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금융을 특징짓는 레버리지란 무엇인가
현대 금융은 레버리지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버리지에 익숙하지 않다면 이 말이 무슨 뜻인가 싶을 수도 있다. 좀 더 쉬운 용어로 바꿔서 이야기하면 현대 금융을 만든 것은 '빚내서 하는 투자'라는 말이다. 금융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과거와 오늘날의 금융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빚에 대한 관점'이라고 했었다. 과거에는 돈이 정말 급할 때만 돈을 빌렸지만 요즘은 돈이 필요해서 돈을 빌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돈을 빌려서 더 큰 투자를 하기 위해 빌리는 사람도 많다. 이런 사람들, 필요에 의해 빌리는 것이 아니라 빌리는 것 자체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현대 금융의 특징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레버리지'라고 부른다.
산업혁명 이후 오늘과 같은 금융이 생겨나는 과정에서 전 세계는 유래 없는 성장기를 겪었다. 인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연간 1%의 성장도 달성하지 못했지만 산업과 과학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면서 1%는 물론이고 두 자릿수대의 성장률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 폭발적인 성장은 '빚'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을 바꿨다. 빚에는 이자가 붙기 마련이니 빚을 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이었다.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빚을 내는 것을 피했다. 그런데 성장률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자보다 더 큰 수익이 가능해진 것이다. 매년 5%의 이자를 내야 하더라도 투자를 통해 매년 10%의 수익을 낼 수 있다면 5%는 고스란히 내 몫이 된다. 5%면 과장해서 말한 것이지만 사실 현실에서는 수익과 비용의 차이가 1%, 아니 1bp인 0,01%만 되더라도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낸다. 0.01%는 작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그 옆에 수십조 단위의 거대한 숫자가 붙으면 상황은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크기보다는 '수익이 비용을 초과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라는 인식이 가장 큰 변화였다.
일단 돈에 대한 수익과 비용, 즉 투자수익률과 대출이자의 관계에서 수익이 우위를 점하고 나면 빚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달라진다. 빌리는 것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굴리는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 큰 수익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러니 이제는 덜 빌리는 것이 아니라 '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빌리는 것'이 좋다.
그런데 대출을 해보면 그게 쉽지만은 않다. 더 많이 빌릴수록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빌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신용이 좋지 않거나, 큰 기업이 아닌 개인이라면 제약은 더 크다. 나는 확실한 투자처가 있다고 생각해서 내가 가진 돈의 10배, 100배까지도 빌려서 투자하고 싶지만 부족한 나의 신용은 그만큼의 대출을 허락하지 않는다. 빚에 대한 인식은 달라졌지만 현실은 그 인식을 쫓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것이 '파생상품'이다. 선물, 선도거래로 시작한 파생상품은 처음에는 사거나 팔 물건의 가격이 미래에 달라질 위험을 제거, '헤지(Hedge)'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변동성으로 표현되는 '위험'은 쉽게 제거되지 않는다. 한쪽에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반대쪽에서는 그 위험을 인수해야 한다. 마치 보험처럼. 그러니 파생상품을 통해 헤지가 가능하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파생상품을 통해서 더 큰 위험을 지는 투자도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그렇게 파생상품의 한 축은 위험한 투자, 즉 '레버리지를 극대화하는 투자'를 위해 발달했다.
