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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Dec 12. 2023

보호자의 양가감정

그 감정 정상입니다.

"자야, 통화되나?"

"석자야 잠깐 나와볼래?"

친척의 전화벨소리와 선생님의 부름이 들려오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엄마와 둘째와 셋째와 막내의 입원 보호자가 되어라는 부름이었다. 나에게 아픔이란 일 년에 한번 앓는 열병뿐이고 그마저도 비타민 수액 한방이면 나았다. 나는 아픔을 옆에서 지켜보는 쪽이 많았다. 오늘은 병원에선 조연인 환자의 보호자 이야기를 하려 한다.

에피소드 1

나는 엄마가 언젠가 한번은 아플 거라고 생각했다.

. 자식을 저리 많이 낳았으니 안 아픈 게 이상하다. 엄마가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 때면 아기를 낳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했다. 나의 망상과 달리 엄마는 치질 덩어리를 낳고 있었다. 중3 겨울, 치질 수술을 위해 나와 엄마는 반도병원에 머물렀다. 무료인 6인실이 없어 1인실에서 하루 자게 되었다. 치질은 맹장염 같은 것이니 무섭진 않았다. 다만 보호자 공깃밥 비용과 난생처음 보는 소변줄이 걱정이었다. 겁이 없어서 였을까? 고요한 1인실이여서일까? 병실이 집보다 안락하게 느껴졌다. 아마 2박 3일이어서 그랬을 테다.

에피소드 2

4명이 탄 오토바이가 꿀렁~ 구렁이를 밟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운전자는 18살 상현, 그 뒤에 15살 춘석, 12살 민경, 8살 화석이 타고 있었다. 민경과 화석은 모험을 떠나고 싶었는지 제발 같이 가자고 졸라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그 시각 우정학사에서 자습을 하고 있던 나를 선생님이 불러내었다. 동생들이 교통사고로 합천고려병원에 이송되었으니 가보라는 부름이었다. 병원에는 엄마와 동생들, 친척이 와있었다. 상현이는 개방성 골절, 춘석은 무릎뼈에 금이 갔고, 민경이는 턱뼈와 치아뼈가 부서졌다. 그리고 화석이는 대퇴골이 동강 부러졌다. 한 오토바이에 4명이나 탔다는 사실과 뼈가 부러진 x-ray 사진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초가을의 냉기가 올라오는 보호자 간이침대에 누워 제일 덜 다친 춘석이와 주님을 원망했다.

치아와 턱뼈가 부서진 민경이는 합천에서는 치료가 어려워 진주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나와 민경이는 진주로, 엄마와 춘석이 화석이는 합천으로, 민석이는 집으로. 온 가족이 흩어졌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대기하며 더 위급한 환자를 보며 안심했고, 수술 전신마취가 풀린 후에는 민경이 호흡소리가 힘겨워 불안했다. 수술하면 나아지겠지 싶다가도 결석으로 개근상을 못 받는 건 아쉬웠다. 학교에 안 가고 병실 침대 위에서 수능 공부를 할 때나 보호자 밥 대신 편의점에서 사 먹는 덴마크 우유는 또 좋았다. 사고의 충격은 잠시이고 원망은 하룻밤 만에 덧없이 사라졌다.

에피소드 3

2015년, 오토바이 사고에서 열외였던 민석이는 시골에서 친척 집 농사를 도우며 지냈다. 배가 아파 보건소 약을 먹으며 버티다가 맹장이 터져 생긴 복막염으로 응급수술을 받게 되었다. 나는 병원에 와보라는 부름에 퇴근 후 고속버스를 타고 대구에서 진주로 갔다. 이번에는 낮은 간이침대에 민경이가 앉아 있었다. 병실 냉장고에는 유리병에 담긴 주스만 가득했다. 민경이와 병원 뒤편 삼겹살집에서 푸념했다. '다 커서 미련하게 왜 참았나'

에피소드 4

코로나 백신이 유행이던 여름날, 민경이는 난소 한 쪽을 떼어내는 수술을 하게 되었다. 함께 살며 더욱 각별해진 나는 처음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간호를 계획했다. 입원 보호자가 되려면 코로나 음성 결과가 필요해 입원 직전 PCR 검사를 하였다. 도란도란 병실에 앉아 넷플릭스를 같이 볼 생각에 수술 걱정은 뒷전이었다. 코로나만 아니면 된다. 짐을 챙겨 현관문을 나서기 전 보건소에서 문자가 왔다. 코로나 양성입니다. 격리 통보 시까지 자택에서 대기하라는 내용이다. 보호자 없이 혼자 수술할 동생이 뒤늦게 걱정되었다. 암일지도 모른다던데... 격리된 보호자는 불안감에 밤을 지새웠다.


처음은 낯설었다. 두 번째는 부정했다. 세 번째는 분노했다. 네 번째는 우울했다. 보호자로 지내는 동안 싫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밉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는 여러 마음을 마주했다. 가족을 간병한다면 의무와 희생이 뒤따른다. 난 가끔 어느 길가에서 본 돼지같다. 커다란 엄마돼지가 아기돼지 세마리를 업고 있는 캐릭터의 엄마돼지. 나는 등을 내어줄 든든한 힘이 없는데 가족들이 자꾸 어부바를 하고 올라탄 기분이다. 나는 휘청휘청 한다. '당연히 장녀니까.' 라는 강요들이 희생정신을 짓누른다. 가족애보다 이기심이라는 양가감정이 충돌한다. 나 정말 못된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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