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해서, 유명하지 않아서 이제는 사라진 소중한 추억
일요일 오전 11시. 점심을 먹기엔 이르지만 브런치를 하기엔 딱 좋았다. 우린 대구수목원 바로 앞의 조금 오래되고 작은 브런치 카페로 향했다. 그와는 사석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었으나 아직은 어색했다. 브런치 세트를 어떻게 다 비웠는지는 기억이 감감하다. 함께 딸려 나온 뜨거운 아메리카노만 홀짝였다. 먹은 것을 소화할 겸 대구수목원을 한 바퀴 걸었다. 차로 10분 거리의 마비정 벽화마을도 한 바퀴 걸었다. 그래도 겨우 오후 세 시 남짓이었다. 이쯤 보았으면 한나절 데이트로는 충분하리라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그도 예상보다 빨리 끝난 일정에 조금 당황한 듯했다.
도동서원에 은행나무가 그렇게 예쁘대요. 차로 한 시간 조금 덜 걸리긴 한다는데, 거기 구경 갈까요?
도동서원의 은행나무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에서 만났다. 여행기보다는 인문학에 가까운 책으로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 하나하나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작가의 깊은 지식과 통찰, 맛깔나게 이야기 푸는 솜씨가 함께 어우러져 더욱 읽을 맛을 돋운다. 3권에서 안동과 경주로 대표되는 경상권이 등장하지만 도동서원은 여기에 나오지 않는다. 도동서원은 전국의 굵직한 명소를 지나 6권에 이르러 등장하는데, 유서 깊은 문화유산과는 거리가 먼 대구의 이야기라 새삼 반가웠었다. 가는 길이 험하다는 것, 보호수로 지정된 400년 넘은 은행나무가 엄청나게 크고 아름답다는 것, 거기서 바라본 낙동강의 경치가 썩 괜찮다는 것만 아렴풋이 떠올랐다.
그는 흔쾌히 내비게이션에 도동서원을 입력했다. 화면에 잡히는 고불고불한 길이 심상치 않았다. 그의 차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가을방학>의 노래가 나왔다. <가을방학>은 당시 막 3집 음반을 출시했었다. 나나 알고 있을 법한 유명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곡을 그의 차에서 들으니 반가웠다. (나중에 어렴풋이 알게 되었지만 그는 일부러 <가을방학> 3집을 다운로드한 것이었다.) 얌전을 떠느라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고 속으로만 노래를 흥얼거렸다. 점차 시골로 접어드는 창밖은 온통 가을이었다. 가로수와 논밭, 공장을 휙휙 스치고 나니 본격적인 고갯길에 접어들었다. 길은 유홍준의 책에 나와 있던 것처럼 험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이제 막 새 차를 뽑은 터였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싶은데, 그때만 해도 운전은 할 줄 알지만 차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던 나는 그저 길이 험해 그가 운전이 힘들까 봐 미안하기만 했다. 괜히 말이라도 걸다 운전이 삐끗할까 봐 조심스러웠고 긴장했다. 긴장한 건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높고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얼마나 올라갔을까, 길 오른쪽에 쉼터가 보였다. 커다란 비석에 '다람재'라고 적혀 있었다. 유홍준의 책에 도동서원과 함께 등장했던 이름이다. 2층짜리 정자가 있고 자전거와 자동차 두어 대가 서 있었다. 우린 여기서 잠깐 내렸다.
