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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an 10. 2023

보험 리스크의 구분

시간과의 관계성에 따라 구분한 보험 리스크

보험은 불확실성을 거래하는 일이다. 우리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 그로 인해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금전적인 손실이 발생하는 일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한다. 그리고 이때 이러한 '일'에 해당하는 것들은 질병, 사망, 장해와 같이 신체에 일어날 수 있는 것부터 화재, 수해와 같이 재산에 일어날 수 있는 일, 그리고 제3자에게 자신의 과실로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한 배상책임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 중 신체에 대한 것을 다루면 생명보험, 신체가 아닌 것을 다루면 손해보험이라고 분류한다. 물론 국내 법규상으로는 신체에 대한 것이지만 사망을 다루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손해보험에서도 다룰 수 있기 때문에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건 국내 법규상의 특이점에 해당하므로 엄밀히 말하면 생명보험(LIfe)과 손해보험(P&C)으로 구분 짓게 된다. 물론 여기까지는 흔한 이야기다.


리스크를 가진 일이 신체를 대상으로 하는지 여부로 생명, 손해보험을 나눌 수 있지만 '금융을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 구분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없다. 금융은 리스크를 수치로 환산한다. 수치로 환산되는 리스크에 그 대상이 신체냐 아니냐는 사실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리스크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가이며 그 성질이 수치로 환산되는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금융을 한다면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을 인보험과 물보험으로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리스크의 특성에 따라 구분해야 한다. 신체가 가진 불확실성과 물체가 가진 불확실성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신체의 불확실성은 시간에 대해 횡적이지만 물체의 불확실성은 시간에 대해 종적이다.


불확실성이 시간에 대해 횡적이냐 종적이냐 하는 말이 무슨 뜻인가 싶을 수 있는데, 시간에 대해 횡적이란 말은 그 리스크가 긴 시간에 걸쳐 발생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시간에 대하 종적인 리스크는 긴 시간에 걸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점을 정하더라도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라는 뜻이다.


신체의 불확실성 중 대표적인 질병, 사망, 장해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물론 개인의 입장에서는 언제, 얼마나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러한 리스크를 인수하는 보험사 입장에서 바라보면 언제, 얼마나 발생할지 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건강보험 통계를 가지고 산출한 결과 40대 남자가 특정한 질병에 걸릴 확률이 3%라고 하면 그 특정한 질병을 담보로 하는 보험을 판매했을 때 보험금이 지급될 확률은 3%에 가까울 것이다. 물론 보험에 가입하고 나면 건강관리에 소홀에지기도 하고 보험금을 타기 위해 가입하는 도덕적 해이 현상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3% 보다는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우선 통계적으로 3%의 사람들이 병에 걸린다고 하면 계약자 수를 충분히 늘릴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실제 지급 비율은 우리가 예상하는 숫자에 수렴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리스크라고 부르는 것은 확률적인 현상 그 자체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3%의 확률로 일어나는 사건 자체가 리스크인 것이 아니라 3%라고 예상했지만 3%를 벗어나는 일이 리스크다. 그러니 보험사 입장에서 볼 때 통계가 충분하다고 가정하면 신체 관련 리스크는 크지 않다.


