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 반복, 변화 그리고 밥
飯(밥 반) = 食(먹을 식) + 反(돌이킬 반)
飯(밥 반)은 돌이켜(反) 먹는 음식(食)이다. 반복적으로 먹는 끼니라는 뜻이다. 다르게는, 쌀이나 보리 따위를 풀어지지 않은 만큼 끓여 지은 먹거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전자와 후자는 서로 달라 보이지만 사실 그 관련이 밀접하다. 사람들이 쌀, 보리를 먹지 않았다면, 그리고 먹기는 했더라도 경작하지 않았다면 飯 자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飯은 춘추시대(BC 770~403) 금문으로 처음 발견된다. 갑골문 食의 상대(商代)(BC 1600~1046)와 비교하면, 그 격차는 대략 수백, 아니 어쩌면 일천 년도 훌쩍 넘는다. 척박한 상고시대에는 '밥'과 '밥 아닌 먹거리'에 구분이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저 食 하나로도 충분했고, 그 세월은 그렇게 장구했다. 飯은 그렇게 대륙이 춘추시대를 맞아 철기와 우경(牛耕)에 익숙해 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飯의 조자(造字)와 농업생산성의 증대가 춘추시대에서 겹치는 것은 우연일 리가 없다.
그런데, 飯은 원래 명사 ‘밥’이 아니라 동사 ‘먹다’로 만들어졌다. 고대인들이 '먹는 것(食)'으로부터 연상되는 서술어가 '반복(反)'이었던 모양이다. 음식의 종류가 매냥 같고(反), 배고픈 때에 맞추어 자꾸 돌이키고(反), 위아래로 되씹는(反) 행동이 모두 '반복(反)'이니 그럴 법도 하다.
飯이 생기기 전인 갑골시대에 누군가가 '食食'이라 했다면, 상황을 잘 살펴서 들어야 한다. '음식 두 그릇'인지, '음식을 먹다'인지, 그도 아니라면 '~을(를) 먹어 본다'인지…. 그런데, 먹는 일은 인간 일상 최다반사! 아마도, 食의 그런 혼용은 혼란과 불편을 적지않게 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생겨난 글자가 飯(먹을 반)이다. 주 1)
춘추전국시대는 전란의 시대였지만 한편으로 농업 생산이 증대하고 제국간에 교역이 발흥한다. 잉여 농산물과 문물의 교환은 식문화 발달의 발달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드디어, 밥에도 종별이 생기고, '밥 아닌 먹거리'가 생활이 되기 시작한다. 餐((점심)밥 찬), 湌((저녁)밥 손), 饌(반찬 찬), 膳((고기)반찬 선),醬(장 장), 醢(육장 해), 餚(익힌 요리 효), 肴(안주 효), 菜(나물 채)...! '반복(反)'하지 않는 먹거리들이 풍성해지고 일상이 되니, 그것들을 가리키는 글자들도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주 2)
그렇게 '밥'은 '밥이 아닌 먹거리'들과의 구분이 필요해졌다. 게다가 불규칙하게 가끔씩 즐기는 '밥 아닌 먹거리'들에 반복해서 먹기라는 뜻이 담긴 飯 자를 붙여 쓰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새로 만들자니 번거롭고....ㅠㅠ 궁여지책!
"에라이, 늘상 반복해서 먹는 '밥'이니까 '(반복해서)먹다'인 飯을 그냥 '밥'으로 써야겠다!"
이상이 飯이 '밥'된 내력일 것이다. 아마도... 哈哈。
사족, 흔히 반(反)은 부정적인 어기(語氣)를 가진 글자로 알고 있다. 반대(反對)나 반항(反抗) 따위의 말들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골문 반(反)은 전혀 그런 뜻이 아니다.
갑골문 반(反)은 가파른 언덕을 오르려고 손을 뻗어 무언가를 끌어 잡는 모습이다. 그래서 반(反)은 원래 '(높은 곳에 오르려고 무언가를) 끌어 잡다'였다. 반(反)이 다른 뜻으로 가차되자 새로 만들어진 扳(끌어당길 반)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어떤 글자(反)의 뜻이 바뀌면 원래의 뜻을 유지시키기 위해, 그 뜻을 보강하는 다른 글자를 보태서, 새로운 글자(扳)를 만드는 방식은 한자에서 일반적이다.
그런데, 여기에 지혜가 있다. 끌어 당기는 것은 서로 반대인 것들이다. 자석의 N극과 S극이 그렇다. 만유인력(萬有引力)은 물질이 가진 반대 전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사람이 잘 어울리면 더 조화롭고 그 관계는 더 오래 간다. 이혼 사유의 1번은 성격 차이지만, 그 원인이 차이가 없는 결혼이 없어서 그럴 지도 모른다.
그러니, 반대는 충돌이 아니다. 전체의 각 반쪽들은 - 그 두 쪽들이 서로 섞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 다른 것 또는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저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진실은, 전체 안에서 다른 둘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고, 어느 한 쪽만으로는 절대로 전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反)은 반복(反復)의 의미로도 쓰인다. 그런데, 같은 것은 반복이 있을 수 없다. 같은 것이 같은 것으로 변한 것은 같은 것이니 변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반복도 아니다. 반복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어떤 다른 것의 병존을 내포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반(反)의 뜻은 반대가 되기도 하고 동시에 반복이 되기도 한다. 반대와 반복은 존재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문득, 그 원리를 정리한 것이 정반합(正反合, Thesis, Antithesis, Synthesis)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反)은 食을 나누어 밥을 구별시켰다. 그러자 그 食 안에서 '밥 아닌 것'들이 분출했다. 아마도 그 과정은 선후가 없이 동시에 일어났을 것이다. 이어서 食은 여전히 남았지만 그 안과 밖은 심대해졌다.
오늘 아침에도 그제나 어제처럼 챙겨 먹은, 밥 한 그릇에 변증법(辨證法)이 담겨 있었다.
주) 1. 중국어에서 동사를 중첩하면 '~해 보다', '좀 ~하다', 잠깐 ~하다 등의 뜻이 된다. 예를 들어, "这个看看吧!"는 "이것 좀 봐 보세요!"가 된다.
2. 수렵채취기 또는 저급한 초기 경작기에는, 食에 反이 어울릴 수가 없다. 한가지 먹거리를 대량으로 확보하기가 어렵고, 작물은 저장해 놓고 천천히 먹을 만큼의 소출을 얻을 수 없었으니 그렇다. 같은 것을 장기간 반복해서 규칙적으로 먹기가 어려웠으니, 食에 反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