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become a writer
B-, “소녀의 감수성을 잘 살렸으나 우연의 남발이 심함”
태어나서 처음 써본 내 소설에 대한 교수님의 평가였다. 작가의 꿈을 품고 국문학과에 입학했으니 당연히 창작 수업을 들었다. 당시 베스트셀러 [영원한 제국]을 내고 단번에 유명 작가 반열에 오른 류철균 선생님이 창작 수업을 맡으셨다. 동안인 데다 실제로도 박사학위를 받기도 전에 특별 초빙된 분이라 국문과 교수님들 가운데 가장 젊었다. 아마 삼십 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오래 전 일이라 실제로 소설을 써봤던 것 외에는 창작 수업시간에 어떤 내용을 공부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교수님의 애틋한 장거리 연애사와 [영원한 제국] 대성공 이후 서울에 집 몇 채를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생각이 난다. 작가 입에서 ‘집 몇 채를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이라는 매우 실용적인 차원의 언어가 나와서 의아해했던 기억이다.
어쨌든, 내가 쓴 첫 번째 소설로 B-라는 점수를 받은 것도 충격이었지만 (고등학생 티를 아직 못 벗었던 때라 A를 못 받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A+를 받은 친구들의 재능에 절망했다. 교수님은 잘된 소설들을 몇 개 추려 수업시간에 읽게 했다. 당장 서점에서 들춰본 기성작가의 단편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손색이 없었다. 그날을 계기로 나는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 글쓰기는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안 된다고. 열두 살 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은 후 쭉 작가의 꿈을 품고 살았는데 너무나 쉽게 꿈을 놓아버렸다.
그렇게 글쓰기와 멀어지고 라디오 PD를 준비하다 결국에는 통역사라는 다른 직업을 갖게 됐지만 글쓰기에 대한 미련은 여전했다. 계속 글쓰기를 미루면서 마흔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등단한 박완서 선생님을 떠올리며 위안을 삼았다. 그랬다. 마흔 살은 나에게 마지막 마지노선이었다. 마흔 살이 코앞에 닥쳤던 서른일곱 살 무렵 처음으로 이러다 영영 못쓰는 게 아닐까 두려워지기 시작해서 쓰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그 무렵 끄적거렸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몇 개의 습작만 남겨두고 글쓰기는 또 중단되었다.
도대체 나는 왜 못쓰는가? 또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가장 큰 방해물은 아이러니하게 ‘읽는 습관’이었다. 닥치는 대로 읽고, 듣고, 쏟아지는 정보를 흡수하고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니 단편적인 정보, 정보, 감성들은 넘치고 켜켜이 쌓여만 간다. 꾹꾹 눌러 담기만 하다가 결국 뚜껑이 닫히지 않는 반찬통처럼 내 머릿속 뚜껑도 닫히지 않고 내용물이 지저분하게 밖으로 흘러내린 상태로 상당히 오랜 시간 지내왔다. 쓰고 싶다고 말하면서 쓰고 있지 않는데서 오는 자괴감,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움을 외면하려고 무섭게 읽기를 계속해왔다. 김영하 작가 책을 읽다가 '모든 작가는 한 때 독자였다'는 대목을 만나고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진짜 쓰자’고 결심한 게 벌써 10년 전이다.
사실 글쓰기는 속절없는 일이다. 내면으로 깊이 침잠해서 무엇이든 그 실체를 대면하고 간신히 그것을 포획하고 끄집어내어 글로 쓰는 과정 말이다. 김훈 선생은 이 과정을 ‘너절하다’고 기막히게 표현하신 바 있다. 이미 세상에는 읽을거리로 넘친다. 혀를 내두르는 필력이든,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이든, 그 둘을 다 갖춘 글이든, 남의 글을 읽는 것은 너무나 쉽고 유혹적이다. 철저하게 ‘효율’을 극대화하는 교육환경의 결과물인 나에게는 출간은커녕 다른 누군가가 읽어줄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는 것 자체가 미련한 일이었다. 김훈 선생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과 같은 명문을 읽는 편이 몇 배는 더 똑똑한 짓이다.
