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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Jun 05. 2024

눈물의 여왕

터키산 눈물이 왔어요~

나는 강하다. 남들이 보기에도 내가 보기에도 그러하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만난지 이틀 된 사람들에게 내가 말했다.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중 한 명은 나를 싫어하고, 두 명은 나를 이유 없이 좋아하고,  나머지 일곱 명은 나에게 무관심하대요. 난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집중하려 해요.”

이 말을 하니 사람들은 나더러 멘탈이 강하다고 한다. 또 굳이 덧붙이자면 이번 터키 여행에서 모두가 싫어하던 가이드에게 정색을 하는 역할도 내가 했다. 담당일진도 마다치 않고, 언제나 씩씩하고, 삶을 힘차게 굴리는 듯한 나는 꼭 사자처럼 강해 보였을 테다.

나는 이번 터키 연수에서 눈물의 여왕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터키는 나에게 눈물 버튼이다. 인스타그램 속 나는 분명 행복해 보였을 텐데, 사자의 탈을 쓴 양은 매엠매엠 처량하게도 울었다. 그 시작은 글이었다. 내가 글을 쓴다고 하니 사람들이 자꾸 왜 글을 시작했는지 물었다. 나는 쉽게 설명하지 못했다. 또 시작은 인생 이야기였다. 솔직함을 무기로 삼은 나는 버스 안 대표님 옆자리에 앉아 인생사를 말하고 있었다. 주마등같이 지나가는 삶이 무게 추 마냥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원래 내 자리로 돌아간 나는 이유 없이 울기 시작했다.

눈물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괴롭혔다. 세수를 하다가도, 인스타그램 속 예전 동영상을 보다가도, 친구와의 약속이 깨졌을 때도, 나의 개그가 묻혔을 때도, 뒤풀이에서 맥주를 따르다가도, 처음 받는 보살핌 앞에서도... 회사 사람들에게 조울증 환자처럼 보이면 아니 되니 나는 눈물 영업에 나섰다. “나 너무 행복해서 울었어요. 이게 다 인생에 대한 보상 같아요”, “갱년기인가 봐요~ 참내”, “아니면 생리 전 증후군이거나요” 나의 눈물에 유일하게 폭소하는 영화에게는 별안간 눈물 셀카를 보내고, 동생에게는 꼴뚜기같이 눈이 퉁퉁 부은 사진을 보내며 웃으려 애썼다. 하지만 이스탄불의 간판불과 아무리 눈씨름을 해도 눈물병은 나아지지를 않았다.

터키에서의 마지막 밤, 훔치려 했던 눈물이 결국 폭발했다. 나는 본격적으로 울기 위해 호텔 룸을 조용히 빠져나와 로비에 자리를 잡았다. 화장지도 한통 들고나왔다. 손으로 눈을 가리고 오열각을 잡고 있는데 외국인 커플이 하필 건너편 소파에 앉는다. 아쉽지만 밖으로 나가 적당히 울 곳을 찾았다. 야심한 새벽시간에다가 총기 허용이 되는 외국이니 멀리 나가지는 못했다. 나는 호텔 문을 지키는 가드 옆에 쪼그리고 앉아 메엠메엠 울었다. 파티를 마치고 돌아가는 드레스 입은 여인들과 내 모습이 대조된다.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그만하려면 이유라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메모장을 켰다. ‘상대성 행복, 보살핌의 역설, 눈물의 은폐, 강한 척하지만 약한 나, 방어기제’ 그럴듯하게 적어내려갔지만 이유는 못 찾았다. 그저 우는 나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실컷 울고 방으로 돌아가는 엘리베이터 안, 여행을 시작한 외국인이 나에게 묻는다. "Are you Okay?"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슬픔의 눈물을 받아두는 병이 있었다. 눈물병을 매우 소중하게 간직하고 성스럽게 여겼기에 무덤에도 같이 묻어주었다고 한다.나의 눈물은 솔직함의 대가이자 성사이다. 그 눈물은 고귀하다. 니체가 삶의 고통을 '가볍고 어리석고 귀엽고 활발한 나비'와 같이 받아들이라고 했던가. 고통, 상실, 좋고 나쁜 것을 포함하여 자신의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이 운명이며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랑한다는 것이 바로 아모르 파티(Amor fati)라고 한다. 이유도 모르고 우는 나도 운명이리라. 운명을 사랑하리라. 아모르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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