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 넘어지면서 배운다

We learn by doing, and by falling over

by 루이보스J

“학교라는 안전한 환경에 있을 때 최대한 실수를 많이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통역대학원 시절 교수님들이 늘 하시던 말씀이다. 돌이켜보면 대학원 시절의 훈련은 실전을 위한 대비 과정에 불과했는데도 멀리 보지 못하고 당장 오늘 수업시간에 있을 ‘평가’에 매몰됐었다. 교수님들의 말처럼 통역의 결과가 좋지 못하면 다시 부름을 받지 못하는 현실세계에 비하면 학교는 너무나 안전한 환경이었다. 고객한테 받은 통역료에 상응하는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해 클레임을 받을 것도 아니고, 내 통역의 퍼포먼스에 따라 고객의 중대한 사업의 향방이 판가름 나거나 중대한 외교 문제로 비화될 단초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통역대학원 출신이라면 다들 공감하겠지만 매 수업 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국제정치, 안보, 경제, 경영, 금융, 통상, 주요 산업, IT, 환경, 의학 등 매주 다루는 주제 자체도 만만치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매시간 교수님의 호명에 따라 앞에 나가서 통역을 하고, 그 자리에서 급우들과 교수님의 크리틱을 받는 과정은 유쾌한 경험 일리가 없다. 여기서 '크리틱(critique)'이란 의미 전달의 오류, 의미 누락, 표현의 어색함, 목소리나 어조 등 전달의 문제 등 총체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을 말한다. 한 마디로 내 통역이 실험대에 올라 세상 사람들 앞에서 낱낱이 해부되는 느낌이다. 그때는 몰랐다. 안전한 환경에서 누적된 ‘실수들과 낯 뜨거운 창피한 순간들’이 나중에 실전에 뛰는데 얼마나 중요한 자양분이 되는지를 말이다.


지금까지도 소중한 지침으로 삼은 다른 교수님의 말씀도 있다. 통역대학원 교수님들은 하나 같이 당당하고 멋진 분들이셨다. 존재만으로도 우리에게 자극이 되어주시는 분들이셨다. 그중에는 매서운 ‘팩트 폭격’ 크리틱으로 학생들이 눈물을 쏙 빼놓게 하시는 호랑이 선생님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제자들을 애처롭게 여기시며 지속적으로 용기를 북돋아주시는 선생님도 있었다.


“모두들 여러분이 잘하길 바라며 응원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관중석의 관객은 무대 또는 경기장에 오른 연주자나 선수들이 잘하길 바란다. 비싼 티켓을 사고 들어와서는 ‘연주자가 망쳤으면 좋겠어’, ‘경기를 엉망으로 뛰었으면 좋겠네’라고 고약한 마음을 품는 사람은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귀한 말씀이었다.


15년 동안 통역사로 일하면서 긴장되는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늘 그 말씀을 되뇌었다. 실제로도 지금껏 수많은 통역 현장에서 거듭 호의를 경험했다. 간혹 가다 냉기가 느껴지는 고객이나 통역사에게 기싸움을 거는 듯한 적대적인 기운을 뿜는 경우도 있었지만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다수는 고생이 많으셨다, 덕분에 성공적으로 잘 마쳤다, 큰 도움을 줘서 고맙다 등 격려와 인정의 말씀을 주셨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호의가 우세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마음이 금세 편안해진다. ‘다들 내가 잘하길 바라고 있다’ 이렇게 마음먹으면 고개를 내밀었던 초조한 마음이 힘을 잃고 뒤로 물러나는 게 느껴진다. 그러고 나면 온전히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실전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방법은 또 있다. 넘치게 준비하고 나머지는 흐름에 맡기는 것이다. (Overprepare and go with the flow)


중고등학교 때 시험을 앞두고 초조했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밤새서 시험 범위를 끝내려고 했는데 그만 일찍 잠이 들어버린다. 다음 날 아침, 준비 못한 부분에서 시험 문제가 나오면 어쩌나 전전긍긍해진다. 그 상황에서는 내가 공부한 부분에서만 시험 문제가 나오기를 바라는 즉, 요행을 바라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반면 시험 범위를 몇 번씩 철저하게 공부하고 연습문제도 풀고 오답도 분석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하고 시험에 임하면 훨씬 덜 초조해진다. 할 수 있는 준비는 다했다고 생각하면 자신감이 붙는다. 자신감이란 말 그대로 자신을 믿는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자신의 무엇을 믿는다는 것일까? 어떤 일을 수행함에 있어 필요한 역량이 있다고 믿으며, 그 역량을 발휘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대개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은 진취적이고 결단력이 있고 매사 행동에서 대범함이 드러난다. 이들의 자신감은 타고난 것일까? 기질적인 면에서 타고난 측면도 있겠지만 어떤 경험을 축적했는지가 큰 몫을 하지 않을까. 나 스스로를 돌이켜보면 결과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했는지가 나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데 가장 중요했다. 어떤 일에 실패를 했더라도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면 아쉬움이 덜했다. 반면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 실패에 이르렀다는 결론에 다다르면 가슴이 쓰라려서 한동안 잠을 설쳤다. 어떤 일에 성공했을 때도 다르지 않다. 최선을 다해서 성공까지 해내면 그 보다 달콤한 기분은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지 못했는데도 결과가 좋으면 거저 얻은 것 같고, 실력보다 과대평가되는 것 같아 겸연쩍어지며 심지어는 진짜 내 실력이 들통날까 봐 오히려 위축될 수도 있다.


넘치게 준비하는 것이 자신감 장착의 첫 번째 단계이다.


