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특허 Mar 10. 2023

이메일로 체결한 계약은 효력이 있을까?

전자파일을 출력한 후 서명한 계약서의 효력 문제



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상대방을 직접 만나 계약서에 도장을 찍거나 서명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체결하는 부동산 계약도 상대방을 직접 만나서 이루어집니다. 계약 상대방과 약속을 정해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방문하면 공인중개사 소장님이 프린터로 출력한 계약서 2부에 계약 당사자들의 인감을 찍어 계약을 체결합니다. 상대방과 나는 계약서 하나씩 나누어 가집니다.


저는 직장에서 업무상 여러 상대방과 다양한 종류의 계약을 체결합니다. 그때마다 계약 상대방과 직접 만나 계약을 체결하기는 번거롭고 귀찮습니다. 



회사에서 계약서를 체결하는 방법


먼저 계약서 초안을 작성합니다. 작성된 초안을 상대방과 이메일로 주고받으면서 서로 합의점을 찾아갑니다. 원하는 바를 서로 밀고 당기면서 계약서를 수정해 갑니다. 합의에 도달하면 합의된 계약서 2부를 출력하고 인감을 찍거나 서명한 후 상대방에게 우편으로 보냅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상대방 인감(또는 서명)을 찍어 1부만 다시 저에게 우편으로 보내고 1부는 상대방이 보관합니다. 계약서 1부씩 서로 나눠 가지는 것으로 계약 체결은 끝이 납니다.


인감을 날인하거나 서명할 때 상대방을 직접 만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회사 인감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회사 내부 규정에 따라 절차를 거쳐야 하고 인감을 관리하는 부서에 직접 계약서를 들고 가야 합니다. 이는 상대방도 마찬가지여서 서로 직접 만나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계약서에 서명하는 경우에도 실무자인 내가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게 아니라 책임자 서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책임자에게 해당 계약 내용을 보고해 승인을 받고 책임자의 바쁜 스케줄을 피해 책임자를 찾아가 서명을 받아야 합니다. 상대방과 직접 만나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는 특별한 세리머니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습니다. 계약 조건을 협상하는 과정에서는 직접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메일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계약을 우편으로 주고받는 방법으로만 체결해야 할까요? 혹시 이메일이나 팩스로 계약서를 체결할 수 없을까요? 특히 계약 상대방이 외국에 있다면 국제 항공우편으로 서로 주고받는 것은 불편하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Fedex가 어련히 잘 배달해 주겠지만 계약서가 상대방에게 잘 도착했는지, 혹시 내가 주소를 잘못 기재한 건 아닌지 왠지 불안해서 배송추적 사이트를 들락날락하게 됩니다.


계약을 협상할 때 이메일로 파일을 주고받은 것처럼 우리 쪽에서 서명한 계약서를 스캔해서 PDF 등 전자파일로 만들고 이메일에 첨부해서 상대방에게 보낸 후 상대방이 그 전자파일을 출력하고 거기에 서명한 다음, 다시 스캔한 전자파일을 이메일에 첨부하여 저에게 보내면 어떨까요? 그렇게 체결한 계약서는 효력이 있을까요?



국내에서 이메일로 체결한 경우


계약서에 서명 또는 날인을 하는 이유는 계약 당사자들이 계약 내용대로 계약을 체결한다는 의사를 표시하기 위함입니다. 계약서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들어 있습니다.


“본 계약을 증명하기 위해 계약서 2부를 작성하여 쌍방이 서명 날인하고 “A”와 “B”가 각각 1부씩 보관한다.”


서명 날인한 계약서를 상대방에게 보내는 방법을 계약서에서 특별히 정하고 있지 않다면, A가 계약서에 서명한 후 그 서명된 계약서 스캔본을 B에게 이메일로 보내고, B는 첨부된 계약서 스캔본을 출력한 후 서명하고, 완성된 계약서를 스캔하여 A에게 다시 보내게 되면, 쌍방이 서명 날인한 계약서를 A와 B가 각각 1부씩 보관하게 됩니다. 이로써 A와 B는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계약 당사자 사이에 법적 분쟁이 발생할 경우 위와 같이 이메일로 체결된 계약서를 법원에 제출할 때에 증거로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판례를 찾아봅시다. 


