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운을 대하는 삶의 태도

Gratitude and humility

by 루이보스J

'우리가 가진 몫이 운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보다 겸손해지게 된다'. – 마이클 샌델

'A lively sense of the contingency of our lot can inspire a certain humility.'


“통역사분들 이름은 어떻게 되죠?”


줌(Zoom) 화면 속 마이클 샌델 교수가 물었다. 통역 부스 안에 있던 나와 파트너 선생님은 감동했다. 강연이나 회의가 끝나고 수고했다고 인사하시는 분들은 있어도 시작하기도 전에 통역사 이름을 묻는 연사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정의란 무엇인가]로 ‘정의’ 돌풍을 일으켰던 세계적 석학 마이클 샌델. 샌델 교수 강연 통역으로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 뛸 듯이 기뻤다. [정의란 무엇인가] 강연을 반복해서 들었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인상 깊게 읽고 열렬한 독자가 된 지 오래였지만 내가 그분의 통역을 맡게 될 일이 생길지는 몰랐다. 이번 방송 녹화는 교수님의 신간 [공정이라는 착각] (The Tyranny of Meritocracy)을 바탕으로 “능력주의가 과연 공정한가”라는 주제로 패널과의 논의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원격으로 진행되는 강의가 못내 아쉬웠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공정이라는 착각]을 읽으며 D데이를 준비했다. '우와..' 원서와 번역본을 번갈아 가며 읽어 내려가며 나는 또 한 번 감명받았다. 샌델 교수는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하는 명제들을 다시 한번 되묻고 생각하게 하는 데 탁월한 통찰력을 발휘한다. [공정이라는 착각]이 던지는 화두를 두 가지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내가 현재 누리는 것은 내 노력과 능력 덕분인가?”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가?”


이 두 질문을 통해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의 허점을 들춰내고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것은 상당 부분 운이 작용했음을 깨닫고 감사히 여기고 겸손해져야 하며, ‘보상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의미 있는 일은 그 자체로 존엄하며 존중받아야 한다고 설파한다. 샌델 교수가 개인의 노력과 성공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얻은 능력이 온전히 내 덕이고 내 노력만으로 얻어냈다고 믿는 것은 오만함으로 이어지고, 반대로 내 능력의 부족이 다 내가 못난 탓이라고 자신을 탓할 일도 아니라는 말이다.


마침 나도 고심했던 주제였다. 예를 들어, 학교 선생님, 미화원처럼 우리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직업군은 우리에게 즐거움은 주지만 없어도 사는데 지장 없는 연예계나 스포츠 스타에 비하면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고 보상은 터무니없이 적다. 그렇지 않은가?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달할 뿐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고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길러주는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미화원은 어떤가? 매일 같이 이분들이 수고해주시는 덕분에 우리는 깨끗한 환경에서 살 수 있지 않은가. 딱 하루라도 이분들이 일을 쉬게 되면 우리가 사는 동네는 쓰레기로 뒤덮이고 말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샌델 교수의 설명은 명쾌했다. 일에 대한 보상과 그 일이 가지는 가치와 연동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농구선수로서 많은 보상을 받는다면, 이는 농구라는 스포츠가 인기가 많은 시대를 타고난 운을 무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우리 삶에서 많은 부분 운이 작용한다는 것은 내 경험만 봐도 그렇다.


15년 동안의 통역사 생활 가운데 가장 특별했던 경험 중에 하나로 대통령 후보의 외신 인터뷰 통역을 맡고 그 계기로 청와대에서 2년여간 근무한 것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그 시작은 순전히 운이었다.


"I said she would, not should”

다니엘 튜더를 처음 만난 것은 2012년 가을 인사동에서였다. 한국에서 이런저런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기생충 영문 자막 번역으로 지금은 유명인사가 된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이 마련한 자리였다. 달시는 김수영 감독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인연이다. 다니엘은 영화 쪽은 아니고 당시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다니엘은 기자답지 않게 의외로 쑥스러워 보이는 영국 청년이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얼마 남지 않은 대선 이야기로 흘렀다. 나는 기자인 다니엘에게 선거 결과를 어떻게 전망하느냐고 물었다. 다니엘은 박근혜 후보가 될 것 같다고 대답했다. 내가 원하는 전망이 아니었기에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나도 모르게 쏘아붙였다.


내 어투에서 이상한 기류를 알아챘는지 “박근혜가 이겨야 된다는 게 아니라 이길 것 같다고 말한 거예요” (I said she would win, not should)라고 해명했다.