어느 회의든, 콘퍼런스든 회의 참석자들은 그 분야의 전문가이다. 설령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사안의 전후 맥락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즉, 통역사는 대부분의 경우 그날 논의되는 주제의 전문지식도, 의제의 맥락도 가장 모르는 사람이다. 일을 받고 통역 전에 주어지는 공부 시간은 짧게는 하루, 길게는 한 두 달에 불과하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다고 한들 특정 전문 분야나 조직에 수년에서 몇십 년간 몸을 담아온 전문가나 현업에서 일하는 분들의 내공을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철저하게 준비를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중요한 통역까지 일주일이 남았다면 그 일주일 동안 어떤 준비에 얼마나 시간을 분배할지 일정을 짠다. 예를 들어, 클라우드 컴퓨팅에 관한 회의라고 한다면 우선 고객이나 담당자에게 문의하여 주요 의제, 발표자료 등 사전 자료를 요청한다. 또한 누가 참석하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연사에 대한 정보도 받았다면 유튜브에 가서 연사 이름을 쳐본다. 한영 통역사라고 해서 영국, 미국, 캐나다 등 영어권 연사들만 통역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실제로는 실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의 통역을 맡는다. 내 경험만 떠올려도 미국,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뿐만 아니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싱가포르, 브라질, 이스라엘,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도미니카 공화국, 볼리비아, 세르비아, 이스라엘, 탄자니아.. 끝도 없다. 유튜브에서 해당 연사를 찾게 되면 사전에 어투를 확인하고 악센트에 익숙해질 수 있다. 때로는 통역을 맡은 동일 주제에 대해서 연사가 이미 다른 곳에서 강연한 영상을 찾기도 한다. 그럴 때는 아주 훌륭한 예습 자료가 된다. 구글링 해서 최근 주요 업계 동향도 살핀다. 그날 사용할 노트 첫 페이지에 주요 용어 등을 정리해둔다. 전날은 다른 약속은 만들지 않는다. 여분의 노트와 필기도구, 다음날 입고 갈 옷도 다려두고 구두도 잘 닦아서 꺼내 둔다. 통역 장소를 다시 확인하고 예상 도착시간을 시뮬레이션해본다. 컨디션 관리를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다. 당일은 가볍게 아침을 먹고 예상 소요 시간보다 20-30분 여유를 두고 나서고 회의장에는 시작 전 최소 30분 정도 먼저 도착한다. 처음 가보는 회의 장소 일 경우에는 특히 필수다. 현장에 미리 가서 차분하게 분위기를 익히는 것뿐 만이라 통역 장비 등이 문제없이 작동하는지 체크하고 동시통역인 경우 파트너와 분량을 나누기도 하고 어떻게 협업할지 사전에 논의하는 시간이다. 정리해둔 용어도 다시 한번 살펴본다. 할 수 있는 준비를 충분히 하고 하고 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 심적 여유가 있고 없고는 통역의 퍼포먼스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흐름을 따라간다.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해도 모르는 내용이 튀어나올 수 있고 다른 돌발상황이 생길 수 있지만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다. 그렇게 일을 잘 마무리하고 나면 기분 좋은 피로감과 함께 흡족한 마음이 밀려온다.


15년간의 통역을 돌이켜보면 많은 경험들이 스치지만 대학원 졸업하고 처음 나를 통역사로 소개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


“안녕하세요 통역사 OOO입니다.“


통역사로 첫발을 내린 곳은 미국 자동차 회사 G였다. 한국은 그들의 생산기지 중에 하나였고 나는 신형 소형차 개발을 엔지니어링 팀이었다. 독일, 스웨덴, 브라질, 스웨덴, 태국, 캐나다, 미국 출신 인재들로 이루어진 다국적팀이었다. 외국회사여서 직급과 상관없이 서로 이름을 부르는 수평적 분위기였다. 문제는 내가 자동차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는 점이었다. 기계치인지라 무엇이든 장비 작동에는 서툰 데다 쌩쌩 달리는 차가 무섭기만 해서 운전면허증을 따려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다. 입사 전에 자동차 용어 사전을 사서 나름 준비를 했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듯 피상적인 정보에 불과했다. 서스펜션이 어쩌고 저쩌고, 새시가 어쩌고 저쩌고, 분명 우리말인데 나에게는 외계어가 따로 없었다. 이해를 하지 못하고 단순히 기계처럼 들리는 대로 한->영, 영->한으로 옮기기만 하는 일은 이해하고 통역하는 것보다 에너지가 소모가 훨씬 크다. 게다가 그곳은 하루 종일 각종 회의가 끊이지 않은 조직이었다. 처음 몇 주간은 매일 일 마치고 파김치가 되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운전면허학원부터 끊었다. 운전을 배운다고 해서 엔지니어링을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신세는 면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분명히 효과는 있었다. 최소한 자동차의 어느 쪽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소형차 개발 프로젝트의 전체 그림을 이해하게 되면서 현재 어느 정도의 개발 시점에 와있는지도 감이 생겼다. 나보다 먼저 통역사로 일하고 있던 파트너 통역사 도움도 컸다. 그는 우리 업계에서는 드문 편인 남자 통역사였다. 본래 머리 회전이 빠를 뿐 아니라 공대 출신이라는 장점을 십분 발휘해 이미 조직 내에서 능력 있고 신뢰할 수 있는 통역사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새내기 통역사인 나를 친절하게 코칭해주었다. 덕분에 입사 후 3개월이 지나고부터는 신나게 일에 몰입할 수 있었다. 회의가 너무 많은 조직이라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하루 종일 통역하는 게 좋았다. 외계어 같기만 하던 엔지니어들의 말들도 더 이상 어렵지 않았다. 배움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정말이다. 나 같은 기계치도 엔지니어링 통역이 가능한 거 보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