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 to my best self
플로우(Flow): 어떤 행위에 깊이 몰입하여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의 이동, 더 나아가 자기 자신조차 잊게 되는 심리적 상태_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몰입 상태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안다. 어떤 일에 너무나 깊이 빠진 나머지 마치 시간이 정지한 느낌을 받거나 시간이라는 개념이 적용이 안 되는 특별한 공간에 와있는 듯하기도 하다. 무섭게 집중할 때 우리를 짓누르던 일상적 고민들이나 번민은 순식간에 종적을 감추고, 한계를 넘어 한 차원 높은 영역으로 올라가는 듯한 ‘고양’을 경험한다. 물 흐르듯 ‘flow’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우리는 종착역에 도착하기 전에는 멈추지 않는 특급열차 같이 마구 내달린다. 마침내 도착지에 다다르고 나면 내 안의 무엇인가가 한 뼘쯤은 깊어지거나 성장한 것 같은 흡족한 마음이 솟구친다.
반면에 ‘오늘 할 일 목록’을 모두 완료했는데도 시간이 어디로 흘렀는지, 마치 ‘손 안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듯’ 마음이 헛헛한 날들도 있다. (영어에도 똑같은 표현이 있다. 'feels like time is slipping through my fingers') 그런 날은 천천히 돌이켜보면 하루 종일 분주했을 뿐 십중팔구 ‘몰입’ 경험이 없는 날이다. 살수록 인간은 몰입할 때 가장 인간다워지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몰입 경험을 늘릴수록 우리는 인간다워지고 몰입 경험이 줄어들수록 우리는 인간다움에서 멀어진다.
무엇이 우리의 몰입을 방해하는가?
싱글태스킹
‘이렇게 바쁜 세상에서 멀티 태스킹을 안 하고 사는 게 애초에 가능이나 한가’라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우리 대부분은 멀티 태스킹을 하고 있고, 심지어는 멀티 태스킹이 능력의 지표로 인식되는 측면도 있다. 한 번에 두 가지 이상의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거나 두 가지 이상의 작업을 전환하며 수행하면 느낌 상으로는 더 많은 결과물을 내는 것 같다. 하지만 한 연구에 따르면 과도한 멀티태스킹은 한 가지 작업에 집중하는 싱글 태스킹 대비 생산성이 40%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한다.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uy Winch) 우리가 멀티태스킹이라고 믿는 것이 사실은 빠르게 주의를 왔다가 갔다 전환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작업을 전환할 때마다 시간뿐만 아니라 우리 뇌의 에너지가 크게 손실된다. 뿐 만 아니라 집중했던 작업에 다시 주의력을 쏟는 데는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한 번에 더 많은 일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멀티태스킹이 오히려 작업을 더 느리게 하고 작업의 결과물의 완성도도 떨어뜨리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실수도 늘어난다.
얼마 전 신용카드를 바꾸고 스마트폰 결제 앱에 새로운 신용카드 정보를 입력하려던 때에 여동생이 내 방에 들어왔다. 유럽여행을 앞두고 있던 동생은 이야기보따리를 쏟아냈다. 동생한테 신경을 쓰며 카드 번호를 입력하려니 자꾸 번호를 틀려서 몇 번씩이나 입력을 반복했다. 그 와중에 동생은 자기 이야기에 집중 안 한다고 투덜댔다. 동생이 들어왔을 때 바로 하던 일을 멈추고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들어줬다면 좋은 언니가 됐을 테고, 이야기를 다 마치고 카드 번호를 입력했다면 한 번에 됐을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겠다는 욕심으로 그 간단한 숫자 입력도 계속 틀리는 바보에다 무심한 언니가 돼 버렸다. 멀티 태스킹의 맹점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수행하다 보니 두 가지의 세부 사항을 모두 놓치게 되기 쉽다. 이것이 반복되면 기억력 저하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식사 중에 다른 데 주의를 기울이면 뇌가 먹는 행위를 완전히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때문에 나도 모르게 과식을 하게 된다. 멀티 태스킹은 상황에 따라 위험천만한 일이기도 하다. 휴대폰을 보며 길을 걷다가 당하는 교통사고가 해마다 증가세라고 한다. 휴대폰을 보고 있으면 주변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의력 도둑
대학 입학하면서 서울로 유학 온 나는 어릴 적 ‘서울에 가면 코 베어 간다’는 무서운 말을 종종 들었다. 인정 넘치는 고향 사람들과는 계산적이고 잇속만 차리는 사람이 많은 곳이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경고였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코 베어가는 세상’ 못지않은 무시무시한 세상에 살고 있다. 어디를 가든 갖은 수법으로 우리의 주의력을 빼앗으려고 안달들이다. 쏟아지는 뉴스, 수많은 광고들, 소셜미디어 포스팅 그 안에 광고들, 전단지. 내 주의력의 문고리를 꽉 잠그지 않으면 시시한 일들,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에 줄줄 새어나가 정작 중요한 일에 쏟아야 주의력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얼마 전에 버스를 타려고 나왔는데 도로변에 사람들 줄이 길게 늘어서있었다. 그렇게 길게 줄 설일이 없는 주택가라 무슨 일이 있나 자세히 봤더니, 동네 수협이 열기 기다리는 줄이었다. 수협 앞에는 ‘특판 적금 금리 6퍼센트’라고 대문짝만 한 플래카드가 붙어있었다. 수협 영업시간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지만 새벽같이 나와서 높은 금리를 받으려고 줄을 서는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뿐인가. 마트나 식당에서 계산 착오로 조금이라도 돈을 많이 내게 되면 우리는 발끈한다. ‘눈에 보이는’ 자원에 그렇게 민감한 우리가 주의력에 있어서는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업무 중이거나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중에도 카톡 메시지가 오면 부리나케 메시지를 확인한다. 나를 찾는 전화는 일단 냉큼 받아본다. 특정 정보를 찾으러 인터넷에 들어갔다가 낚시성 기사들도 클릭해보고 유명 연예인 결별 소식에도 한눈을 판다. 한참 정신이 팔려 딴짓을 하다 보면 애초에 무슨 정보를 찾으러 인터넷을 들어갔는지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영양가가 없을 뿐 아니라 때로는 해로운 정보를 흡수하는 데 주의력을 다 쏟아버렸다. 일 다운 일, 의미 있는 일, 오늘의 ‘몰입’을 경험하는데 쏟아부을 수 있는 주의력은 한웅 큼도 남지 않았다.