대출을 통한 레버리지 활용은 투자금 자체를 늘려서 투자하는 것인 반면 파생상품을 통한 레버리지 활용은 투자금은 그대로 유지하고 투자의 결과만 늘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2배의 투자 효과를 얻고 싶을 때 대출을 활용하려면 내가 가진 돈만큼 추가로 대출을 받은 뒤에 투자를 해야 하지만 파생상품을 활용하고 싶다면 돈은 빌리지 않은 상태로 내가 원하는 투자처의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하는 파생상품에 투자하면 된다. 파생상품은 직접 투자 대신 증권사의 돈으로 투자하고 투자수익, 즉 '차익'만 본인이 부담하는 방식을 통해 운영된다. 이자나 수수료 같은 요소를 빼고 생각하면 대출로 투자금을 2배로 늘린 뒤에 투자해서 투자한 자산의 가치가 10% 증가하게 되면 대출금을 갚고 나서 20%의 수익을 남길 수 있다. 이때 대출을 하지는 않고 가진 돈 그대로 2배로 추종하는 파생상품에 투자하게 되면 똑같이 20%의 수익을 남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출에 비해 파생상품을 통한 레버리지 활용이 가진 장점은 대출에 따르는 이자나 수수료, 절차보다 파생상품을 활용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적고 더 큰 비율의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문제는 파생상품이 레버리지 투자에 따른 차액만 결제하는 방식인 만큼 레버리지를 크게 늘려놨을 때 큰 손실을 보기 쉽다는 점이다. 대출을 통해 2배의 투자를 하고 난 뒤에 투자 자산의 가치가 50%, 즉 절반이 되면 내 투자금도 2배의 절반, 즉 1배가 되기 때문에 가진 돈 전체만큼의 손실을 보게 된다. 다만 대출을 했다는 것은 아무튼 내 수중에 있는 돈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가진 돈 전체의 손실을 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산을 팔지만 않으면 자산 가치가 다시 상승하는 것을 기다려볼 수 있다. 반대로 파생상품을 통해 2배 투자를 한 뒤에 자산 가치가 50%가 된다면 50%의 2배, 즉 100%에 해당하는 손실을 정산해야 한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투자자의 손실이 그의 자본금보다 커지게 되면 이후의 손실이 자신들 몫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평가손실을 계속 추적해서 자본금과 비교하고, 자본금을 평가 손실 대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한다. 이것을 '증거금 제도'라고 한다. 이 증거금 제도로 인해 이 상황에서 자산 가격이 절반이 되게 되면 이 파생상품 투자는 청산된다. 증거금과 평가손실을 서로 상계하고 거래를 종료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후에 자산가격이 다시 상승하더라도 회복할 여지가 없어지게 된다. '청산', 이것이 파생상품을 통한 레버리지 투자가 대출을 통한 레버리지 투자와 달리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종종 엄청나게 큰 투자 손실에 대한 뉴스가 나오기도 하는데 이러한 손실이 발생하게 되는 원인은 대체로 이 파생상품을 통한 레버리지 투자 때문이다. 대출을 활용했다면 실현하기 전까지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큰 손실을 바로 기록하지 못하지만 파생상품은 자동으로 청산되면서 손실이 실현되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리고 주식시장 같은 곳에서 레버리지 활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다가 하락세가 이어지게 되면 파생상품 투자를 한 누군가의 청산이 또 다른 하락세로 이어지면서 연쇄 청산이 시작되기도 한다. 마치 하나의 은행 도산이 다른 은행의 연쇄 도산을 만들어내듯이 누군가의 청산이 자산가격을 떨어트리면서 연쇄 청산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시장에 레버리지가 얼마나 짙게 깔려 있는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레버리지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지금 당장 수익률이 잘 나오고 있거나 자산가격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더 큰 수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 상승새가 꺾이는 순간 거품도 연쇄적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최근에도 CFD를 통한 투자가 연이어 청산되며 몇 개 종목의 주식이 연이어 폭락했다. CFD도 설명을 읽다 보면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10%-40%까지의 증거금을 활용하는, 즉 뒤집에서 보면 2.5배에서 최대 10배까지의 레버리지 투자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파생상품이다. 그 배수를 노린 투자에서 상승세가 꺾였을 때 청산이 이어지며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현대 금융은 레버리지의 활용에 대한 니즈를 만들어내면서 더 커지고 복잡해져 왔다. 그만큼 요즘은 금융을 할 때 레버리지를 접하지 않을 수가 없는 환경이다. 대출이나 파생상품을 통해서 직접 관여하기도 하고, 직접 관여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레버리지 투자에 따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만큼 레버리지가 가지는 특징과 그 의미에 대해서 한 번씩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