 질수록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법칙이다. 그러니 가짜 금융을 찾는 방법은 단순하다. ‘리스크를 지지 않으면서도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은 언제나 거짓이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거기에는 분명히 리스크가 존재했지만, 나만의 방법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했기 때문에 적은 리스크를 가지고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보다 당신이 똑똑하다면 남들이 찾아내지 못한 기회를 발견해서 낮은 리스크를 지면서도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때는 저 말이 맞다. 하지만 어느 누가 자신이 세상 모든 사람들보다 똑똑하다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특히나 금융 시장에는 수많은 전문가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다. 그 많은 전문가들을 제치고 기회를 독차지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많지 않다. 새롭게 만들어진 기회가 낮은 리스크로 높은 수익을 보장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하나 둘 그 기회에 대해 알게 되면 파이 조각을 나눠 먹듯이 수익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그 수익을 나눠서 먹기 시작하면 자신의 리스크에 걸맞은 수익을 주는 투자안이 될 것이다. 초과 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 시기는 남들보다 빠르게 진입할 수 있는 그 ‘찰나’ 일뿐이다. 그리고 그 찰나는 대개 보통의 사람들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쉽게 생각해보면 된다. 당신 앞에 그 찰나의 기회가 떨어졌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누군가에게 그 기회를 같이 나누자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자신이 그 찰나를 향유하려고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러니 누군가가 당신에게 그 ‘찰나’를 같이 잡자고 이야기한다면 대개 그것은 둘 중 하나다. 그 사람이 사기꾼이거나, 그 사람도 사기당한 사람이거나.
내가 투자하는 대상이 리스크에 걸맞은 수익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일단 우리는 리스크가 거의 없는 상태의 수익이 어느 정도인 지 쉽게 알 수 있다. 은행 예금, 적금 금리나 증권사의 CMS 계좌 금리를 확인하면 된다. 이런 상품들은 금융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원금을 잃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이 투자할 수 있는 대상 중 리스크가 거의 없는 투자 상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직접 살펴보면 알겠지만 리스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생각보다 더 낮다. 또 리스크가 있는 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펀드 수익률을 보면서 감을 잡을 수 있다. 편드는 규제를 받기 때문에 자신의 리스크를 숨길 수 없는 상품이다. 원금 손실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 전문가가 분류한 기준에 따라 낮은 리스크로 분류되는지, 높은 리스크로 분류되는지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펀드들이 과거에 얼마나 높은 수익을 기록해왔는지 확인해보면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수익을 얼마나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다. 일시적으로는 높은 수익을 보이는 경우가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리스크를 꽤 지고 있더라도 터무니없는 수익은 불가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누군가 우리에게 별다른 위험을 지지 않으면서도 거의 두배에 가까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말을 쉽게 한다면 그 말은 당연히 ‘가짜’다. 금융은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격언이 가장 잘 맞는 산업이다. 항상 명심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