문단속을 두 번 하는 습관이 있다. 잠들기 전에 문단속을 하고 외출하기 전에도 꼭 두 번씩 확인한다. 정작 내 마음에는 문지기를 세우지 않고 너무도 쉽게 주의력을 흘려버리고 있으면서 말이다. 돈이나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뺏기면 물론 속상하다. 하지만 그래 봤자 돈이나 물건에 불과하다. 주의력은 거의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우리가 가진 소중한 자산 중에 하나다. 레이저 같은 집중력으로 완성도 높은 글이나 그림을 완성할 수도 있고, 중요한 프로젝트를 따낼 수도 있고, 계약을 성공적으로 체결할 수도 있고. 가족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줄 수 있고 재잘거리는 아이 이야기에 한눈팔지 않고 귀 기울일 수도 있다.
몰입 소비
사실 우리는 매일 몰입을 경험한다. 간접적으로 말이다.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왓챠, 쿠팡 플레이, 아마존 프라임.. 경쟁하듯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스트리밍 플랫폼들, 섬뜩할 정도 정확하게 내 취향을 맞추는 알고리즘 기반의 유튜브 영상들은 시청하는 것은 대부분 타인의 몰입의 경험을 소비하는 행위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스포츠 선수, 탁월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 심금을 울리는 연주자나 가수, 갖은 재료로 뚝딱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 내는 요리사의 몰입 말이다. 타인의 몰입의 경험을 끊임없이 소비하는 걸 보면 대리만족이더라도 우리가 얼마나 몰입이라는 경험을 갈망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대리만족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흡족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되려 손쉬운 몰입 소비의 뒤끝 맛은 씁쓸할 때가 많다.
통역, 고도의 몰입
통역은 몰입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애초에 가능하지가 않다. 연사의 말에 집중하는 것은 물론이고 표정까지 살피며 뉘앙스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동시에 손으로는 중요한 정보를 노트하느라 바쁘다. 그러면서 머릿속에서는 가장 적합한 어휘를 활성화해서 도착어의 구조에 맞게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통역으로 회의가 물 흐르듯 원활하게 이루어지면 모멘텀이 생기면서 통역은 마치 리듬 타듯 한층 가벼워진다. 하나하나 어떤 과정이 일어나는지 해체할 수 없는 하나의 총체적인 고도의 정신작용에서 오는 충족감이다. 어느 정도 난이도가 높은 경우에 만족감은 더 커진다. 통역하는 중에만 몰입을 경험하는 것도 아니다. 통역을 앞두고 준비하면서 공부할 때도 몰입의 즐거움에 흠뻑 취하게 된다. 우리 뇌는 정말 신기하다. 무언가 한 가지에 몰두하면 의식 저 밑에 가라앉아 있던 것들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올라온다. 바깥세상에서도 지금 몰두하고 있는 주제에 관련된 것들만 눈에 들어오고 귀에 들려온다.
1일 1 몰입
아무리 몰입이 좋다 한들 하루 종일 몰입 활동에만 몰두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의 생활을 지탱해주는 일상적 활동들도 무시할 수 없다.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하지만 하루에 적어도 한 번씩은 몰입 경험을 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에서 그날 하루를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어떤 일이든 시간 간 줄 모르고 집중하고, 끝나고 나면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내적 충만감을 주는 그런 경험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이도가 높지 않고 내적 성장과는 큰 연관성이 없는 활동은 몰입 경험과는 거리가 있다. 예를 들어, 설거지나 청소를 즐거운 마음으로는 할 수 있어도 어쩐지 ‘몰입’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설거지나 청소의 내공이 아직 부족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하루 종일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일에서 몰입을 경험하는 것은 정말이지 큰 복이다. 그런 의미에서 직업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얼마나 유망했는지,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는지가 아니라 ‘내가 몰입 경험을 할 수 있느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모두는 아니더라도 대다수가 자신의 일에서 몰입을 경험하는 사회, 이 보다 더 멋진 세상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