김훈 <어떻게 죽을 것인가>
(중략)
그날 세 살 난 아기가 소각되었다. 종이로 만든
작은 관이 내려갈 때, 젊은 엄마는 돌아서서 울었다.
아기의 뼛가루는 서너 홉쯤 되었을 터이다.
뼛가루는 흰 분말에 흐린 기운이 스며서 안개 색깔이었다.
입자가 고와서 먼지처럼 보였다.
아무런 질량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물체의 먼 흔적이나 그림자였다. 명사라기보다는 '흐린'이라는 형용사에 가까웠다.
뼛가루의 침묵은 완강했고, 범접할 수 없는 적막 속에서 세상과 작별하고 있었다.
금방 있던 사람이 금방 없어졌는데,
뼛가루는 남은 사람들의 슬픔이나 애도와는
사소한 관련도 없었고,
이 언어도단은
인간 생명의 종말로서 합당하고 편안해 보였다.
죽으면 말길이 끊어져서 죽은 자는 산 자에게
죽음의 내용을 전할 수 없고,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인지할 수 없다.
인간은 그저 죽을 뿐,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다.
화장장에 다녀온 날 저녁마다 삶의 무거움과 죽음의 가벼움을 생각했다.
죽음이 저토록 가벼우므로 나는 남은 삶의 하중을
버티어낼 수 있다.
뼛가루 한 되 반은 인간 육체의 마지막 잔해로서 많지도 적지도 않고, 적당해 보였다.
죽음은 날이 저물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자연현상으로, 애도할 만한 사태가 아니었다.
(후략)
군더더기 하나 없는 문장, 핵심으로 내달리는 힘, 모질다 싶을 정도의 냉철한 현실인식은 작가 본인의 말대로 '자신의 몸으로 통과한 체화의 결과'를 글로 옮긴 것이 분명해 보인다. 나는 이 노 작가의 글을 읽으며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종류의 희열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절망하고 또 절망했다.
뭔가를 쏟아내고 싶다는 열망으로 들끓은 지는 오래지만 좀처럼 펜을 들 수가 없었다. 불온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솎아내고 악몽으로 표출되는 삶의 ‘표리’를 들춰내는 일이 두렵기만 했다. 오래도록 자기 의심의 산을 건너지 못했다. ‘쓰고 싶은데 쓰지 못하는, 아니 쓰지 않고 있는 상황’에 고민이 깊어지자 언제부터인가 몸에도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무겁고 악몽에 시달렸다.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같은 기묘한 꿈도 자주 꾸었다.
.‘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두려움이 ‘잘 해내지 못한다’는 두려움을 압도할 때, 비로소 일하기 시작한다’라고 알랭 드 보통의 말이 참말이었다.
졸문을 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아무것도 쓰지 않고 있다는 두려움에 1g이 더 해졌다
이제 시작이다.
22년 8월
뭐라도 써보자고 마음먹은 지 한 달 반 가량 지났다. 처음 며칠은 수도꼭지처럼 콸콸 쏟아냈다. 며칠 지나자 벌써부터 커서가 깜빡이는 휴대폰 메모장 앞에서 멍하니 앉아 뭘 쓸지 난감했다. 그 짧은 순간에 그날 ‘해야 할 일’들이 하나씩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회의 준비 같은 생업 관련 일은 물론이고 아이들 학원비 결제, 공과금 납부, 생일 맞은 친구한테 메시지 보내기, 빨래 돌리기 등 생활 유지에 필요한 일들까지.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쏟아내면 후련했다. 하지만 아무도 보여줄 수 없는 난삽한 글이었다.
‘이 정도의 글 밖에 쓰지 못할 거면 뭐하러 매달려? 이 시간에 번역 한 장이라도 하면 돈이라도 벌지?’
그래도 뭐가 됐든 매일 쓰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매일 ‘할 일’을 적고 하나씩 지워나가는 내 수첩에는 두 가지는 기본으로 들어가 있다.
