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자썰96] 極, 조화와 공존

반고(盤古)의 희생과 소생

by 우공지마

極(다할 극) : 木(나무 목) + 亟(빠를 극)


반고(盤古)는 중국 창세 신화에 나오는 거인이다. 태곳적 우주에는 혼돈으로 가득한 알 같은 별이 하나 있었는데, 반고가 그 알을 깨고 나오자 마침내 하늘과 땅으로 나뉜 세상이 만들어진다. 반고가 땅을 디뎌 하늘을 떠받치고 거인으로 점점 자라니, 그는 광대한 세상을 버티는 기둥이 되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반고는 스스로 죽어 버리고 만다.


그러자 그의 사체에서 온갖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했다. 두 눈은 태양과 달로 날아올라 하늘에 달렸고, 몸통과 손발은 오악(五嶽)으로 우뚝 솟아 사방을 나누었다. 숨은 바람과 구름이 되고, 목소리는 천둥이 되었고, 피는 강을 이루고 땀은 비와 호수가 되었다. 머리카락과 구름은 별이 되고 몸을 덮은 털들은 초목이 되었다. 이 세상은 위대한 거인 반고의 희생과 그에 이어진 창발적 소멸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주 1, 2 )


【 그림 1 】亟의 자형변천

極(다할 극)은 亟(빠를 극)에서 파생했다. 그런데, 이 亟의 갑골자가 꼭 죽기 전에 반고를 닮았다. 천지(二) 사이에 우뚝 홀로 서서 그의 머리로 하늘을 떠받쳐 이고 있는 어마어마한 거인...!( 그림 1의 1) 亟(빠를 극)은 그 갑골문에 입(口)과 손(又 또는 攴)이 더해졌고, 極은 거기에 다시 나무(木)를 더 보탰다. 반고의 의지(口)와 수고(又 또는 攴)로 천지만물이 지어졌다는 것이다. 나무(木)는 반고가 천지를 떠받쳤음을 상징하는 동시에 만물의 조화를 유지시키는 질서를 나타냈을 것이다. 나무는 흙 그리고 공기, 태양과 쉴 새 없이 교통 하며, 그 맺은 것들과 사라진 것들을 아낌없이 돌려준다. 나무의 질서와 희생은 반고를 똑 닮았다. 주 3 )

【 그림 2 】明대 백과사전《삼재도회》(三才圖會)의 반고

자칫 極은 대립의 상징처럼 보인다. 양극과 음극, 북극과 남극, 극우와 극자 등등이 그렇다. 동양철학의 근본 개념 중 하나인 태극사상은 그렇지 않다. 태극이 음양을 낳고, 음양은 다시 만물을 생성한다. 음양은 서로 대립하지만 태극의 작용으로 동시에 조화를 이루면 순환한다. 즉, 태극은 음과 양이 변화 속에서 균형을 이루는 원리다. 따라서, 極은 대립이 아니다. 대립은 음과 양이 두드러진 시기에 일시적으로 생기는 현상일 뿐 본질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반고 설화는 태극사상의 이야기 버전이다. 極은 그 이야기를 글자에 담았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모습은 극과 극(二)으로 보이는 착각을 일으키지만, 그 보이는 극은 단지 존재를 설명하는 방식일 뿐이다. 극의 진짜 모습은 전체와 통합 그리고 질서다.


반고는 이야기한다. 세상이 조화로우려면, 우선 극은 극과 극(二)으로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변화의 조건이다. 필요한 것은 명확함이다. 그다음으로 극과 극을 잇는 균형(叹 없는 亟)이 있어야 한다. 필요한 것은 기다림이다. 마지막으로 그 균형은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함께 조정(叹 있는 亟과 木)해 가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희생이다.


보수와 진보, 좌와 우가 극렬하게 대립하는 대한민국의 정치구도는 반고의 상징이 보여주는 조화의 이상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각자가 처한 진영논리에 갇혀, 상대를 제거해야 할 적으로만 간주하는 사람들이 자꾸만 늘고 있다. 심지어 그 갈등의 개미지옥 속에 빠져 들어 양극의 각각이 지켜야 할 자신들의 핵심가치마저도 져버리기가 일쑤다. 그 양쪽 사에 빈 공간을 메워야 할 조화와 공존이 절실하다.