그렇다면 생명보험사는 보험 사업으로 인한 리스크를 느끼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 한 신체 리스크에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특정 시험, 혹은 지금 이 순간에 40대 남자가 특정한 병에 걸릴 확률이 3%라고 하면 그 예상은 거의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10년 뒤에도 그 확률이 3% 일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의학기술의 발달은 그것과 비슷한 새로운 질병을 찾아내기도 하고 그 질병 자체의 진단 또한 더 정확하게 해낼 수 있다. 사람들의 생활습관이 달라지면서 질병의 발생 확률이 달라지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환경도, 사회도, 기술도 모두 변한다. 그 변화에 따라 우리가 예상하던 확률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 신체를 담보하는 것에 대한 리스크는 여기서 발생하고, 이것을 '시간에 대해 횡적인 리스크'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보험사가 신체 관련 보험을 매년 갱신하면서 보험료를 재산정할 수 있다면 거기에 리스크는 거의 없을 것이다. 매 해마다 그때의 최신 통계를 사용해서 보험료를 산출하고 그 값을 받으면 된다. 문제는 신체에 대한 보험은 '장기 계약'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오늘 책정한 보험료를 가지고 앞으로 20년, 30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은 3%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던 질병이 10년 뒤에는 5%가 될 수 있고 30년 뒤에는 10%가 될 수도 있다. 생명보험사의 리스크, 예상치 못한 손실의 원인은 여기에 있다. 물론 보험료를 산출할 때는 보험사 자체 비용에 대한 가정이나 금리에 대한 가정도 반영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사업비나 이자율이 달라지는 것에 대한 리스크도 마찬가지로 발생할 수 있다. 무엇이든 지금은 예측하기 쉬운 것도 긴 시간 간격에 펼쳐 놓으면 예측하기 어렵다. 생명보험사나 신체 관련 보험을 판매한 손해보험사가 걱정하는 것은 이것이다.