아차. 그제야 내가 과민 반응했음을 깨닫고 목소리톤을 가다듬었다. 알고 보니 다니엘도 문재인 후보 쪽을 지지하고 있었다. 다니엘은 기자로서 우리나라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접촉하면서 얻게 된 나름의 여론의 향방, 다양한 분석자료를 기반으로 객관적인 전망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전망은 현실이 됐다.


그 후 다니엘은 한국 정치를 논평하는 책을 냈고 정치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책 번역을 맡겼다. 그렇게 나온 책 [익숙한 희망 불편한 절망]은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다니엘이 강연을 맡게 되었을 때 역시 자연스럽게 통역을 하게 되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한국 정치판을 따뜻한 시선으로 비판한 다니엘 책은 소셜 미디어에서 입소문을 타더니 급기야 당시 뉴스 프로그램 시청률 1위를 기록하던 JTBC 뉴스룸의 출연 요청도 받게 된다. 덕분에 (2022년 9월 현재 기준) 여전히 국내 언론인 신뢰도 1위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나도 통역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한때 라디오 PD를 꿈꿔왔던 지라 방송 현장에서 통역하는 것은 흥미진진했다. 프로그램 작가가 준비한 사전 질문이 있었지만 손 앵커는 프로답게 스크립트 대신에 자신이 묻고 싶은 것들을 질문했다.


다니엘도 앵커의 즉석 질문에 차분하게 대답을 잘했고 인터뷰는 무사히 잘 마무리됐다.


다니엘 책을 번역 학고 몇 차례 통역을 하면서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똑똑한 줄만 알았더니 은근 4차원이었다. 수줍으면서도 위트 있고 기타도 잘 치고 신중현의 미인이나 커피 한잔 같은 옛날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재주꾼이기도 했다. 나는 다니엘의 ‘예스러운 취향’이 좋다. 다니엘은 음악만 70년대 명곡을 듣는 것이 아니라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잘 나가는 곳’이 아니라 늘 역사가 깊은 장소나 노포들을 즐긴다. 걷기를 좋아해서 서울의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다. 게다가 한국어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그 진지함에 적잖이 놀랐다. 지금도 다니엘은 늘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며 새로운 한국어 표현을 들을 때마다 놓치지 않고 메모한다. 쉽지 않은 사자성어들을 적절한 상황에서 절묘하게 활용하는 걸 보면 감탄이 나온다. 한 마디로 진국인 친구다.


2016년 가을 다니엘에 연락이 왔다. 문재인 후보를 도울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캠프 주요 관계자와 친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내 대답은 ‘물론’이었다. 세상일은 한 치앞도 알 수 없다더니, 그리고 얼마지 않아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졌고 조기 대선이라는 전례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워낙 특수한 상황이라 외신 인터뷰를 할 여유도 없겠다 싶었는데 연락이 왔다. 타임(Time)지와의 인터뷰였다. 공부할 자료를 받고 그 어느 때보다 꼼꼼히 준비했다. 지난 대선에서 내가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당선됐을 때의 공허하고 쓰라린 마음이 떠올랐다. 국정농단 사태가 발각되면서 내가 지지하고 있는 후보에게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외신 인터뷰 통역으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음에 감사했다.


2017년 4월 15

드디어 그날이 밝아왔다. 그날의 경험을 생생하게 떠올려보려고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찾아봤다.


(2017. 5. 18 뒤늦은 통역 후기)


지난달에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님의 타임지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한 달이 넘었는데도 지지하는 분의 통역을 맡아 설레면서도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맹렬히 준비했던 흥분이 아직도 가시지 않네요.


시나리오대로 진행되지 않은 인터뷰였지만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답하시는 모습에서 예비 대통령의 당당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 체제에 문제가 있지만 압제 하에 한 민족인 북한 동포들을 내려버려 둘 수 없다면서 통일의 당위성을 설명하실 때는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성공적으로 인터뷰를 마치신 후 저에게 감사인사를 하시더니 질문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먼저다'는 영어로 어떻게 말하죠?


자상하면서도 결의에 찬 그분의 표정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든든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그대로 실행하고 계신 문 대통령님 덕분에 매일매일 감동하고 있습니다.


