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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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보스J

15년 차 통역사도 매일 모르는 단어를 정리한다.


누군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여성 범죄심리학자 인터뷰를 읽고 있었다. 인터뷰를 읽어보니 남성 위주의 범죄심리학이라는 분야에서 당당한 여성상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멋있는 분이었다. 그러다 한 대목이 눈에 띄었다.


학부 졸업 후 범죄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는데요. 왜 범죄심리학이었나요? (박00 교수 인터뷰_얼루어)


4학년 때 두 가지를 고민했어요. 통번역대학원에 갈까 아니면 심리학을 공부할까. 여러 가지 이유로 통번역대학원에 가기로 결정했었어요. 편한 길이고, 졸업하면 수입도 보장되는 길이니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통역사라는 직업에 대한 흔한 오해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통역사라는 직업에 대해 과도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잘못된 오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우리는 거의 모든 직업군에 대해서 파편적인 이해나 이미지를 기반으로 어느 정도의 오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통역사들은 부모 잘 만나서 어릴 적에 큰 노력 없이 배운 언어로 쉽게 밥벌이를 하는 팔자 좋은 사람들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하소연하는 동료와 함께 씁쓸해했던 적도 있다. 외교관이나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했던 부모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외국 생활 한 동료들이 물론 적지 않다. 어린 시절을 외국에서 보냈다면 유리한 측면이 있지만 그들 역시 부단한 노력이 없이는 훌륭한 통역사가 되기 어렵다. 그런가 하면 나처럼 한국에서 나서, 대학에서 어학연수로 잠시 외국에 있던 게 전부인 평범한 경우도 상당히 많다. 보통 해외파와 국내파로 구분을 하기도 하지만 몇 살 전에 몇 년이상 해외 거주를 해야 해외파로 부를 수 있는지 사실 명확한 기준도 없다.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외국어 습득하기에 뇌가 가장 유연하다고 알려진 만 12세 전에 3년 이상 영어권에서 보냈다면 소위 말하는 해외파로 간주하기에 무리가 없는 것 같다.) 앞서 통역이 이루어지는 프로세스를 소개했듯이 해외파라고 해서 무조건 다 유리한 것도, 국내파라고 해서 불리한 것만도 아니다. 각자 다른 고충이 있을 따름이다. 소위 해외파는 대부분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통역이라는 세팅에서 우리말을 어렵게 느끼고, 구사하는 단어 수준도 그리 높지 않을 수 있다. 국내파는 모국어에 비해 제 영어가 2 외국어 (B언어)라는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우리말이 모국어라 해도 공부할수록 우리말이 어렵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각자가 가진 장단점을 인식하고 장점은 최대한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면서 학교에서 집중 훈련을 받고 실전에서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우리는 서서히 통역을 업으로 삼는 전문가로 성장해간다.


간혹 통역사라는 직업이 미디어의 조명을 받기도 하는데 전설적인 실력자들은 숨어있는 경우가 더 많다. 사회 전반적으로 전문가라는 말이 남발되다 보니 전문가라는 말의 무게가 한없이 가벼운 진 느낌마저 든다. 진짜 실력 있는 전문가는 미디어에서 조명받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그 전문가 집단에서 인정하는 사람이 아닐까. 신기한 건 그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자들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할 뿐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을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통역의 세계에서도 유명세와 실력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15년간 많은 통역사 동료를 봐왔다. 같은 통역사가 봐도 뛰어난 실력을 보유한 통역사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뛰어난 정보 처리능력과 순발력이다. (유려한 우리말이나 영어실력은 물론 기본이다.) 연사가 말하는 메시지를 순식간에 완벽에 가까울 만큼 소화해서 내 언어로 재현하는 능력 말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통역사가 되는 길, 통역사로 활동하는 것이 ‘편한 길’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물 밖에서 우아해 보이는 백조는 물밑에서 쉼 없이 물길질을 하고 있듯이 쉬워 보이는 통역이 있기까지 많은 시간의 집중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게다가 통역하는 매 순간 긴장을 동반하는 편치 않은 직업 중에 하나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 편한 직업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15년 차 통역사로서 하는 일이 전보다 자연스러워졌다고는 말할 수 있어도 더 쉬워졌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여전히 하루를 마무리하며 오늘 했던 통역 노트를 꺼내 잘 한 부분과 흡족하지 않은 부분, 다음번에 염두하면 좋을 포인트를 체크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1) performed poorly라고 처리한 걸 underperformed으로 하면 더 간결해짐

2) 프랑스 연사들은 ‘R’ 발음이 ‘ㅎ’ 소리가 나기도 하니 헷갈리지 않기 (실제로 ‘record’를 ‘헤코드’로 발음하는 연사였다).