운동, 글쓰기
그 외 나머지는 매일 달라진다.
일어나자마자 운동 먼저 한다. 몸이 무겁고 오늘만큼은 건너뛰고 싶은 유혹이 드는 날도 있지만 기어코 하고야 만다. 남보다 의지가 강해서가 아니다. 운동을 습관으로 잘 정착시킨 덕분이다. 돌이켜보면 운동이 내 생활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된 지 오래다. 2006년부터였으니 올해로 17년 차다.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있었겠지만 운동을 습관으로 완전히 익힌 후부터는 운동하기 싫은 마음을 물리치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 운동을 마치고 나서 ‘괜히 운동했네’라는 마음이 든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운동하기 전에 아무리 기분이 처져있거나 몸이 찌뿌퉁했다해도 운동을 마치고 나면 거짓말처럼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가벼워졌다.
어떻게 하면 ‘글쓰기 습관’을 운동처럼 성공적으로 내 삶의 일부도 만들 수 있을까?
할 일 목록에서 운동은 금방 완료 표시를 하는데 글쓰기는 늘 꼴찌로 남아있었다. 저녁에 일과를 마치고 할 일 목록을 보면 모두 완료 표시가 된 목록 중에 ‘글쓰기’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이면 어떻게든 ‘글쓰기’를 할 일 목록에서 지우자는 심산으로 몇 줄 끄적이며 글쓰기를 하는 시늉을 했다. 글쓰기는 다른 해야 할 일들에 우선순위가 밀려있는 게 분명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분명 그날 해야 할 일 중에서 글쓰기가 가장 중요했지만 실행에 있어서는 순위가 가장 나중인 게 문제였다. 글쓰기 목표 분량도 불명확했다. 글쓰기를 ‘완료’했다는 기준은 뭘로 해야 할까? 운동은 보통 한 시간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데 한 줄만 쓰면 그날 글쓰기를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한 페이지? 한 페이지라면 무엇을 기준으로? 글자 수 기준으로?
게다가 내 생업인 통번역 일이 많은 날에는 글쓰기는 사치로 느껴지곤 했다.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글을 쓸 수 없을 만큼 시간이 없거나 기진맥진한 것도 아니었다. 분명 다른 일들은 아무리 바빠도 해내고 있었다. 이쯤 되면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글을 쓰고 싶은 것인가? 쓰고 싶지 않은 것인가?
‘쓰고 싶다.’고 내 마음이 속삭인다.
상념이 떠오르면 글로 표현하고 싶다. 내 이름이 적힌 책이 나오는 상상도 해본다.
그런가 하면 무엇을 써야 할지 머리가 멍해질 때는 이 정지상태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아직도 읽을 명작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시간에 차라리 ‘읽는 즐거움’을 선택하지 그래? 쓰고 싶을 때마다 쉬운 선택으로 남이 잘 써놓은 글을 읽어왔던 결과다. 잘 정돈해 놓은 생각을 유려하게 써놓은 남의 글을 읽으며 ‘나도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하며 동류의식을 느끼고 대리만족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잘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나까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평가절하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지 않는 나를 합리화했다.
아무것도 쓰지 않았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분주하게 살면서도 매일 마주하게 하는 되는 그 무시무시한 공허함을 다시 대면하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든, 조악한 글이라도 써내야 만한다. 그 껌껌한 허무함에 빠지지 않으려면 더 작은 공포를 이겨내야만 한다.
어떻게 하면 매일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1. 목표의 우선순위와 실행의 우선순위를 일치시킨다.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목표는 무엇인가?
-몸과 마음의 건강
-일에서 오는 충만감과 열망을 놓지 않는 것
-가족과 친구 등 중요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가꾸는 것
글쓰기는 내 열망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목표 중에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훨씬 중요도가 떨어지는 일들에 밀쳐져 있었다. 공과금 내기 전에 글을 쓰자. 공과금 내는 일에 내 최상의 에너지를 할애해서는 안된다. 가장 중요한 일을 먼저 하자. 중요도 순서로 일을 실행하자. (First things are first.)
