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이보스J Jul 06. 2024

가슴으로 출렁거린 파리

(다시 읽기) 가슴의 미학, 김훈

11년 만에 파리에 다녀왔다.  

얼마 남지 않은 올림픽 준비에 한창인 모습이었다.   

11년이라는 시간 동안 파리는 끔찍한 테러, 코로나 같은 사회적 격변을 겪었다. 무엇보다 몇 년 새 치안이 안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꽤 많이 들었다.  우리가 머문 에어비엔비 주인은 지난 일 년간 투숙객 중에 몇 명이 소매치기를 당했다며 귀중품을 잘 단속하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했다.   


다행히도 내가 머문 동안 파리는 모든 면에서 환. 상. 그 자체였다. 아침에 잠깐 비가 오다가도 낮이 되면 말끔하게 해가 나와 저녁에는 선선해졌고, 밤 10시가 돼서야 해가 져 저녁 늦게까지 파리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었다.  올림픽 준비 때문인지 경찰들이 많이 보였고 그 덕분인지 집시나 소매치기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번 프랑스 방문의 하이라이트는 Brancusi 전시였다.

클라이언트 덕분에 퐁피두 센터 꼭대기층에서 열린 프랑스 주얼리 브랜드의 Private Dinner 파티에 참여했다.  게다가 덤으로(!) Bracuci 전시를  일반 관람객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저녁 색채를 머금은 파리 전경을 배경으로 한 그의 매끈한 조각품은 매혹적이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프랑스 여성들의 가슴이었다. 11년 전에는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번에 보니 많은 프랑스 여성들이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있었다. 파리 거리에는 브래지어의 속박에서 해방된 가슴이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커다란 가슴, 작은 가슴, 처진 가슴, 막 봉오리가 생기기 시작한 앳된 가슴까지.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이토록 자연스러운 모습이 왜 우리 땅에서는 ‘눈살을 찌푸리는 것, 민망한 것, 헤픈 것’으로 인식이 되는 것일까?


그뿐인가. 큰 가슴이 미덕으로 인식이 되면서 애먼 작은 가슴들은 도려내지고 그 안에 팽팽한 이물질이 자리를 잡는 일이 꽤 흔해졌다.


김훈 작가는 일찍이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그런 세태를 개탄했다.



”여자들의 젖가슴이란 그 주인인 각자의 것이고 그 애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신라금관이나 고려청자 백제 금동향로보다 더 소중한 겨레의 보물이며 자랑거리다.  여자들은 누구나 다 한쌍의 젖가슴을 키워내고 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젖가슴은 더욱 보편적이고 더욱 소중한 일상의 보물이며, 민족적 생명과 에너지의 근본인 것이다.  더구나 그 속에 살아있는 생명의 피가 흐르고 젖샘 꽈리에 젖이 고인다고 하니, 죽은 쇠붙이에 불과한 신라왕관과는 비교할 수 없다. 거리마다, 공원마다, 지하철마다 넘쳐나는 이 생명의 국보들은 새로운 삶을 향한 충동으로 우리를 설레게 하고 견딜 없는 것들을 견디게 해 준다.  


그런데 이 착한 젖가슴을 죄다 곪아 터지게 만든 실리콘이라는 물건은 미국 기업이 온 세계 여자들한테 팔아먹은 것이라고 한다. 철딱서니 없고 맹하기는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여자들의 젖가슴을 놓고, 누구의 가슴이 더 예쁘고, 누구의 가슴이 덜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몸의 아름다움에 대한 우열의 비교가 지금 이처럼 거대한 자본주의적 성형 산업을 일으켜 놓은 것일 테지만, 몸은 본래 그렇게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젖가슴에 관한 여러 감식가들의 견해를 살펴보니까, 빗장뼈의 중심점과 양쪽 젖꼭지 사이가 정삼각형을 이루는 구도를 으뜸으로 치고 있었다.  (중략).


여자들아. 당신들 가슴에 얼굴을 묻고 젖가슴의 삼각형 대칭 구도나 젖꼭지의 방향을 따져보는 사내들을 애인으로 삼지 말라.  이런 녀석들은 대개가 쓰잘 데없는 잡놈들인 것이다.  이런 남자들을 믿고 살다가는 한평생 몸의 감옥, 광고의 감옥, 여성성의 감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당신들의 젖가슴은 단지 젖가슴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맨먼저 하는 일이 브래지어를 푸는 일이다.  하루 종일 브래지어 밑에서 숨어있던 가슴은 김훈 선생의 말처럼 한 없이 착한 모습이다.  그러다가도 쓰레기를 버리러 잠깐 문밖을 나서거나, 집에 누군가 손님이라도 오면 주섬 주섬 브래지어를 다시 챙겨 입는다.


왜 우리는 아무 죄 없는 착한 아이를 숨기며 살고 있을까?


가슴으로 출렁거리던 파리의 거리가 아른거린다.  


표지사진: Unsplash, John Towner

#파리#프랑스#올림픽#Brancusi#브랑쿠시#퐁피두#가슴#김훈#밥벌이의지겨움





작가의 이전글 책을 쌓아놓고 원 없이 읽는다는 원대한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