3) 서서 오래 통역할 때는 완전히 ‘납작 굽’ 구두 신기

(높은 굽이 아니었는데도 5시간 동안 생산시설을 돌며 통역하고는 녹초가 된 적이 있다.)


거의 매일 오늘 알게 된 새로운 (또는 잊어버리고 다시 사전을 찾은) 단어도 정리한다.


오늘 (22년 10월 11일) 단어장에 정리한 단어는 아래와 같다.

Soma 체세포, (정신에 대해) 몸, 신체

Intersperse (.. 속에/사이에) 배치하다

tranche (기업 자금/주식의) 분할 발행/차입

sidle up to.. 에 쭈빗쭈빗 다가가다

quiescent 조용한, 잠잠한


통역으로 밥을 먹고 산지 15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떠있는 작은 돛단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나아진 게 있다면 돛단배를 항해하는 기술이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다. 악천후에 금방이라도 침몰할 것 같다가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고삐’를 놓치지만 않는다면 폭풍우는 잦아들고 하늘은 이내 갠다는 것을 안다는 것쯤이다.


중고등학교 때 시험이 끝나면 틀린 문제를 다시 보는 게 괴로워서 오답정리를 안 하고 똑같은 문제를 또 틀리곤 했다. 참 어리석었다. 대학원에 와서는 그 나쁜 습관을 깨끗이 버려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매 통역 수업은 물론이고 스터디 파트너들과 공부하고 나면 노트 테이킹, 녹음한 내 통역을 다시 들으며 하나하나 무엇을 잘했고, 무엇이 부족했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철저히 분석했다. 이런 복습을 거치지 않으면 스스로 만족스러운 통역 수준에 다다를 수 없었다. 노트 테이킹에서 무엇을 놓쳤는지, 내용 이해가 안 돼서 놓친 것인지, 노트를 갈겨서 해독이 안된 건지, 단어 선택에 문제가 있었는지, 아웃풋 컨트롤이 잘 안 돼서 전달력이 떨어졌는지, 주제에 대한 배경 지식 전반이 부족했는지 면밀하게 검토한다. 실수의 원인을 분석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실력이 꽤 늘었다.


BB노트

지금도 여전히 실수 노트를 정리한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금 쓰고 있는 노트에는 통역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 반복하고 싶지 않은 실수들을 정리한다. 나는 이 노트를 BB노트라고 부른다. 비행기 사고 후 철저히 원인 분석을 하듯 무슨 일이든 어떤 이유로 잘 안 풀렸는지 낱낱이 파헤친다. 아주 사소한 일부터 중대한 일까지 모두 포함된다. 예를 들어, 장롱면허로 있다가 얼마 전에 운전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언제 가슴이 철령거렸는지 매번 정리했다. 아래와 같은 식이다.


언제: 동트기 전

어디서: 양재천 길

무슨 일: 어둠 속에서 갑자기 사람이 도로로 뛰어들어 놀람

원인: 양재천으로 새벽 운동가는 사람들이 자주 출몰

대책: 양재천 길 내내 같은 위험 있으니 전방 주시하며 긴장 늦추지 말 것


한동안 운전에 관한 내용이 많았는데 운전이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운전 카테고리는 차차 사라졌다.


남편과의 다툼이 있는 날도 BB노트를 쓴다.


촉발 요인: 밥 먹고 바로 소파로 눕는 남편에게 잔소리함

결과: 남편은 방어적으로 반응하며 방금 내가 한 설거지가 깨끗하지 않다고 트집 잡음

원했던 목적: 남편이 운동하게 하는 것

배운 점:비난이나 잔소리로는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함. 남편을 방어적으로 만들어 되려 트집만 잡힘

대책: 밥 먹고 같이 산책 가자고 자연스럽게 유도


작던, 크던 하나하나 개선하고 싶은 점을 차분히 점검하고 분석하는 것만으로 내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학창 시절 오답 노트조차 정리하기 싫어했던 내가 이렇게 변모할 줄은 나도 몰랐다. 언젠가는 BB노트를 쓸 일이 없을 ‘완벽’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BB노트를 써보면 알겠지만 신기할 정도로 매일 쓸 것이 나온다. 화수분이 따로 없다.


우리 집 거실에는 세계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의 뒷모습이 담긴 액자가 있다.

꾸준한 연습에 대한 그의 일화를 읽고 잊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로 인정받는 당신이 아직까지 하루에 여섯 시간씩 연습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카잘스는 머뭇거리지 않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내 연주 실력이 아직도 조금씩 향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카잘스의 나이는 95세였다고 한다.


이 일화가 사실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학원 시절에 이 일화를 접한 것에 감사한다. 매일 첼로를 안고 앉아있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초심을 떠올린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아직 진행 중(work in progress)인 배우는 존재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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