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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Feb 15. 2024

명절주의보

다정함으로 예방하세요.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네이버 메인 뉴스에는 "설 인사도 없이 전 달라는 새언니"라는 제목과 "명절 갈등 활활"이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쏟아졌다. 1년에 두 번, 매년 반복되는 명절은 갈등의 밭이다. 나는 시댁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반면 남편은 소파에 슬라임처럼 누워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밭은 폭발하고 만다. 거기다가 더해 누군가 아기 소식을 묻거나 설거짓거리가 쌓이면 가시가 돋아난다. 다행히 이번 설은 지난 추석과 달리 무사하게 보내었다. 글쓰기 주제가 다정이라 그런가? 명절에 가장 필요한 것은 다정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 당일, 아침 8시에 오라는 시어머니의 부름에 남편을 깨웠다. 몇 번을 깨워도 남편은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지난 추석에도 이랬었는데 데자뷔가 따로 없다. 간신히 일어나 씻고 나온 그에게 말했다. "자기 깨우는 거 너무 힘들어!!" 아침부터 나의 심기가 뒤틀리면 곤란한지 남편은 "미안해. 화해하자"라고 했다. 싸우지도 않았는데 남편의 입에서 화해라는 동그란 말이 나오자 기분이 풀렸다. 방심은 금물. 시댁에 가기 전이니 안심하긴 이르다.

시댁에 가면 차례를 지내고, 가족이 모여앉아 밥을 먹고, 김해의 산소도 가고, 밀양의 고모 댁에 가야 한다. 남들처럼 시댁에서 자고 오는 건 아니기에 하루 만에 모든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시댁에 도착하니 시어머니는 고구마 전을 굽고 계셨다. 전은 바로 구워 먹어야 맛있다고 했던 아들의 말을 기억하고 차례 지내기 직전에 구워 먹이려는 마음이 보였다. 연기 가득한 집안에서 나는 나의 할 일을 찾았다. 제기를 꺼내어 과일과 음식들을 차례상 위에 올렸다. "대추와 밤은 한곳에 담아야지", "사과와 천혜향은 왜 하나씩 놓았니? 3개 올려라" 시어머니의 이런저런 지시들에 신경이 곤두섰다. 방심 안 하길 잘했다. 역시 명절이 이래야지. 시어머니는 연기의 매운맛 때문인지 친절하지 않았다. 마음이 상하려는 순간 남편이 시어머니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폭신한 손길에 시어머니의  말속에 달달함이 피어났다. 다행이었다.

산소에 가기 전,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에 들러 커피를 샀다. 운전하는 나대신 남편이 사이렌 오더로 주문을 넣었다. 나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인데 웬걸 뜨거운 아메리카노로 잘못 시켰단다. 나는 뜨거운 커피를 받아들고 또 아쉬워졌다. 남편은 미안했는지 신호가 멈출 때마다 커피 뚜껑을 열고 손부채질을 하며 뜨거움을 식혔다. 남편의 조그마한 행동으로 나의 명절 불쾌지수는 내려갔다.  

길어질 뻔한 명절 주의보는 다정 덕분인지 하루 만에 해제되었다. 얼죽코(얼어 죽어도 코트)를 고집하는 내게 패딩을 사준 남편이 괜히 고마워지고, 나의 불편함을 살펴보고 챙겨주는 다정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불평보다 다정에 신경 쓰니 조그마한 다정이 세포 하나하나에 배달되는 기분이었다. 불쾌지수가 올라갈 것으로 예측되는 명절에는 다정을 찾아 나서야 한다. 다정함에 주의를 기울이면 마음 상황이 호전되어 특보 발표 가능성이 희박해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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