낙동강의 경치가 썩 괜찮다고 했는데, 여기인 것 같았다. 굳이 2층 정자로 올라가지 않아도 시야가 탁 트일 정도로 충분히 높은 고개 위였다. 고개 아래 낙동강이 표표히 흘렀다. 강가에 흰 억새꽃이 가득 피어 바람처럼 일렁였다. 학인지 왜가리인지 두어 마리가 날아다니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맑았다. 저 멀리 겹겹이 서 있는 산의 늦가을 단풍은 무채색애 가까운 차분한 갈빛이었다. 차지도 덥지도 않았고 바람결도 차분했다. 고개 모양이 다람쥐를 닮아 다람재라고 한다는데, 소박하고 순진무구하며 조용한 경치가 다람쥐를 꼭 닮았다. 사위가 어둡지는 않지만 워낙 조용해 입을 떼기가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음침하다 싶을 정도로 인적이 드물지는 않아 다행이다. 이제 도동서원까진 채 20분이 남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도동서원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아찔할 정도로 급한 내리막과 커브가 반복되었다. 그렇게 재를 하나 넘고 나니 산과 강에 둘러싸인 작은 모퉁이 같은 터가 나왔다. 도동서원이라는 팻말이 먼저 서 있었고, 늙은 은행나무도 한 그루 서 있었다. 이파리가 모두 떨어진 은행나무 아래는 온통 노란 편린들이었다. 아직도 생생하고 샛노란 은행나무 낙엽을 밟으면 별사탕을 깨무는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우리는 서로의 간격을 조금 더 좁히고 섰다. 함께 은행나무를 곁을 한 바퀴 크게 돌았다. 하늘과 강과 억새밭이 보였다. 방금 넘어온 다람재가 보였다. 단정하고 오래된 도동서원 입구 문이 보였다. 그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나는 이렇게 큰 은행나무를 처음 보았다. 하늘과 땅이 완전히 뒤바뀐 것처럼 이파리가 깨끗이 떨어진 나이 많은 나뭇가지와 낙엽이라는 이름이 아까울 정도로 예쁜 은행나무 낙엽들이 만드는 장관을 처음 보았다.
이때만 해도 도동서원은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일요일 한낮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이라 더욱 인적이 드물었다. 몇몇 사람들이 다문다문 짝을 이루어 우리처럼 은행나무를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나에게 은행나무 앞에 서 보라고 했다. 나는 트렌치코트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어색하게 은행나무 앞에 섰다.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몇 장 찍어줄 뿐인데, 그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나도 그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우리는 함께 도동서원 입구로 들어갔다. 다듬어지지 않아 좁고 울퉁불퉁한 돌계단을 올라 대청마루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으니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다람재에서부터 죽 이어져 온 하늘은 여전히 깨끗했다. 하얀 억새밭은 여전히 강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강물은 하늘을 거울로 비추는 것처럼 투명했다. 윤슬이 은행나무 낙엽처럼 반짝였다. 해가 지는 속도에 맞추어 바람이 조금씩 차가워졌다. 그도, 나도 아직은 고독하고 외로운 사람들이었지만 우리는 따뜻한 침묵을 지켰다.
다시 수목원 근처로 돌아왔을 때에는 11월의 짧은 해가 완전히 진 후였다. 점심을 브런치로 조금 이르게 먹었으니 이제 저녁때가 되었다. 그는 이 근처에 잘 아는 식당이 있다며 나를 허름하지만 깔끔한 식당으로 안내했다. 이른 저녁 시간이건만 넓고 왁자지껄한 실내가 바글바글했다. 우리는 이 식당의 하나뿐인 메뉴인 백반 정식 2인분을 시켰다. 된장찌개에 고등어 구이가 딸려 나왔다. 지난번에 그가 삼겹살을 구워 주었던 게 생각나 이번엔 내가 고등어의 가시를 발라 주었다. 우리는 주차장으로 걸어 나오며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었고 그는 피식 웃으며 나의 어깨를 가볍게 주물렀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날 밤 다시 만나 오늘부터 1일, 정식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가을이 찾아오고 단풍이 절정을 맞이할 무렵이면 어김없이 도동서원의 은행나무를 떠올렸다. 저 멀리까지 보이던, 소박해서 한국적인 산과 강의 경치를 떠올렸다. 하늘 높이 나부끼던 나이 많고 촘촘한 나뭇가지와 부드러운 노란 은행잎을 떠올렸다. 낙엽 떨어지는 소리와 사람들의 낮고 두런한 목소리를 떠올렸다. 원래는 애환이 가득했겠지만 우리에게는 긴장 넘쳤던 고갯길과 다람재를 떠올렸다. 가끔 그때가 그리울 때면 핸드폰을 뒤져 은행나무 앞에 서 있던 서로의 사진도 찾아보곤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는 훨씬 젊고 보기 좋았다. 서로에게 보내는 어색하지만 애정 어린 미소도 아름다웠다. 우리는 7년 만에 다시 도동서원으로 길을 나섰다. 이제 다섯 살이 된 딸아이도 함께였다. 예쁘게 차려입는 대신 딸아이에게 예쁜 드레스를 입혔다. 소풍 도시락으로 김밥에 컵라면도 챙겼다. 남편은 그때처럼 내비게이션에 도동서원을 입력했다. 어째 도착 예정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이르다. 길도 고불고불하지 않다. 아직 새것 냄새가 날 것 같은 탁 트인 도로가 낯설다. 정말 이 길이 맞나, 내비를 제대로 찍었나, 조금만 더 이야기를 나누면 투닥거림이 될 것만 같다. 목적지까진 1km도 채 남지 않았다. 갓길에 불법 주차된 차가 많아진다. 그리고 예의 모퉁이 같았던 그 터가 나왔다. 도동서원이었다.
