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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혠나날 Jul 11. 2022

우울은 시나브로 와 나를 낙엽으로 물들인다.

내가 나라서 견디기 힘든 날  



갑자기 울적해질 때가 많다.

이유 없는 우울감이 습관처럼 밀려와 쉽게 내뱉는 중얼거림에 깜짝 놀란다.




어느 날인인가는 내 존재 자체가 너무 장하고 대견스럽다가도 어느 날인가는 내가 서있는 자리만 푹 꺼지는 싱크홀 같은 순간을 느낀다. 그대로 땅이 꺼져 내가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만 같은 질척하고 깊은 우울감에 빠져든다. 어떤 날은 너무 행복하다가도 어떤 날은 이유 없이 우울해지곤 한다. 행복해지는 이유가 우울해지는 이유만큼이나 다양하면 좋으련만, 날 우울하게 만드는 이유들은 지나치게 무궁무진하다.

'이런 걸로 감정이 동요된다고?' 하고 놀랄 정도로 사소하고 작은 이유들로 내 기분은 요동친다.

내가 좋아지는 이유보다 내가 싫어지는 이유가  많다. 내가 싫어지는 이유가 자꾸만 쌓이게 되면 내가 날 견디기가 힘들다.


내가 나라서 갑갑하고, 내가 나라서 신경질 나고, 내가 나라서 한계를 느끼고, 내가 나라서 안쓰럽고, 내가 나라서 맘이 쓰인다. 내가 나라는 존재를 자각하는 순간은 한계에 부딪혀 쓰러진  모습을  이고, 비로서야 나라는 테두리를 느끼게 된다.


나쁜 기억 지우개를 지닌 나는 내 삶에 행복한 기억을 더 많이 가지고 있음에도, 그 행복은 내가 나라서 행복했다고 생각하기보다 그저 내게 찾아온 행복 정도로 여긴다.

그렇지만 내 존재가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은 그것이 오로지 '나'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그제야 나를 쳐다보게 된다.

"뭐야.  거기 있었어?   정도의 그릇이었어? 내가 고작 여기 까지는구나!" 하면서.

행복은 내 덕이 아니어도, 우울함은 내 탓을 하는 인간이라 나는 나에게 꽤나 가혹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우울은 시나브로  나를 낙엽으로 물들인다.

나는 빨간색으로 변하며 화도 났다가, 노란색으로 변하며 그리워도 졌다가, 갈색으로 변하며 슬퍼도 했다가 떨어진다. 나의 우울은 파도처럼 빠른 주기로 왔다 멀리 가는  아니라 서서히 나를 잠식한다.

그래서 이 우울이 지나가는 순간도 계절이 바뀌듯 모르는 사이 서서히 빠져나오게 된다. 문득 어느 날은 행복했다가, 어느 날은 웃었다가, 어느 날은 따듯해서 주위를 둘러보면 물든 낙엽이 떨어진 자리에서 새로운 싹이 움트는 것이다.

 

내가 싫어지는 날도 결국엔 지나간다. 깊은 어둠 속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듯 한숨 푹 자고 나면 결국 그 기억도 흐릿해진다. 이 숨 막히는 짐의 무게도 결국 가벼워진다.







외국이나 호텔에 놀러 가면 가끔 바닥 전체가 카펫인 곳이 있다. 나의 우울함도 비슷하다.

 기본 옵션처럼 바닥에 깔려있다. 그러니  깨끗이 유지해야 한다. 자주 청소해주고 자주 돌봐주어야 한다. 방치하다간 금방 더러워지고 만다.  끈질긴 끈적함을 씻어내고 털어내기 위해 더 자주 노력해야 한다. 기본 옵션을 탓하며 부정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나를  가꿔보자고 다독인다.  우울을 과장해서 확대 해석할 필요도 없지만 외면해서도 안된다.

 

어떤 이유로 그 계절에 머물고 있든, 그 계절이 싫어 외면하고 있든 중요한 건 눈을 뜨고 내 우울을 쳐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인정하지 않으면 계절이 바뀌어도 나는 계속 내가 빠져있는 계절의 끝만을 잡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나의 계절, 우울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평생을 지고 가야 할 우울감이나 고뇌, 어둠 같은 건 가지고 싶지 않다.

그러니 사랑하는  존재를 오늘도 아끼고 한번  보살펴주자. 애달픈  존재를 위해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커튼도 치고, 건강한 음식도 먹고, 햇볕도 쐬고, 몸도 움직이고, 좋은 구절로  지친 영혼을 채워주자.

그리고 오늘 밤은 꿈도 꾸지 않는 깊고 깊은 잠을 오래오래 청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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