반대로 재산이나 배상책임을 담보하는 손해보험의 경우 시간이 만들어내는 리스크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손해보험은 보험기간이 대체로 1년이기 때문에 갱신을 하면서 보험료를 매번 새로 책정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책정한 보험료가 10년 후에 적정하지 않을 것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 말이 손해보험사가 보험계약 인수에 따른 리스크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손해보험은 담보 특성상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아도 충부한 리스크를 가진다. 신체를 대상으로 하는 담보가 지금 시점에는 예측 가능했던 것과 반대로 물체를 대상으로 하는 담보는 지금 이 시점에도 예상할 수 없다. 사람들 대상으로 만든 통계는 모수도 충분하고 나이나 성별로 구분했을 때 같은 집단 내 사람들의 동질성도 충분히 획득되기 때문에 비교적 정확하다. 그러나 물건은 전혀 다르다. 같은 시기에 지어졌고, 같은 용도로 사용되는 건물이라고 해도 무엇으로 지었는지, 구조는 어떻게 되는지, 그 안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주변 환경은 어떠한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러니 비교적 동질적인 집단을 잡고 통계적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예측이 쉽지 않고, 같은 집단 내에 모수도 충분하지 않다. 40대 남자의 질병 발생 확률이 3%라는 말과 상업용 건물의 화재 발생 확률이 3%라는 말은 모수의 충분성과 동질성을 고려할 때는 전혀 다른 힘을 갖는다. 전자는 예측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지만 후자는 그렇지 못하다. 자주 이야기하는 것처럼 리스크는 확률 자체가 아니라 예상을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굳이 시간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는 것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손해보험사는 생명보험사 이상의 리스크에 노출된다. 그리고 그 리스크는 '시간에 종적인 리스크'라고 구분할 수 있다.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는 신체를 대상을 하는 담보의 여부에 따라 구분했을 때 각각 시간에 횡적이고 종적인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보험사가 자신들이 노출된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재보험이다. 보험사의 보험이라고 하는 재보험을 통해서 보험사는 자신들이 가진 리스크의 일부를 재보험료를 주고 재보험사에 전가하게 된다. 우리가 보험에 가입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다만, 내가 그들의 리스크를 시간에 횡적이고 종적인 것으로 각각 구분한 이유는 그 성질에 따라 재보험사와의 관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리스크를 전가하고 받는 관계에서 주도권은 리스크가 얼마나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는 '뚜렷함'이란 주관적인 감각이다. 내가 암에 걸릴 확률이 1%라고 했을 때 누군가는 그 1%로 발생하는 사건을 중대한 위협으로 느끼고 또 누군가는 희박한 일, 혹은 발생하더라도 적절히 치료를 받으면 되니 삶에 큰 위협을 줄 만한 일은 아닌 것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이렇듯 같은 리스크를 보더라도 인간이 갖는 주관적인 특성에 의해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보험 관계에서의 주도권' 그리고 '리스크에 대한 주관적 의미부여'는 보험사와 재보험사 간의 보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거래 관계에서 물건을 사거나 금융상품을 사는 쪽이 갑이고, 판매하는 회사는 을이다.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보험사와 재보험사의 관계에서도 일반적으로는 보험사가 갑, 재보험사가 을에 해당한다. 그런데 보험사가 재보험사에 특정한 리스크를 전가할 때 그 리스크가 보험사 입장에서 뚜렷하게 인식되는 것이라면 거래 관계의 주도권은 어느 정도 재보험사에게 넘어갈 수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 보험에 대한 니즈가 충분하기 때문에 재보험사도 그 니즈를 느끼고 대등한 입장에서 거래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가되는 대상이 분명히 리스크지만 보험사에게 뚜렷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면 같은 규모나 수준의 거래를 하더라도 재보험사보다 보험사에게 더 큰 주도권이 주어질 수 있다. 기본적으로도 갑의 위치에 있는데 더 확고한 주도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균형을 잡기 어려운 관계에서는 균형 있는 거래 조건이 형성되기 어렵다는 것도 쉽게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보험사 입장에서 생명보험의 리스크와 손해보험의 리스크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일까? 전자는 긴 시간을 고려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리스크이며 후자는 지금 당장 닥쳐온 리스크다. 우리는 먼 미래에 있는 불확실성보다 눈앞의 불확실성을 더 두려워한다. 같은 크기의 리스크를 갖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먼 미래에 닥쳐올 수 있는 것이라면 상대적으로 무겁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대체로 갖는 인식의 특징이다. 이 말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우리가 리스크로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눈앞의 것과 미래의 것이 있을 때 상대적으로 눈앞의 불확실성을 더 크고, 뚜렷하게 인식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더 크고 뚜렷하게 인식하는 것에 우리는 더 후한 값을 쳐준다. 그래서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각각의 재보험을 비교해보다 보면 생명보험의 재보험이 더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먼 미래에 있는 리스크를 보험사가 인식하도록 만들고, 그에 걸맞은 재보험료를 받아내는 과정은 쉽지 않다. 반대로 눈앞의 리스크는 특별한 노력 없이도 비교적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에 재보험료를 받는 것에도 어려움이 많지는 않다. 특히 요즘같이 자연재해로 인해 눈앞의 불확실성이 더 커지고, 또 뚜렷해진 상황에서는 손해보험의 재보험자들은 거래를 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고 오히려 조건을 정할 때 갑의 위치에 있는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이 모든 차이가 시간에 따라 종적이고 횡적인 리스크의 차이, 그리고 그러한 차이를 인식하는 우리 인간이 가진 특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생명보험에도 시간에 따라 종적인 리스크를 전가하는 재보험 계약들이 있다. 재보험은 계약 형태를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은 고려하지 않고 손해보험과 같이 1년마다 계약을 체결할 수도 있다. 다만 단순히 1년으로 기간을 줄이게 되면 신체를 담보로 하는 보험은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예측 가능한 것이라 리스크가 거의 없다. 예측이 가능하고, 전가할 리스크가 없으니 재보험계약을 굳이 체결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신체를 담보로 하면서 1년 내에 리스크를 키울 수 있는 계약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재보험계약의 형태는 대체로 비비례재보험이다. 특정한 수준 이상의 거대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만 보상하는 형태를 의미하는데 이런 식으로 계약을 만들게 되면 단기간에도 충분히 인식 가능한 리스크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뚜렷하게 느껴지는 리스크의 특성상 생명보험의 비례 재보험보다 비비례 재보험이 더 동등한 입장에서, 균형 잡힌 조건으로 재보험 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물론 시간에 따라 발생하든 그렇지 않든 리스크는 리스크다. 그러니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 모두 재보험에 대한 니즈를 느낄 것이고 계약은 꾸준히 체결될 것이다. 그러나 그 리스크가 인간적인 관점에서 뚜렷하게 느껴지는가의 여부는 단순히 인문학적인 것이나 심리학적인 사실이 아니라 계약 조건과 수익 자체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는 가에 재보험사의 실력이고 수익성을 결정짓는 하나의 요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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