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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Dec 19. 2022

금융시장의 사이클

부채와 통화가 만들어내는 장기 사이클에 대해

금융시장은 단기적으로 특정한 사건에서 발생하는 충격에 따라 흔들린다. 우리가 호재나 악재라고 부르는 뉴스에 따라 전체가 흔들리기도 하고, 작게는 특정 종목이나 지수만 흔들리기도 한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장기적 관점으로 금융시장을 바라보기도 어렵고 개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요즘같이 단기 변동성이 큰 시장환경에서는 충분히 긴 안목을 가지고 금융에 발을 들이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변동성이 큰 환경이라고 해서 단기적 관점의 금융과 투자가 항상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장기적 관점이 투자는 단기 변동성에 의해 한 번 흔들리더라도 장기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흐름을 기다릴 수 있지만 단기점 관점의 투자는 한 번 단기 변동성에 의해 반대 방향의 흐름이 일어나게 되면 그 이상의 기회는 없이 손실과 함께 금융시장에서 발을 빼야 한다. 그만큼 여전히 금융시장을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유효한 방법이다.


장기적 관점으로 금융시장을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사이클'이다. 경제가 호황, 불황을 주기적으로 반복한다고 하는데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로 사이클을 갖고 사이클의 규모, 즉 주기에 따라 여러 사이클을 가지고 있다. 레이 달리오도 자신의 저서에서 이 사이클의 존재를 수없이 강조한다. 그의 책이 그만큼 두꺼운 이유는 그가 사이클을 가장 먼 주기까지 관찰하려 노력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 수백 년에 걸친 금융시장 사이클에 대한 관찰 보고서가 그의 책에 담겨 있다. 그러니 우리도 우리 앞에 놓인 금융시장의 사이클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을지 알아야 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아주 긴 주기의 사이클은 우리 삶이나 투자 기간보다 길기 때문에 무시해도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긴 주기의 극점, 사이클이 꺾이는 순간이 우리 눈앞에 와 있다면 전혀 무시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중요한 건 사이클의 주기가 어떻게 되느냐가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인 사이클은 무엇이고, 그 사이클은 우리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사이클을 만들어내는 동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파생상품의 만기 도래 시점과 같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일에 의해 생겨나는 작은 사이클이 있을 수도 있고, 정권교체와 같이 금융시장 바깥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사이클도 있다. 그런데 이 모든 동인을 하나하나 따지게 되면 너무 복잡하다. 어떤 동인은 상승 사이클을, 어떤 동인은 하락 사이클을 일으키고 작용도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진다. 무엇이 사이클을 지배할지 알 수 없게 되고 혼란스러운 마음은 장기적 시선 자체를 흐리게 된다. 그러니 세상 모든 일을 시시각각 연산할 수 있지 않은 한 우리는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잘라낼 필요가 있다. 오컴의 면도날처럼. 그렇게 잘라내고 나면 가장 중요한, 근본적인 사이클의 동인은 '부채'와 '통화'가 아닐까 싶다. 물론 사이클을 수없이 강조한 레이 달리오도 호황, 불황 같은 개념보다는 '부채가 만들어내는 사이클'의 역할을 강조했다.


사실 부채가 없으면 기본적으로 사이클이라는 게 만들어지기도 어렵다. 하나를 생산해서 하나를 팔고, 그 돈을 생산에 투자해서 두 개를 생산해서 또 두 개를 팔게 되면 사이클이라는 게 생기기 어렵다. 꾸준한 성장과 이로 인한 성장 모멘텀이 완만한 경사를 만들어낼 뿐이다. 그런데 보통의 사람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완만하더라도 성장의 여지가 보이면 그 미래를 최대한 앞당기고 싶어 한다. 하나를 생산해서 팔고, 그 돈으로 두 개를 생산하는 느긋한 미래를 기다리지 않고 앞으로 두 개를 생산할 수 있으니 투자자들에게 돈을 빌린다. 빌린 돈으로 2개를 생산하고 그에 따른 이익을 투자자들에게 좀 나눠주면 된다. 그러면 나는 두 개를 생산해서 판매하고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 가능성을 본 인간에게는 욕심이 생긴다. 그 욕심을 실현해주는 요소가 바로 부채다. 부채는 인간의 욕망을 담고 있다.


