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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강주 Apr 18. 2023

갑자기 먹는 일기


스스로를 싫어하는 것도 딱히 없거니와 좋아하는 것도 딱히 없는, 어디에나 무리하지 않고 끼어들 수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도 많고, 그다지 상관은 없지만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것도 많고, 싫어하는 것도 굉장히 많다!


나는 매사 흠 ~ 좋아의 삶을 살아와서 내 취향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누군가가 뭘 먹고 싶어?라고 물어보면 그냥 다 좋아!라고 말했는데 요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살아온 나이가 이제 30에 가까워지는 만큼 취향도 확고해지는 것 같다. 좋게 말하면 단단해지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고집이 생기는 것이다.


고집이 생긴다는 걸 달리말하면 꼰대스러워지는 걸까나? 글쎄다.


예컨대 나는 정말 인기가 많은 치킨인 스노윙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들 좋아하길래 나도 좋아하겠거니 하고 시켜 먹어보았는데 이게 웬걸. 당최 무슨 맛으로 먹는지 알 수가 없다. 짭짤한 가루가 목을 간지럽히고 멀쩡한 치킨을 불량식품처럼 만들다니. 이후로도 몇 번이고 더 도전했지만 한 조각을 채 먹기도 전에 영 아니올씨다 싶어서 내려놓았다.


또 이런 것도 있다. 나는 어묵과 피시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떡볶이를 시킬 때도 어묵을 빼달라고 부탁하고, 마라탕과 훠궈를 먹을 때도 전혀 넣어먹지 않는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친구랑 훠궈를 먹었는데 문어볼을 먹어보라는 친구의 권유에 한 입 먹어보니 꽤 맛있었다. 통통한 어묵을 앞니로 가르고 사이에 마라 국물이 베어 들어 씹어먹기에 부드러웠다. 그런데 다시는 먹지 않을 것이다. 왜냐고? 그냥.


식성도 바뀌었다. 식성이라고 말하는 게 적당할지는 모르겠지만 식습관이나 식성이 대체로 근 2-3년 사이에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음식(대표적으로는 햄버거)은 하루에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먹을 수 있었고,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연속으로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독일에 가서 극심한 우울증과 귀차니즘을 겪고 난 뒤로는 하루에 한 끼를 엄청나게 폭식하는 악습관을 달게 되고서 매 끼니를 맛있는 것을 먹지 않으면 아예 안 먹는 삶을 살았더랬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한번에 짜파게티 두 봉지를 먹기도 하고, 이틀을 내리 굶은 적도 있었다.


이런 내가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배달? 굿, 자극? 굿, 접근성? 굿, 같이 먹을 친구? 굿의 세상에 빠지게 되자 나는 하루에 한 끼 먹던 음식양을 4끼로 늘렸다. 하루에 네 끼씩 처먹었단 말이지. 곧 빠지겠지 싶었던 살이 여태 안 빠지고 있다. 버릇도 나빠져서 집 밥도 두 번 연속으로는 먹기가 싫어졌다. 독일에 다시 가서 기강을 잡든지 해야겠다.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뭐냐면, 며칠 전에는 엄마 아빠가 김장 김치를 들고 내 자취방에 같이 방문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혼자 사는 나에게 김치라는 반찬은 주문배달 음식 안 먹는 날에 고기가 있어야만 먹는, 혹은 볶음밥에 쓰이는 양념과도 같은 존재감이 미미한 식재료인데, 김치를 두 박스나 가져왔다. 아뿔싸.. 그래서 나는 아빠에게 대패 삼겹살을 사달라고 했다. 집에 대패삼겹살 두 팩이 생긴 나는 "흠 고기 됴아~"를 외치며 에어프라이기에 돌려서 세끼를 연속으로 먹었다. (하루에 한 끼 - 두 끼 정도를 먹으니 대충 3일 정도 먹은 것 같다)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던 중 어제는 부추를 한 단을 사 와서, 대충 가위로 자른 후, 에어프라이기에 먼저 깔고 대패 삼겹살을 얹은 뒤 200도에 15분을 댑혔다.


별생각 없이 부추를 넣었는데 부엌 한가득 부추의 고소한 향이 퍼졌다. 조리가 끝났다는 소리가 들려 보았더니 대패 삼겹살의 기름이 흘러 부추를 적시고 뜨끈하게 공기로 데워져서 담백하면서도 적당히 기름진 부추찜도 완성되었다. 밥에, 엄마아빠가 준 새 김치를 꺼내 깨도 뿌리고, 큰 접시에 대패삼겹살과 부추를 먹는데 부추의 향이 참 좋았다. 부추의 식감이 참 좋았다. 우적우적 먹는데 질기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질겅거리는 부추의 식감에 기분이 들떴던 것 같다. 사실 아니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흥분한 걸지도 모른다.


밥을 먹고 노곤해진 탓에 낮잠을 잤다. 숨어있던 고양이도 내 무릎 아래에서 같이 자고 있었다. 전기장판 때문에 약간의 땀을 흘린 채로 잠에서 깼다. 밥 먹은 것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방을 쓸고 닦았다. 먼 훗날에는 지금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한심한 시기였다고 기억할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 고양이가 있고 부추가 있고 엄마 아빠가 준 김치와 곁들여 먹으라고 준 깨가 있어서 행복한 시기였다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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