2. 내가 쓴 글을 판단하는 것을 보류한다.
여태껏 내가 쓴 글로 돈을 받아본 적이 없다. 프로 작가가 아니라는 말이다. 글을 잘 쓰고 못쓰고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다. 고쳐쓸 초안을 일단 써놓고 볼일이다. 어느 정도 재료라고 할 정도의 글이 써질 때까지 판단은 미룬다.
3. 잘 안 써지면 반사적으로 책으로 손을 뻗었던 습관을 버리기 위해 눈앞에 있는 책들을 치운다.
책 읽기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웬만한 책은 펼치기만 하면 순식간에 읽는 재미에 빨려 들어가 속수무책이 된다. 넘치는 책들을 처분하자. 이 책이 없으면 정말이지 밤에 잠을 못 이룰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만 빼고 정리하자. 중고 앱에 파는 것도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니 다 모아서 아름다운 가게에 보내자. 여기저기 올라오는 새책 광고를 멀리한다. 닥치듯 책을 읽는 것은 지적 호기심의 발로라기보다는 글쓰기 회피 작전일 때가 많음을 인지하자.
4. 안 써지는 날에도 뭐라도 쓴다.
안 써질 때면 슬그머니 소셜미디어나 카톡을 확인하면서 딴청을 피우는 나를 인지하고 다시 주의를 다잡는다. 정 안 써지면 잡다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나 청소나 빨래 같은 집안일을 하거나 잠시 산책을 나가 머리를 식혀본다.
글쓰기가 운동처럼 완전히 내 몸에 체화되도록 1,2, 3, 4를 계속 반복한다.
이 과정을 두 달 정도 반복한 결과가 이 책이다.
자기 의심을 의심하라. Doubt your doubt
과연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참으로 오랜 시간 동안 자기 의심으로 시달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 의심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몰랐다. 의외로 해결책은 간단했다. 가만히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내 목소리에 기울인 게 시작이었다. 뜬 구름 잡는 생각을 거두고 차분하게 내 삶 전반, 일상을 점검했다. 인생에서 무엇을 중요시하고 있고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써내려 갔다. 이 ‘쓰기’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과연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고약한 속삭임이 들리지 않았다! 자기 의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그저 하는 것이었다. 누가 읽어줄까? 잘 쓴 걸까? 써서 뭐하려고? 이런 고민 없이 그저 쓰는 것이었다. 아이가 걷기를 배울 때 ‘내가 잘 걸을까? ‘못걸으면 어쩌지’를 묻지 않고 그저 수없이 넘어지면서 걷기를 배우듯. 이제야 글쓰기 근육이 조금씩 생기고 있음을 느낀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나서는 쓰지 않고 생각만 하고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요하고 충만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만약 당신 안에서 "넌 그림을 그릴 수 없어"라고 속삭여도, 어떻게든 그려라. 그러면 그 속삭임은 침묵할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If you hear a voice within you say “You cannot paint,” then by all means paint, and that voice will be silenced."
고맙게도 줄곧 곁에서 글쓰기를 권해준 가족, 친구들과 지인들이 있었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권해준 사랑하는 동생 은주, 자신에게 성실한 사람이니 글쓰기에 딱 맞는 체질이라며 줄기차게 글쓰기를 독려해주신 C실장님, 이미 몇 권의 책을 출간하고 지금은 소설 집필 중인 다니엘은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나까지.."라는 바보 같은 넋두리에 “블라디미르 나보코 같은 작가가 이미 나왔다고 글 쓰겠다고 나서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어? ‘호날두 같은 선수가 이미 있는데 뭐하러 축구를 시작해’라고 생각하는 게 말이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라고 말해주며 힘을 실어주었다. 그런가 하면 여유 없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친구 D는 "You will eventually write because that’s what you are. (넌 결국 쓰게 될 거야. 그게 너니까)”라며 격려해주기도 했다.
이 자리를 빌어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