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살의 편입 준비 마지막 이야기 (2/2)

14년의 시간을 지나 완성된 그때 고3 시절

by 혠나날


편입 시험 날은 아주 추웠고 눈도 많이 내린 바로 다음 날이었다.

중요한 시험날인 만큼 꼭두새벽부터 밥을 먹고,

남자친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차에 올랐다.


지금은 남편이자 그 당시에는 남자친구였던 H는 뒤늦은 편입공부를 하는 나로 인해

고 3 학부형의 마음을 알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나의 편입 기간 동안 새로 시작할 나의 공부 가방을 사주고, 도시락을 싸고, 시험 날마다 새벽부터 나를 데려다주었다.

내가 시험장으로 들어가 있는 동안, 그는 차를 대놓고 학부모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멀리서 일하는 아빠와 자폐증의 동생을 보느라 겨를이 없었던 엄마와 함께인지라

고등학교 졸업식에서도 혼자였던 나는

14년의 세월이 지나 새로운 나의 학부형과 함께 그 시간을 덮어쓰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내가 메꾸지 못한 어딘가를 찾아 다시 시작하기 위해 돌아왔고,

이번에는 그 빈 곳을 메워줄 이가 하나 더 있어 다행이었다.




가장 베이직한 문제 유형이 많이 나오는 스타일의 시험 유형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길고 어려운 지문을 가진 학교들보다 베이직한 이 학교의 문제 스타일에 감을 찾지 못했다.

시험을 보기 한 달 전까지도 커트라인에 못 미치는 점수인지라 나는 초조해졌다.

역대 기출을 또 풀고 또 풀고, 분석하며 나의 습관을 버리고

학원에서 알려주는 그대로 문제를 푸는 연습을 중점적으로 했고 그제야 점수가 올랐다.

6-70점이던 점수가 90점대로 훌쩍 올랐다.

그렇지만 시험 당일에는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시험 당일까지도 나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익숙하게 시험이 시작되고 시험지를 받아 들어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어쩐지 나는 너무나도 붙을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고,

붕 뜨는 마음을 무시하기 위해 심호흡을 하며 ‘시끄러워 제발.’ 되뇌며 스스로를 단속했다.

1시간의 시험을 보고 나와 H와 만났다.

나는 할 만큼 했고 시험에 있어서는 그 어떤 아쉬움도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합격자가 발표되는 날에는 아주아주 떨렸다.

이미 한 번 실패를 경험해 봤기 때문이기도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합격창을 열어보니 “합격”이었다.

편입 공부를 한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총 3개의 대학에 붙은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특수교육학과”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편입 공부를 했던 시간을 돌이켜 보면 나의 선택에 있어서의 아쉬운 점이 분명히 있다.

1년씩이나 공부를 하지 말고 마지막 6개월에 몰아서 할걸.

마음의 여유를 갖고 운동도 좀 열심히 할걸. (4년 동안 운동했던 몸은 사라지고 7kg의 살이 붙고 말았다.ㅠㅠ)


이런 것들이 가장 큰 아쉬움이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았을 것 같다.

시간 회귀자처럼 모든 것을 알고 돌아가는 것이 아닐 테니까.


세상에는 너무 잘난 사람들이 많다.

다시 수능을 봐서 의대, 약대에 들어가거나 변호사가 되는 사람들.

그래서 누군가는 그 고생을 해서 왜 ”특수교사“를 하려 하는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내게 그럴 능력이 있더라도, 아니면 살던 대로 살 수 있었더라도

내가 어딘가에서 두고 온 미련을 자꾸만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모두에게 제눈의 안경이 있듯 나에게도 제눈의 직업 같은 게 콩깍지가 씌어있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래서 나는 이렇게 33살의 편입생활을 마치고

34살의 대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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