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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꿍 Oct 06. 2020

수락산 등반일지

2020년 9월, 여름에서 가을 사이

바깥 운동을 좋아해 연애 초반부터 줄곧 너와 같이 하고 싶던 운동 세 가지가 있다.

마라톤, 테니스, 그리고 등산.

아직 하나도 못 이루고 있던 중 드디어 가 등산 가기를 수락했다. 평일에 일하며 주말에 몸 쓰는 건 보통 일이 아닌데 너랑 같이 산을 오른다는 기대에 한 주를 버텼다. 적당한 높이와 적당한 거리의 근처 산을 물색했고, 이전에 회사 선배가 추천해준 수락산으로 결정했다. 올라가 먹을 점심, 간식거리를 챙겨 아침 느즈막히 너와 산으로 향했다.


9월의 수락산은 무턱대고 덥지도, 그렇다고 계절이 지난 느낌도 아니었다. 하늘은 파랑 페인트를 쏟아놓은 것 같고 나무는 여전히 초록으로 빛나고 있었다. 회색 건물과 자동차 소리에 익숙해져 있다 걸음을 내딛을수록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고양이 마을로 향하는 느낌이 들었다. 너는 예상은 했지만 얼마 안 가 힘들다고 투정을 부렸고, 나는 적당히 어르고 달래며 산속으로 몸을 숨겼다.

파랑과 초록 뿐이었던

당과 수분을 보충하며 걷고 쉬기를 반복하니 적당히 높은 곳에 왔고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매일 저 바닥에서 하루를 보내는 서로에게 오늘이 위로가 되었으면 싶었다. 걷는 동안 절반은 멍을 때렸고 나머지 절반은 이런저런 얘기로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싶어 말했다.

"오늘 포함 나랑 산 3곳 같이 오르면 내가 커플 등산화 산다."

"약속 지켜라 너!"

조건부 사랑은 아니지만 이런 약속들이 쌓여가며 추억을 또 하나 담는다.

 

끝이 보이는 길은 때에 따라 동기부여가 되곤 해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힘이 솟았다. 이윽고 도착한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지나온 길과 가야 할 길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너와의 연애에서도 오르막과 내리막을 수없이 걷겠지만 다만 함께 걸을 수 있기를 바라며 사진을 찍었다. 그것도 잠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보온병과 컵라면을 꺼냈다, 너는 깜빡하고 김을 빠뜨린 채 충무김밥을 준비해 와 한껏 웃다 점심을 먹고 서둘러 산을 내려왔다.

라면을 먹기 위해 먼 길을 올랐는지도 모르겠다.

혼자가 아니어서 내려오는 길이 도통 지루하지 않았다.

오를 때 봐 뒀던 계곡에서 발을 담그고 놀다 버스에 올랐다.

너는 다음 주에 또 등산을 가자고 한다. 나보다 튼튼한 너를 보며 운동 좀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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