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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석 Dec 29. 2021

극부부도#1. “아, 제 마누라 말입니다.”

1.

꽤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처음 인턴으로 입사했던 한 외국계 기업은 일본으로 약 일주일간 연수를 보내줬다.


이 기업은 직책 대신 ‘00님’이란 이름 내지는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는 독특한 조직문화를 최초로 도입했던 곳인데,

상호 존중으로 조직원들의 만족감이 높다고 소문이 나면서 국내의 몇몇 대기업들도 이를 받아들인 바 있다.


연수기간 당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잠자는 시간만 빼곤 계속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니, 동기들과는 꽤 사적인 이야기들이 오가곤 했다.

이미 결혼을 한 채 입사한 나는 그들 사이에서 나름 화제성이 있는 인물이었다.


이야기를 나눌 때면 ‘결혼’은 단골 대화 주제였다.


“나랑 와이프는 이러이러하게 만났어”

“우리 와이프는 이런이런 친구야.”


기혼자임을 밝힌 마당에 내 와이프에 대해서도 누가 물을 때면 숨김없이 이야기하곤 했다.

 

하루는 동기 한 명과 단 둘이 담배를 피우게 됐다.

그는 넌지시 떠보듯 나에게 이런 얘기를 던졌다.


“우리보다 한참 나이 많은 분 중에 내가 존경하는 형이 있어. 그 형은 항상 자기 와이프를 지칭할 때 ‘아내’라고 표현하더라. 근데 난 참 그게 좋아 보였어.”


그 친구는 나에게 조언을 했다.

아마도 내가 ‘와이프’라는 호칭으로 아내를 언급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거나, 좀 더 존중이 섞인 표현을 썼으면 하는 바람에서 한 얘기였을 거다.


아니면, 그만큼 ‘호칭’에 민감한 회사다 보니 그랬는지도.


2.

어쨌거나 그 얘긴 설득력이 있었다.


난 그날부터 바깥에서 반려자에 대한 언급이 있을 시 항상 ‘아내’라고 표현하고 있다. 무려 지금까지 절대 빼놓지 않고 말이다.

‘아내’라는 표현보다 앞서는 것은 이름이다. 내 아내를 아는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선 이름으로 언급했다.


지금 와서 그 동기가 한 말을 곱씹어본다. 맞는 부분도 있고 반론이 가능한 부분도 있다.


언어에는 감정이 있다.

일반론적으로 ‘마누라’나 ‘와이프’보다는 ‘아내’라는 표현이 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으로 남편이 배우자를 지칭하는 표현을 단계화시켜볼 수 있다.


애엄마=집사람=마누라 <<< 와이프 < 처 < 아내


애엄마나 집사람이라는 표현은 다분히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에서 기인하고 있다.

딱히 실려있는 감정은 없다고 하나 여성 입장에선 불편하다. 저 두 단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집에서 애나 봐”라고나 할까?


마누라.. 이건 대체 무슨 단어인가?


‘마주 누운 여자’라는 얘기부터 조선시대 대비나 세자빈 등 궁중의 높은 여성을 일컫던 ‘마노라’까지 다양한 썰이 있으나 확립된 어원은 없는 듯하다.


언어는 유기체이므로 어원이 확실치 않을 경우엔 현재 어떻게 받아들이고 쓰는지로 판단해야 온당할 것이다.


마누라는 쓰임새가 워낙 다양해서 상황에 따라 비하의 의미를 담을 수도 있고, 애정을 담을 수도 있다.


“우리 마누라 오늘 고생 많았네” 등을 토닥여주거나 꼭 안아주며 직접 대상 앞에서 쓸 경우에는 애정만이 담긴 표현이라 불편함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제삼자 앞에서 “우리 마누라가…”라고 지칭을 할 경우에는 다소 하대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최소한 상호존중보다는 우월적 지위를 은연중에 나타낼 가능성이 있다.


‘와이프’의 경우도 복잡하다.


일단 영어 단어에서의 ‘wife’란 표현은 대단히 중립적이다.

그런데, 한국말로 ‘와이프’라고 표현하면 이 중립성에서 다소 벗어나게 된다.


신문이나 방송 등 미디어에서 ‘누구누구의 와이프’라고 표현하지도 않고, 제 스스로 공식적인 석상에서 누군가가 ‘와이프’라고 표현하지도 않는다.

분명 마누라보다는 적합성을 갖는 단어이나 일상적으로 와이프라는 단어로 자신의 배우자를 지칭하는 경우는 중립적이라기보단 마누라와 중립적 표현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느낌이다.


처.. 이건 일단 일상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지만 중립적인 표현이다.

다만, 부정적이나 공식적인 상황에 쓰는 것 같은 클리셰적인 사용감이 있다.


최근 “제 처가..”라는 표현을 자주 써야 했던 한 대선 후보의 상황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아내는? 내가 생각할 땐 가장 가치중립적이며 존중의 감정이 내포된 표현이다. 단순히 호칭 차원에서 번역을 영어 wife를 직역한다면 ‘아내’로 해석해주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서 김 첨지가 제 아내를 마주할 때는 ‘이년’, 남에게 일컬어 말할 땐 ‘마누라’라고 표현하지만, 작가 전지적 시점에서 화자가 이야기할 때는 ‘아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이는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진다.



그런 고로 13년 전에 동기가 했던 말은 여전히 나에게 유효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존중을 표현해온 셈이다.


3.

그렇다면 왜 그 동기가 한 말에 반론이 가능한가?


사실 호칭 따위, 결국은 남들 앞에서 ‘보여주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남들 앞에서 “제 아내는..” 어쩌고 저쩌고 해 봤자 정작 집에서 아내를 존중 없이 대하고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00님’이라고 부르는 회사에서 내가 잊을 수 없었던 일 하나.

상사가 나의 브랜드 런칭과 프로모션 기획안을 보곤 어처구니없어하며 당장 뚝배기를 깰 것 같은 표정을 하더니 ‘00님, 그건 말이지..’ 라며 말할 때 내가 느꼈던 위화감 말이다.


단순히 호칭만 높여 부른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다.


호칭은 둘 사이의 약속이니 둘만 좋다면 어떻든 상관없지 않겠는가.


부부 관계가 상호 존중으로 무장한 사이가 아니라면, 남들 앞에서 ‘아내라고 높여 말해봤자  좋아보이자고 하는 일에 불과한 거다.


내 아내는 나에 대한 호칭이 딱히 없는 편이다. 세 살 차이가 나지만 ‘오빠’라고 부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렇다고 ‘여보’라고 부르는 것도 아니다. 그냥 호칭이 없다. 호칭도 없이 뭐라고 말을 하면 내가 반응을 해야 한다.

물론 여보라고 부른다면 거절하고 싶긴 하다.


아무렴 어떤가.

그냥 지금처럼 불러주고 찾기라도 해주면 다행 아닌가 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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