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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석 Jan 05. 2022

극부부도 #7. “성인이 돼서도 순진한 건 죄야”

이직에 대한 글이 아니다


1.

누구나 이직을 꿈꾼다.

더 나은 조건과 합리성을 기대하고.


이직 후 ‘허니문’ 동안은 잘한 선택이라며 스스로를 뿌듯해 한다.


나는 한 차례 직업 자체를 바꿨고, 이직은 세 차례 경험했다.

직업을 바꿔 처음 들어간 회사는 나에게 많은 일을 할당했다. 노예 부리듯이 일을 시켜대니 어린 연차부터 남들이 몇 년은 쌓아야 하는 경험을 쌓았다. 내공은 없을지언정 스킬만은 끌어올릴 수 있던 계기가 아닌가 싶다. 그 조직의 문제는 윗사람들의 안일함이었다. 끼니가 되면 밥을 먹고, 적정한 때에 퇴근하며 ‘인생 뭐 있어?’라며 자조 섞인 농담을 던졌다. 지금 와서 보면 쿨 해 보이기도 하는데, 당시엔 패배감에 익숙해져선 자신들의 판단에 대한 책임조차 전가하려 드는 수준으로만 보였다.


그래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이직을 하게 됐다. 회사를 떠나던 날, 가르침을 주던 선배들과 아끼던 후배들과 다른 배를 타게 됐다는 생각에 남몰래 눈물도 났다. 그러면서도 ‘귀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고 마무리한 사표를 내밀 때의 통쾌함은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회사는 이제 막 신규 조직을 만들어 출범한 곳이라 여기저기서 합류한 인물들이 저마다의 걸출함을 뽐내고 있었다. 전의 조직과 비교하면 개성들이 훨씬 강했다. 그러면서도 ‘개국공신’이라는 하나의 타이틀을 나눠가지면서 동지애가 생겨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재미있게 회사생활을 했던 때가 딱 이 무렵, 30대에 막 접어들었던 이때가 아닌가 싶다.


새로운 인물들이 합류할 때마다 신선함과 기대감에 조직 전체가 들썩였다. 술잔을 기울여 맞부딪칠 때는 ‘사람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할 때의 설렘 같은 것이 상당 기간 지속됐다. 하는 일이 고될 지라도 동료들과 얼굴을 마주할 때면 ‘사람 때문에 다닌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팀목 삼았다.



2.

追友江南. 친구 따라 강남 간다.


이 말은 주변에 휘둘린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직장생활로 외연을 확장해보면 사람 좋다고 해서 다닐 수는 없단 말도 된다.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조직은 단 하나의 거대악의 출몰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만나면 늘 욕을 달고 살게 됐다. 거대악이 완장까지 차고 힘을 과시하면, 좋은 친구이자 동지라 여겼던 이들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이뤄지게 된다. 맞서야 할 때 침묵하는 모습까지야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부화뇌동하여 더 설치기 사람들도 나온다. 그 파동은 물결이 그렇듯 자연스럽고도 천천히, 점차 범위를 넓히는 듯했다.


하나둘씩 이탈하는 동료들을 보며 내게서도 서서히 ‘이직’이란 단어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결국 해외 출장길에서 터졌다.


내가 현지에서 파악한 대로 쓴 결과물에 쓸데없는 사족이 담겼다. 그 사족 부분은 내가 파악한 모든 걸 호도할 수 있는 위험한 문구였기에 극구 반대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그대로 나갔다. 로밍한 핸드폰을 붙잡고 윗사람과 30분 넘게 말다툼까지 벌였지만 소용이 없었고 난 귀국길에 경력직 공채를 찾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지원한 회사에선 합격통지를 받았다.

기쁜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왜였을까, 몇 번 이직을 해보니 어딜 가든 결국 만족할 수 있는 조직이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3.

가까웠던 이들에게 이직을 고하는 일은 쉽지 않다. 좁은 땅덩어리 위 같은 하늘 아래 언제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서 숨 쉬고 있지만, 그러한 물리적 거리보단 정서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말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는 것 말이다. 제 아무리 한 식구라며 친구라 일컫던 동료들도 열 명 중 한둘쯤이나 지속적인 만남을 유지하며 지내려나.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던 동기 몇몇에게 사표를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내게 잘됐다며 축하해줬고 그 즉시 송별회 일정을 잡았다.


한 30분이나 지났을까.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하던 일을 하던 와중이었다.


“선배, 소식 들었어요 ㅠㅠ 언제 가시기로 한 거예요? ㅠㅠ 정말 너무 섭섭해요. 잘 된 일이지만, 선배 귀띔이라도 해주시지 ㅠㅠ”


전에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던 한 후배가 내 자리로 오더니 말했다.


이건 무슨 폭탄선언도 아니고. 주변에 부장부터 대여섯 명은 앉아 있는 상황에 다 들리게 이게 대체 뭔가 싶어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황망함을 이겨낼 수 없어 입만 벌린 채 주변을 돌아보니, 당시 자리에 앉아 있던 모두의 시선이 나와 그 후배를 향해 쏠려 있는 게 아닌가?




후배는 그제야 본인의 실수를 알아차리곤 떡 벌어진 입을 손으로 막더니 “죄송해요!”라고 외치곤 사사삭 걸음을 바삐 해 시선 속에서 퇴장했고,

주변인들의 프레임 속에 혼자 남은 난 조용히 컴퓨터 화면에 눈알을 고정했다.


본인들이 방금 들은 대화가 설마 이직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 싸늘해진 궁금증의 눈빛들이 쏟아지는 걸 느끼면서.


“허허, 저 친구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건지…”라고 어깨를 들썩여봤자, 어차피 이실직고해야 할 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렇게 사표를 내밀 때 ‘서프라이즈 마더 파더!’ 하는 통쾌함은 사라지게 됐다.



4.

집에 와서 사표를 써놓고,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아내에게 얘기했다.


이하 아내와 주고받는 대화.


“그 후배가 대체 왜 그랬지? 혹시 나 엿 먹으라고 그런 건가?”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아니 그럼 다 들리게 큰 소리로 대체 그게 뭔데? 사람이 무슨 행동을 할 땐 의도가 있을 거 아녀?”

“의도? 그냥 서운함을 표시한 거겠지. 자기가 떠나는 게 아쉬웠나 보지.”

“그러네. 그럼 그냥 순수한 의도였네.”

“순수한 의도? 의도만 보면 그럴 수 있지만, 그 후배의 행동은 순진한 거지.”

“뭐가 순진해?”

“결과를 예상하지 못하고 그냥 내키는 대로만 행동하는 게 순진한 거지. 애도 아니고.”

“순수랑 순진은 다른 건가?”

“악마는 순수할 순 있지만, 순진하진 않지.”

“아, 그니까 엿 먹이려고 한 행동이면 순수한 악마네. 근데 그게 아닐 테니까…”

“그렇지. 순진한 거지. 그니까 성인이 돼서도 순진한 건 죄야.”


옛썰.


그래서 이직에 대한 글 아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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