반고는 장장 일 만 팔 천년 동안 천지를 지탱하는 고통을 겪었다. 그런 세상의 극간의 소원함과 단조로움을 소멸시키기 위해 반고는 스스로를 죽였고, 그리고 다시 자신 모든 것을 버리면서 찬란한 만물들을 소생시켜 질서 안에 놓이기 했다.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반고가 천지를 지탱한 기나긴 고통의 여정은 상대에 대한 인정과 이해이다. 그의 몸이 소멸하여 재생한 것은 상대를 향한 양보와 타협이다. '이해와 인정', '양보와 타협'은, 갈라진 우리 사회의 극과 극을 이어주는 교량과 같다. 그리고, 그 교량을 튼튼하게 유지시키는 것은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다. '희생'이 없는 '이해와 인정', '양보와 타협'은 사상누각과 같다.


極 자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반고 설화가 지옥 같은 고통의 정치적 혼란기에 처해 있는 작금의 우리에게 던지는 지혜인 듯하다.


사족, 동양에 반고가 있다면, 서양에는 아틀라스가 있다. 그리스의 아틀라스는 지구의 서쪽 끝에서 손과 머리로 하늘을 떠 받치고 있는 신이다. 반고는 스스로 세상을 열어 고통을 짊어졌고 또한 희생적으로 스스로를 소멸시켜 온 세상의 기원이 되었고 그 운행의 조화를 일구어낸 무한히 긍정적 신이다. 그러나, 아틀라스는 신들의 전쟁에서 패한 형벌로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지구를 짊어지는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부정의 신이다.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두 신화는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차이를 잘 보여 준다. 자연에 대한 인간중심주의, 이성과 감성의 분리, 그리고 이성 우월주의, 논리와 분석 기반의 과학, 분리와 대립은 아틀라스의 몫이고, 인간과 자연의 일체성, 유물과 정신의 균형, 전체의 신비에 대한 겸허함, 통합과 조화는 반고의 몫이다.


極의 간체자는 极(다할 극)이다. 원래는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기 위해서 말이나 소의 등에 얹는 기구인 길마를 가리켰다. 좌변에 木은 그 재료를 나타냈을 것이다. 우변에 及은 소등에 길마를 걸치는 모양자 같기는 한데, 그 갑골자는 손으로 사람을 잡는 모양이다. 아마도 여기에서 '미치다' 또는 '닿다'의 의미를 연상했을 것이고, 부수인 좌변이 같은 데다가 두 자의 발음(중국발음 지(ji))마저 우연히 같으니 얼른 가져다 썼을 것 같다. 그러나 기원이나 의미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재미가 참 덜하다. 종교에 질색하는 중국공산당이 신화적 흔적을 싫어한 때문은 아니었을까?! 哈哈。


주) 1. 반고에 대한 기록은 삼국시대 오나라 서정(徐整, 220년 ~ 265년)의 《삼오역기(三五歷記)》에 최초로 나온다. 중국의 태고 신화(예, 삼황 설화)가 기원전 200년부터 이미 남아 있는데, 그 보다 앞선 때의 스토리가 그보다 한참 뒤에 발견되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 그림 3 】여와(女娲)(왼쪽)와 복희(伏羲)

2. 오악(五嶽) : 산동의 태산(泰山), 섬서의 화산(華山), 호남의 형산(衡山), 산서의 항산(恒山)으로 동서남북을 나누고, 그 중앙에는 하남의 숭산(嵩山)이 자리한다. 모두 중국의 명산이다.


3. 攴(칠 복)은 나뭇가지를 쥔 손이다. 다른 만물과 달리 사람만은 반고의 몸에서 나오지 않았다. 반고 이후에 여와(女媧)라는 반신반수의 신이 나타나 진흙을 빚어서 사람을 만들었다는데, 일일이 만들기가 힘들어지자 나뭇가지에 진흙을 묻혀서 흩뿌렸더니 튀겨 나간 진흙 방울들이 사람이 되었다 한다. 이 설화가 섞여 들어 極 자에 攴이 붙었을지도 모른다. 기이한 것은, 구약성경의 창세기에서 창조주 하나님도 진흙을 빚어 아담을 만드셨다. 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