몇 바퀴를 빙빙 돌아야 할 정도로 차가 많았다. 경찰들이 주차를 돕고 있었다. 도동서원도 은행나무도 다행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지만, 그 옆은 한창 새 한옥을 올리는 공사 중이었다. 시골 장터처럼 바글바글하고 시끌시끌하다. 딸아이가 술래잡기를 하자며 우리를 재촉한다. 나는 다람쥐처럼 폴짝거리는 딸아이에게 장단을 맞추느라 뜀박질에 여념이 없다. 남편은 그런 우리를 어떻게든 예쁘게 카메라에 담으려 하지만 쉽지 않은 듯하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도동서원의 은행나무는 어지간히 유명해진 모양이었다. 터널까지 뚫어 길을 새로 냈다. 공사 중 팻말을 자세히 읽어보니 마을 조성 공사가 진행 중이다. 전망 좋을 자리에 카페도 두 군데나 생겼다. (그중 한 곳은 오픈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우리는 사람들을 피해 차를 돌렸다. 원래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바로 옆 마을 초입에 새로 생긴 티가 역력한 정자가 있다. 주변에 국화밭을 만들었는데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국화꽃밭이 나름대로 장관이지만 반갑지는 않다. 우리는 거기에 돗자리를 펴고 소풍 도시락을 꺼냈다. 도동서원을 찾았으나 미처 주차할 곳을 못한 차들이 거기까지 밀려왔다. 어수선한 마음으로 자리를 정리하고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모처럼 가을을 만끽하러 나들이를 나왔는데 그만 완벽하게 망쳐 버렸다.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새 길로 방향을 잡는데 저 끝에 샛길이 보인다. 아마 다람재로 가는 옛길일 것이다. 옛길 근처는 조명이 고장 난 것처럼 한낮에도 어두컴컴하다. 우리가 방향을 잡은 새길 근처는 (마을 조성 공사와 다른) 대형 공사 중이었다.
도동서원은 2019년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4번째로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의 소중한 유산이 주목을 받고 관심을 얻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낙후된 시골에 도로가 조성되어 교통편이 좋아지고 활기를 띠는 것도 바람직한 발전이다.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새로운 관광지가 조성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도동서원은 역사 깊은 유적지였다. 그러나 도동서원과 은행나무가 소중했던 이유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동서원과 은행나무 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 주는 특유의 고즈넉함과 호젓함이 있었다. 소박해서 한국적인 경치가 있었고 그래서 시선을 줄 수 있는 다문다문함이 있었다. 모퉁이 같은 터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어지는 힘들고 고불고불한 길 사이에 다람재라는, 도동서원과 은행나무와 결이 같은 오래된 쉼터가 있었다. 이제 도동서원과 은행나무만이 가지고 있던 소중한 유산은 한창 어수선한 공사가 모두 끝나도, 아무리 사람들이 뜸한 시간에 찾아가도 되찾을 수 없게 되었다. 삶보다 죽음에 가까운 늙은 은행나무는 우리의 일생 속에서 언제까지나 가을이면 은행잎을 노랗게 물들이고 편린을 조각할 테지만 여생을 조용한 시골살이로 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록 영원불멸한 것은 없지만, 우리 사이에 칠 년 전의 어색함과 설렘도 이제 없지만, 그동안 쌓아 왔던 소중한 추억들 중 하나가 사라진 것 같아 겨울처럼 슬펐다.
나의 인스타그램에 있던 추억의 사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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