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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Sep 07. 2023

[한자썰88] 同, 들것 하나의 지혜

흥하려면 동하고, 동하려면 흥하고…!

同(한가지 동): 冂(멀 경) + 一(한 일) + 口 (입 구)


갑골문 同(한가지 동)은 들것(=담가(擔架))과 그 뒤를 따르는 입(口)이다. 무거운 물건을 여러 명이 힘을 모아 옮길 때에, 옛날에는 들것을 많이 썼다. 그런데, 그때에 들것의 균형 유지가 아주 중요하다. 들것이 한쪽으로 잘못 쏠렸다가는 물건을 떨어뜨려 낭패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들것에는 구령(口令)이 따른다. 들꾼들이 발과 보폭을 맞추기 위해서다. 오른발 왼발이 서로 맞고 걷는 속도가 같아야 뛰뚱이지 않고 넘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보조(步調)를 맞추려고 한 명 또는 여러 명이 말소리로 붙이는 것이 구령이다. 갑골문 同의 하단부에 입(口)이 따라붙은 이유다.( 【 표 】 1 )


【 표 】 同의 자형변천

소전에 이르러 서체의 멋스러움을 보이려고 갑골문 同은 위로 삐친 끝이 지워지고 반대편에 남은 끝은 길게 늘여진다. 길쭉하고, 둥글며, 균등한 소전의 서체특성을 반영한 결과다. 이 때문에 同의 뜻을 그 모양으로 알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나, 갑골자의 당초 의미소들은 변함없이 유지되어 지금의 同에 이른다.( 【 표 】 5~ )


이와 같은 자형 유래로 보면, 同이 원래 ‘1 = 1’ 임을 가리키기 위한 글자가 아님을 알게 된다. 同은,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서로 다른 사람들이 힘을 모으고, 합의한 기준과 통제에 공감하며 행동하는 일체된 상태를 가리킨다. 同은 '1 + 1', 그러니까 협력과 공감 그리고 규율이다. 주)


다시 말하면, 同은 '동일성(同一性)'이 아니라 '화합력(和合力)'이 글자 생성의 모티브다. 구태여 '동일성(同一性)'에 대조시켜 '화합성(和合性)'이라 하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다. 성(性)은 사물의 성질이다. 성(性)이라고 할 때는 사물이 그 가진 성질들이 발현된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성(性)은 운명적이며 수동적이고 개체적이고 일방향이다.


이에 비해, 력(力)은 '원하는 것' 또는 '해야 할 것'을 위해서 그 가진 성질을 거스를 때에 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창발적이고 능동적이며 전일적(全一的)이고 관계적이다. 同은, 그런 의미에서  '화합력(和合力)'이라 풀어야 옳아 보인다.


【 그림 】 64괘 방원도

사족, 유가(儒家)가 추구하는 이상사회를 대동세상(大同世上)이라고 한다. 모두가 공평하고 서로를 위하며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도록 돕는 사회를 일컫는다. 대동의 어원은 『예기(禮記)』의 예운편(禮運篇)인데, '권력을 독점하는 자 없이 평등하며, 재화는 공유되고 생활이 보장되며, 각 개인이 충분히 재능을 발휘할 수 있고, 범죄도 없는 세상'이라 정의하고 있다.


요즘 어떤 유명한 사건으로 인구에 자주 회자되는, 64괘 중 하나인 천화동인(天火同人)과 화천대유(火天大有)를 통해서 도래하게 되는 세상이 바로 대동세상이란다. 그 사건에 연루된 이들의 대동세상은 과연 어찌 생겼을까 몹시도 알고 싶다.


그런데, 그 대동세상이 들것이 쓰이는 이유와 사용과정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들것을 쓸 때에는 유한자가 없다. 약한 규율이 존재하고 그러면서도 아주 잘 작동하지만 힘에 의한 지배(支配)가 아닌 공감하는 지도(指導)이다. 그래서 규율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 있어도 없는 듯하고 없어도 있는 듯하다. 지켜야 할 공동의 가치를 귀하게 여긴다.


들꾼들은 누구 하나가 과대하거나 과소하지 않다. 설사, 크거나 세더라도 그 위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대동세상의 철학적 핵심이, 들것 하나를 나타냈을 뿐인 同자 한 글자에, 오롯이 담겨 있다. 참으로 신박하고 귀한 글자이다.


興(일어날/흥겨울/기쁠 흥) 자가 있다. 일이 잘 되어 간다, 신나고 기쁘다, 흥겹다 등에 쓰인다. 그런데, 그 한가운데에 同이 자리한다. 어떤 것이 興하는데 同은 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예전부터 의아했었다. 그 궁금함이 갑골문으로 풀린다.


갑골문 興은 同에 아래위로 들것을 잡은 손을 보탠 모양이다. 興에서 손을 생략해서 同이 된 것인지, 同에다가 손을 보태서 興이 된 것인지 그 선후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두 글자는 태생이 같은 글자임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에 가르침이 찾아진다. 흥(興)하려면 동(同) 해야 하고 동(同)하려면 흥(興) 해야 한다. ( 【 표 】 A, B )


뇌피셜로 선후를 상상해 본다. 구령(口)을 따라 맞춘 것이 처음에는 들꾼들의 걸음걸이였으나 차츰 마음까지 서로 통하게 된다. 그쯤 되면, 사람들은 무거운 물건을 함께 옮기게 하는 것이 보이는 손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침내 興에서 네 개의 손(手)이 사라진다. 그것이 同이다. 同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익을 내려놓고 무언가 이루어야 할 것을 위해서 마음에 울림의 동조가 일어난 상태를 가리킨 것이다. 哥哥。


주)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어 사는 이유는 '1 = 1'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다. 서로 같은 것을 강요하거나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1'과 '1'이 서로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고, 그러면서도 화합할 수 있도록 '+'가 더해지고, 그 과정에서 '1 + 1'이 '2'가 아니라 '3'도 되고 '10'도 되고 '100'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 보고자 우리는 사회 속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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