법원에 문서를 제출할 때에는 원본을 제출하여야 합니다(민사소송법 제355조). 원본이 아니고 단순한 사본만에 의한 증거의 제출은 정확성의 보증이 없어 원칙적으로 부적법하고, 원본의 존재 및 원본의 성립의 진정에 관하여 다툼이 있고 사본을 원본의 대용으로 하는 것에 대하여 상대방으로부터 이의가 있는 경우에는 사본으로써 원본을 대신할 수 없으며, 반면에 사본을 원본으로서 제출하는 경우에는 그 사본이 독립한 서증이 되는 것이나 그 대신 이에 의하여 원본이 제출된 것으로 되지는 아니하고, 이때에는 증거에 의하여 사본과 같은 원본이 존재하고 또 그 원본이 진정하게 성립하였음이 인정되지 않는 한 그와 같은 내용의 사본이 존재한다는 것 이상의 증거가치는 없습니다. 다만, 서증사본의 신청 당사자가 문서 원본을 분실하였다든가, 선의로 이를 훼손한 경우, 또는 문서제출명령에 응할 의무가 없는 제3자가 해당 문서의 원본을 소지하고 있는 경우, 원본이 방대한 양의 문서인 경우 등 원본 문서의 제출이 불가능하거나 비실제적인 상황에서는 원본의 제출이 요구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지만, 그와 같은 경우라면 해당 서증의 신청당사자가 원본 부제출에 대한 정당성이 되는 구체적 사유를 주장·입증하여야 합니다(대법원 2002. 8. 23. 선고 2000다66133 판결).


위 판례에 따르면 만약 계약과 관련하여 상대방과 분쟁이 발생하게 되어 법원에 위와 같은 이메일로 체결한 계약서를 제출하면 상대방이 계약서 원본의 존재와 원본 성립의 진정에 관하여 다른 주장을 할 수 있고, 원본의 제출이 요구되지 않는다거나 위와 같이 이메일로 체결된 계약서가 원본이라는 점을 우리가 입증해서 법원을 설득하지 못하게 되면, 법원으로부터 ‘계약서에 기재된 내용대로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사실’을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국제 계약의 경우


국제 계약서를 체결할 때 주로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채택합니다. 영국법을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 국내 계약과 마찬가지로 PDF 등의 전자문서 형식으로 체결된 계약서는 계약 체결의 진정성립(서명 위조 등)의 문제가 제기될 우려가 여전히 있습니다(다른 대부분의 국가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계약당사자 사이에 이메일 등을 통해 주고받은 계약서와 계약당사자들이 서로 교환하는 서명페이지가 스캔본이라고 하더라도 계약서 원본으로 간주하며 원본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는 취지를 계약서에 명확하게 기재한다면 이메일로 체결한 계약서도 계약체결의 효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메일로 체결한 계약이 효력을 갖도록 하려면


이메일로 주고받은 계약서가 계약서 원본이고 원본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계약서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기재합니다. 이를 Counterpart 조항이라고 합니다. 


"This Agreement may be executed in one or more counterparts, and each of which shall be deemed to be an original, and all of which shall constitute one and the same instrument. Further, this Agreement may be executed by a signed copy sent by email or fax transmission which shall be given the effect of an original signature upon receipt by the other Party of the signed copy sent by email or fax transmission."


"본 계약은 하나 이상의 부본으로 이행될 수 있고, 각 부본은 원본으로 취급되며, 하나의 동일한 문서로 본다. 또한 본 계약은 이메일이나 팩스 통신으로 보낸 서명본에 의하여 체결될 수 있으며 상대방이 이메일이나 팩스 통신으로 보낸 서명본을 수신하는 즉시 원본 서명의 효과가 부여된다."



여담


저는 회사에서 주로 라이선스 아웃(license-out) 계약을 체결합니다. 라이선스 아웃 계약은 특허권자(licensor)가 상대방 실시권자(licensee)에게 사용권한(license)을 허락하고 실시권자는 그 대가로 특허권자에게 로열티를 지급하는 계약입니다. 그래서 라이선스 계약은 특허권자보다는 주로 실시권자의 책임과 의무와 권한을 정하게 됩니다. 


특허권자는 라이선스 계약의 효력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영향이 크지 않습니다(통상실시권 계약이고 계약의 대상인 특허의 무효사유가 없다는 전제하에). 왜냐하면 계약의 효력이 있다고 한다면 있는 데로 실시권자의 책임과 의무 이행을 주장할 수 있고, 계약의 효력이 없다고 한다면 없는 데로 실시권자의 권한 없음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허권자는 실시권자에게 실시권을 주지 않을 수는 있지만 강제로 실시하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실시권자는 실시권을 얻거나 포기하는 것이 본인의 선택입니다. 그래서 만약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특허권자는 계약의 효력에 대해 다툴 여지는 별로 없습니다. 


반면 실시권자 입장에서는 계약의 효력 유무에 따라 책임과 의무, 그리고 권한이 크게 달라지고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계약 효력이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