퇴임하실 때 더 큰 박수를 받는, 역대 최고의 대통령 되시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그 후 며칠 뒤인 2017. 5.22일 거짓말처럼 청와대에서 연락을 받고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대통령 비서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모교 블로그인 이화 투데이 인터뷰를 보니 당시 얼마나 대통령 비서실 생활에 몰입했는지 생생하게 느껴진다.


https://www.ewha.ac.kr/ewha/news/people.do?mode=view&articleNo=264387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프레스센터에서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천 명의 기자들과 함께 2018년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던 제3차 남북정상회담의 감격의 순간을 함께 했던 날, 뉴욕 순방 중에 진행했던 폭스(Fox) 뉴스 인터뷰, 기차 안에서 이뤄진 미국 NBC 뉴스와의 인터뷰, 신년 기자회견, 청와대 유튜브 고정 출연 등이 영화 <시네마 천국> 마지막 장면처럼 내 눈앞에 펼쳐진다. 대통령 비서실 생활은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내 인생에서 가장 ‘순도와 밀도가 높은 경험’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사소한 대화 하나로 맺어진 인연이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일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경험으로 이어졌다. 운이 좋았다는 말로 밖에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더욱 감사한 일은 청와대라는 특별한 경험 이후에야 비로소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달았다는 점이다. 그렇다. 청와대 2년 근무 후에 내가 얻은 가장 큰 선물은 다름 아닌 내 평범한 일상의 회복이었다.


사실 청와대 생활은 꽤 힘들었다. 새벽 출근에 휴일이나 주말에도 순번을 정해서 근무하고 업무강도 자체가 높았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이니 몸이 힘든 건 견딜만했다. 가정생활이 문제였다. 청와대 근무를 시작했을 때 쌍둥이 남매가 겨우 14개월이었다. 엄마손이 많이 탈 때였다. 다행히 남편 근무시간이 나보다는 유연했고 양가 어머니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실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가정을 최우선시하는 남편의 불만은 커져만 갔고 양가 어머니들도 점점 체력적으로 지쳐가는 눈치였다. 양가 어머니들에게는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남편과의 갈등은 커져만 갔다. 가정만큼이나 일도 중시하는 나를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나대로 내 일을 존중받지 못한 것 같아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상사가 바뀌면서 전보다 여러모로 많이 힘들어진 상황과 겹쳐지면서 청와대를 떠나게 되었다. 원했던 방식의 마무리가 아니어서 속상했지만 국민소통 수석실 분들, 특히 여성 동지들의 따뜻한 작별 인사로 훈훈하게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14개월 아기였던 아이들은 어느새 다섯 살이 되었다.

청와대를 나오고 가정에 쏟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남편과의 갈등도 자연스럽게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남편의 관점으로 보면 막 돌 지난 아이들을 두고 오랜 시간 일에 매달리는 아내가 이해하기 힘들었을 수 있겠다 싶다. 원래도 일 욕심이 많은 편인데 청와대 근무 중에는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몰입했으니 가정적인 남편 입장에서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 대해도 내 선택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고 아마도 다시는 없을 경험이기에.


그리고 특별할 것 없는 내 일상을 전보다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아이들은 어린이집으로 남편과 나는 일터로 분주한 아침을 거쳐 하루 일과를 보내고 저녁 6시면 매일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주파수를 고정하고 저녁을 먹고, 아이들은 동화책을 읽고 나는 일기를 쓰며 평화롭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 일상의 기적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인생은 감사한 일 투성이다. 세상의 부당함이나 불합리함에 눈감고 안온한 일상에 자족하자는 말이 아니다. 지금, 여기 내 역할을 묵묵히 해내면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는 건설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하자. 불공정, 부정의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해서 우리가 감사히 여겨야 할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잘 버텨왔고 아직도 세상의 호의를 느낄 수 있음을 기뻐하자. 행복한 인생이었든 고통스러운 인생이었든, 어느덧 땅거미가 내려앉으니 우리에게 주어진 행운의 크기가 가늠된다. 우리는 상처받았지만 충만함을 얻었다. 이루어지지 않은 기도가 참 많다. 그렇지만 우리가 올리지 않았던 기도가 100배로 성취되기도 했다. 우리는 악몽을 관통했고 보물을 받았다. 삶은 참 잔인하거나 지독할 수도 있고 풍성할 수도 있었다. 매일 아침, 받은 바에 감사하면서 입 밖으로 소리 내어, “고맙습니다”라고 말하자.


당연히 받아야 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터무니없는 은총이 감사하다.”


[아직 오지 않는 날들을 위하여]_파스칼 브뤼크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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