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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May 22. 2024

애증의 가이드

1투어

회사에서 우수사원 해외 연수로 1인당 300만 원짜리 패키지로 터키에 왔다.

약 20명가량 직원 전원이 입을 모아 이상하다고 하는 한국인 인솔 가이드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그는 74년생 노총각이다.


여행 출발 3일 전 가이드는 공지사항을 상세히 적어 문자를 보냈다. 나는 업무 폰이니 개인 폰 연락처로 일정 안내를 해달라고 문장를 보냈다. 그에게 답장이 왔다. 자기한테 연락하지 말란다. 내가 고객이었는데 말이다.


카파도키아는 흙먼지가 많고 미끄러워 위험하다고 한다. 그는 내 검은색 테바 샌들을 보자마자 절대 안 된다고 운동화를 챙겨 신으라고 한다. 뭔가 세하다.


여행 1일차 열기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여성분들 치마나 원피스 입으면 바스켓에 올라갈 때 빤스가 보일 수 있다고 웃음을 띠고 경고한다. 버스에서 내려 여직원 1~2명과 스몰토크를 하다가 또 팬티 이야기를 한다. 꽃무늬 팬티, 곰돌이 팬티면 난감하단다. 난 속으로 뭐 저런 샠기가 있지 생각했다.


내가 본 터키 여자들은 이쁘다. 가이드가 터키 여자는 아래가 없다고 한다. 아래? 왁싱을 해서 없다는 뜻이란다. 면도날로 제모를 해서 까끌까끌하다고 구체적으로도 말한다. 제모 이야기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간 에버랜드는 힘드긴 해도 좋은 곳이었다. 가이드가 51살 먹어 놓고 만약에 여자친구가 생겨서 에버랜드 가자고 하면 때릴 거라고 한다. 거북하다.


하얀 지형, 지구의 신비를 볼 수 있는 파묵칼레에 갔다. 가이드는 자유롭게 놀고 4시 10분까지 모이라고 했다. 나는 온천에 발을 담그고 한바퀴 돌았다. 멀리서 보이는 온천에서 수영하고 노는 사람들이 너무 행복해보인다. 시각은 3시 40분. 저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 나도 즐길 테야 하며 서둘러 갔다.

가이드는 비가 올 거 같다라며 크고 굵은 목소리로 가지 마라는 식으로 말한다. 갑자기 예정에 없는 비 소식 때문에 만약에 비가 오면 후드득 바람과 함께 거세게 몰아치기 때문에 위험해서라고 우리 직원에게 전해 들었다. 가이드는 비 소식 있어서 안됩니다 라고만 말한다. 나는 왜 그렇게 정색하면서 말하세요라고 한다. 이해는 하지만 나는 당장 비가 오지 않았고 비가 오더라도 비 맞을 각오도 되어 있었기 때문에 꿋꿋이 가겠다고 했다. 가이드는 각자 짐을 챙기라고 하면서 신발을 지키던 자리를 벗어난다. 아 난 몰라 갈래라고 한다. 그 자리에는 내 신발이 있었다.

마음이 상한 나는 결국 멀리에서 행복해 보이는 온천 사진만 찍을 수밖에 없었다. 시각은 3시 50분. 집합 시간까지 나는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낭비했다. 비는 끝까지 오지 않았고 나는 화가 나서 망고주스를 사 먹었다. 20분 동안 어떤 공지도 없었다. 제일 화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언제나 현재를 살고 싶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기분까지 잡쳐버렸다.


정색 이슈 다음날 열기구를 타기 위해 4시 50분에 로비에 캐리어를 끌고 모였다. 꽤 긴박한 순간, 상무님이 부탁하신 장미 오일을 깜박한 것 같아 정신이 번뜩 들었다. 상무님의 부탁이었던지라 진짜 두고 온 것인지 룸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가이드는 나를 보고 캐리어를 열어서 확인하는 것이 빠르다고 한다. 캐리어를 열고 듬성듬성 생리대와 옷 사이에 끼워둔 장미 오일을 찾아 들추는 상상을 했다. 나는 순간 방에 다녀오는 것이 빠를 것이라고 판단하고 방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러자 또 크고 굵고 강압적인 목소리로 캐리어를 열란다. 나는 더 단호하게 방에 있는 게 확실하니 방에 가겠다고 했다. 키를 받고 뛰었다. 방에는 다행히 오일이 없었다. 잘 챙긴 모양이다. 나는 빈손으로 돌아가면 가이드가 나에게 면박줄거라는 걸 예상했다. 방에 빈 오일 박스가 있다. 그것을 프로메테우스의 횃불처럼 들고 귀환했다.


설명만 해줄 땐 괜찮다. 내가 느낀 그가 사용하는 농담, 경고의 질이 안 좋다. 저급하고 부정적이다. 일 많이 하고 돈 적게 버셨으면 좋겠다. 그가 자주 하는 화법을 빌리자면 못 살고, 망하고, 최악으로 때려 박으면서 싸구려 농 때문에 인생이 더럽게 쓰길 바랐다. 이 글을 쓴 것은 여행 7일차. 글이 부적이였는지 이후 가이드는 어딘가 편안해졌다. 여전히 부정적 어투가 많긴 해도 농담의 빈도가 줄었다. 친해지니 괜찮은 거 같기도... 애증이다. 아무튼 마무리는 좋았다.




아래는 그의 언어습관 기록


목 막혀 죽습니다

믿을게 못됩니다

근데 저는 여기 살라고 해도 못 삽니다.

엉터립니다

한국의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거 ~~

올리브나무 30년 한국 사람은 열받아서 다 갈아엎어버릴 거예요. 한국 사람이랑 안 맞아요.

뜨거워요. 타죽어요

싸구려 뷔페 식당입니다.

절대 사지 마십시오. 절대 하지 마세요.

단점 교통편 없습니다. 무조건 걷습니다. 많이 걷습니다.

구석에서 주무시면 못 찾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때려 박으면 저렇게 될까요?

열받은 시민들

강원도 씨감자 심는 게 다 망해가지고 클 났습니다.

짜증이 버럭버럭 납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시간이네요

더럽게 씁니다. 그냥은 못 먹을 정도로 씁니다.

집에 가려고 하다가 죽을뻔했습니다.

우리 망했습니다.

절단나는 거고 중간 정도 절단났습니다.

박살 납니다.

이 등신들이 4절까지 준비해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불만입니다.

발악들을 하네요. 발악들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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