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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혠나날 Mar 28. 2022

당신의 이름에 만족하시나요?

지은,지현,지영,민지,소영,은혜,유진 ··


어릴 적 나는 같은 이름으로 불리어서 동시에 뒤돌아 볼 수고로움이 없는 이름을 원했다. 새 학기 새로운 반에 배정되면 나와 같은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고, 이름 뒤에 a나 b가 붙거나 키 차이에 따라 큰 OO, 작은 OO이라고 불리거나,

 <또 오해영> 드라마처럼 예쁜 해영이, 그냥 해영이 등의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이름을 원했다.

더 나아가 'ㅏ' 아이인지 'ㅓ' 어이인지 비슷한 느낌의 이름과 헷갈릴 필요도 없는 나만의 특별하고 독특한 이름을 가지고 싶었다.






특이한 이름은 어릴 때부터 관심을 많이 받는다. 관심이 고팠던 나는 자연스럽게 관심받고 소화하는 방법을 잘 체화하지 못했다. 어른들에게 딱히 주목받을 일이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로 이사를 가면서부터 유치원에서 또랑또랑 사회를 보던 시골 동네 자랑거리인 나는 사라졌다. 학창시절동안 나는 늘 그저 중간 또는 그 아래 정도에 위치되었다.


실제로 내가 그런 인간이었는지 나의 가능성을 성실하게 봐줄 인연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유달리 내 주위에 앞서 나간 이들만 가득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그 모든 것이 뭉개버린 찰흙처럼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합쳐졌을 것이다.



고구마 아니고 뭉친 찰흙



그래서 듣기에도 보기에도 예쁜 이름을 가지고 싶었다. 별다른 수식어 없이 이름 자체만으로도 빛이 나고 싶었다. 시대물을 자주 읽을 때는 설화, 선화처럼 고전적인 이름에 꽂혔다가,  어느때는 , 여름처럼 명사  자체뜻을 지닌 이름에 꽂혔다.


평범한 내 이름에 유일하게 다른 점은 어질'인' 한자가 아니라 참을'인' 한자가 들어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지만 난 변변하게 참을성은 없었음에도 참을 일들이 자꾸 생겨나기에 몇 해전 한자 개명을 했다.

이름 전체를 바꿀까도 생각해보았지만, 한자바꾸는 것도 이렇게 귀찮은데 이름 전체를 바꾸면 얼마나 더 귀찮을까 하는 맘에 그저 한자만 바꾸었다. 딱히 애정이 있어서라기보단 귀찮음이 이 이름을 지켜주었던 것이다.




내가 평범한 나의 이름을 거절하는 동안 나의 평범한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어떤 이는 자신의 이름을 많이도 아끼고 사랑해주었지도 모른다. 나에게 사랑받지 못한 이 이름은 그 어떤 이에게서는 충분한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내 이름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이름을 품고 있던 나란 사람의 문제였다. 내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름을 가지고 있더라도 내가 그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었을지,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이었을지는 알 수 없다.

사실 그 어떤 이름이든 이름으로 한 번쯤 놀림받아보지 않은 아이들이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특이한 이름으로 인해 주목받는 것이 괴롭고, 누군가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평범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 속상하다. 각자의 성격과 입장에 따라 상황이 180도 다르다는 것이 아이러니였다.


결국 평범하든 특이하든, 중성적이든 여성스럽든 이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름을 받아들이는 나라는 사람이 가장 중요했다. 그러니 나는 어쩌면 애꿎은 내 이름을 탓했던 지난 날에 사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름은 어느 순간 자신의 자리를 찾아 간다고 생각한다. 내 이름으로서의 자아가 느리게 뿌리를 내리는 동안 나는 내 소중한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이름이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갈지는 아직 모르지만 나는 내 이름에 나란 사람의 고유함을 그득히 담아 내 이름을 온전히 사랑하고 싶다.






아이유 님의 본명은 이지은이다. 그리고 지은이라는 이름의 친구를 한 번쯤 만나보지 않은 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지은이라는 이름은 흔하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보다 더 많은 지은 1, 지은 2, 지은 3 ·· 들을 만나보았기 때문이다.


아이유의 Blueming이라는 노래에는 "흥미로운 이 작품의 지은이 that's me"라는 가사가 나온다. 이곡의 작사가인 아이유는 작품의 지은이라는 뜻과 본인의 이름을 재치 있게 엮어 이런 가사를 써내었다.


이 가사를 통해 '지은'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움을 생각했다. 지은이는 어떤 것도 지어낼 수 있다. 이 가사의 지은이, 이 책의 지은이, 이 그림의 지은이. 세상의 수많은 가능성을 품은 이름이었다.



평범한 이름은 없다는 걸 알 것 같다.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는 이름이란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이름엔 무수한 가능성이 담겨있고, 그 이름을 사랑하고 아끼는 이의 하루하루가 성실한 개성의 페인트로 본인만의 이름을 칠해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의 이름 세 글자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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