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은 안전민감증에 걸려있다. 뉴스를 보다가 벌떡 일어나 완강기를 찾고, 샤워를 하면서 수막도 만들어 보았다고 한다. 여러 안전 수칙도 생겼다. ‘첫째, 화재 시 세탁실 뒤 문을 열고 피난 사다리를 찾을 것. 둘째, 지진 시 책상 밑 또는 화장실로 갈 것. 셋째, 토네이도를 만나면 지하로 도망갈 것. 넷째, 전기차는 89%만 충전’ 수칙은 사건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추가되었다. 나는 사고를 기사로 접하면 재난 영화를 볼 때처럼 몰입하다가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현실로 돌아오듯 안심했다. 최근엔 가까운 타인의 죽음을 보며 한 줌만큼 안타까워했다.
나와 영아는 웃으며 출발했고, 슬픔에 잠긴 채 돌아왔다. 즉흥적으로 떠난 여름휴가에서 생긴 일이다. 침대에 몸을 걸치고 머리를 땅으로 향하게 거꾸로 누운 사진을 찍으며 영아와 나는 깔깔 웃었다. 무슨 멘트가 웃길까? 머리를 맞대고 릴스에 이렇게 적었다. ‘이거 찍다가 머리 터질뻔했지’. 다음 날 아침, 나는 이 멘트가 거북해졌다. 영아 남동생인 환이의 오랜 친구가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였다. 환이의 친구는 최근에 수성구 1등 정육점 사장이 되었다며 기뻐했었고, 200일간 만난 여자친구도 잘 어울려 보기 좋았다고 한다. 얼마 전부터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다가 잠든 사이 뇌출혈이 왔고, 그날 점심에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머리 터질뻔했다며 깔깔 웃은 그 멘트는 조용히 바꾸었다.
영아는 돈을 아무리 벌어도 죽음 앞에서 허망하다 느꼈다. 장례가 끝나고 영아의 인스타그램에는 9장의 하늘 사진과 죽은 친구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 올라왔다. 나는 인스타그램 피드를 파도 타고 들어가 죽은 이를 염탐했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가을 겨울 봄 우리의 마지막 여름만 보내면 사계절’이라는 글과 디테라는 별명을 가진 여자친구의 사진이 있었다. 1년이 지난 오늘 나는 또 죽은 이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갔다. 그의 시간은 30살로 멈추어 있었고 사계절을 채우지 못한 피드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떠나간 친구의 시간이 더 이상 흐르지 않고, 새롭게 더해질 기억이 없다는 것에 슬펐다. 멈춘 피드에 숨겨진 죽음을 관람하고 내 멋대로 동정했다.
사실 친구의 동생의 친구가 떠난 소식은 완벽한 타인의 죽음이다. 내 일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고, 나의 안위에 안도했다. 그런 내가 조금은 징그럽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요절을 꿈꾸었던 내가 징그럽게 살고 싶어 한다’이기도 하다. 상실을 경험한 환이의 슬픔을 이해한다면 나는 더 살고 싶어질 것이다. 고통은 모두에게 피어나고, 이별은 아무리 단련해도 처음처럼 휘몰아친다. 나의 고통을 상상하며, 남편의 고통을 상상하며 가능한 열심히 살아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