그렇게 미래의 성장을 담보로 부채가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한다. 두 개를 생산하고 났더니 돈만 더 있다면 더 많은 것들을 생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많은 부채를 끌어오게 되고 더 많이 생산한다. 그런 식으로 성장의 속도를 계속해서 가속화한다. 문제는 이 흐름이 '성장을 담보함으로써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이다. 약속된 성장을 이뤄내지 못하게 되면 부채는 발목을 잡기 시작한다. 돈을 빌려주면 10개를 생산할 수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10개를 만들어내지 못하게 되면 빌려준 돈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지불할 수 없게 된다. 욕심이 과해서 해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게 되는 순간 부채 사이클은 삐그덕 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부채 사이클이 삐그덕 대기 시작하면 금융은 바로 내리막길을 걷게 될까? 대체로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상당히 특수한 경우인데 바로 '돈을 마음껏 찍어낼 수 있는 경우'이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며 국가 정도는 되어야 이런 방법을 택할 수 있다. 국가라고 해도 모두가 이럴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기축통화국은 되어야 이 방법이 먹힐 수 있다. 이들이 금융이 내리막길을 걷지 않도록 막는 방법은 돈을 찍어내서 빚을 갚는 것이다. 보통은 성장해서 남은 파이로 빚을 갚고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데 성장이 잘 안 돼서 남는 것은 없으니 일단 돈을 찍어서 빚과 이자를 갚는 것이다. 그러나 화폐는 교환의 수단, 표시단위일 뿐 실질적인 가치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맞지 않다. 돈을 찍어내서 돈을 갚게 되면 새로 찍어낸 돈 때문에 화폐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돈을 갚아도 갚은 게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건 이상적인 현상이고 실제로 화폐가치의 하락은 그렇게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일시적으로는 돈을 찍어서 갚는 일로 부채 사이클이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기축통화국이라고 해서 언제나 화폐가치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방법도 지속하게 되면 결국은 금융시장의 하락을 막을 수 없다. 오히려 심하면 화폐가치가 무너져서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지위도 잃어버릴 수 있다.


요즘의 금융시장과 세계 제일의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이 사이클의 변곡점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 이전에도 세계 경제는 그리 좋은 환경에 놓여 있지 못했고 경기부양을 위해 꾸준히 저금리를 유지해왔었다. 세계 경제의 성장기에 부채는 점점 더 늘어났지만 어느 순간 부채 증가를 성장이 담보할 수 없는 수준이 된 것이다. 저금리는 부채에 대한 대가가 낮다는 뜻이다. 이제는 빚에 대한 대가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돈을 빌려주지 않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는 전 세계 금융 환경에 거대한 충격을 줬고 각국 중앙은행, 특히 미국은 경기부양을 위해 엄청난 양의 통화를 발행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 채권 투자자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미국의 성장에서 남는 파이를 위해 돈을 빌려줬는데 성장이 시원치 않다 보니 금리 수준이 높지 않았고, 심지어 경기 회복을 위해 돈을 풀다 보니 새로 찍은 돈으로 내 빚을 갚는 것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 채권 투자자들은 이런 이중고를 겪어왔다. 물론 아직 거대한 변화는 없지만 이 충격은 미국 달러와 미국 채권에 대한 신뢰에 어느 정도는 타격을 줬다. 아직 괜찮지 않나 싶다고 해도 타격이 없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통 충격은 한 번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미국채의 주요 투자자인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미 국채를 대량으로 매도한 적이 있었는데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다. 또 최근 중동 국가에서 원유를 달러가 아닌 위안으로 결제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는데 물론 달러의 패권을 가져오려는 중국의 노력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달러에 대한 믿음이 흔들려서 일어난 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어쨌든 미국의 부채와 통화는 변곡점에서 흔들리고 있다.


사이클이라는 건 한 번 방향을 정하게 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그래서 사이클이다. 미국의 부채와 통화 사이클은 변곡점 위에서 흔들리고 있지만 아직 하락으로 마음을 정한 상태는 아니다. 지금껏 상승해왔고 상승 동력을 천천히 잃어가다가 평평한 지점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다시 상승 동력을 얻어서 상승 사이클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하락 사이클이 이어질 가능성도 전혀 배재할 수 없으며 부채와 통화는 신용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 하락 사이클을 맞게 되면 예상보다 걷잡을 수 없는 흐름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채권과 통화를 가진 투자자들을 희생시켜왔다면 이제는 그들이 가진 것의 가치를 지켜줄 필요가 있는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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