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에 빌보드 1위한 썰 푼다
마이클 잭슨은 1958년 미국의 인디애나주 게리의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여덟 째로 태어났어요. 철강 일용직 노동자였던 마이클 잭슨의 아버지 조지 잭슨은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할 정도로 음악에 진심이었는데요, 그는 음악에 재능을 보이는 아들들을 데리고 ‘잭슨 파이브’라는 밴드를 결성하죠. 그중 마이클 잭슨은 가장 어린 나이였지만, 가장 뛰어난 가창력으로 메인 보컬을 맡았어요. 가늘지만 힘 있는 마이클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독특한 음색이었던 데다가, 호소력 짙은 가창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곤 했거든요.
이후 잭슨 파이브는 공연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노래하기 시작해요. 지역의 작은 페스티벌부터 학교 행사, 심지어는 옷을 벗고 몸을 섞는 성인 바에까지 찾아가 무대에 오르죠. 이는 밴드의 매니저이자 그들의 아버지였던 조지 잭슨의 학대와 강요 때문이었다고. 그럼에도 점차 많은 대중들과 소통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 잭슨 파이브는, 1969년 흑인 음악의 대명사인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해요. 이후 <I want you back>을 포함한 4곡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리며 인기의 절정을 달리죠. 이때 마이클 잭슨의 나이는 고작 12살! 그는 최연소로 빌보드 1위를 달성해 기네스북에 기록되기까지 한다고. 그렇게 잭슨 파이브는 흑인 비틀즈로 불리며 역사가 기억하는 위대한 보이 밴드가 되죠.
* 모타운 레코드: 미국의 흑인 음악 시장을 이끌었던 음반 회사.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군요. 그런데 마이클 잭슨은 홀로 무대를 채우는 가수 아닌가요?
맞아요. 우리가 알고 있는 마이클 잭슨은 혼자서 스테이지를 누비는 솔로 가수인데요, 그는 1971년 13살의 나이로 솔로로 데뷔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현장에서 보고 들었던 것들을 바탕으로 직접 작사와 작곡을 시작했고, 이 분야에 대단한 두각을 보이며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죠. 이후 그는 프로듀싱의 거장인 퀸시 존스*와 만나 앨범 <Off the Wall>을 발매해요.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무려 2천만 장이나 팔렸는데요, 대중의 뜨거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그래미 어워즈*는 마이클 잭슨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모든 부문을 휩쓸어도 모자랄 판에 고작 퍼포먼스 상 하나를 받는 데에 그친 거죠.
*퀸시 존스: 미국을 대표하는 프로듀서로, 그래미에서 29개의 상을 휩쓴 음악계의 거장.
*그래미 어워즈: 세계적으로 가장 위상과 권위가 높은 미국의 음악 시상식.
내성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누구보다 야심이 가득했던 마이클 잭슨은 흑인 음악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차기작에 온 힘을 쏟아부었어요. 4년이라는 기간 동안 매일 스튜디오를 들락날락하며 완벽한 앨범을 만들고자 피나는 노력을 했죠. 그렇게 탄생한 것이, $%name%$ 플로터에게도 아주 익숙할 앨범 <Thriller>! 이 앨범에는 〈Billie Jean〉, 〈Beat It〉, 〈Thriller〉 등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곡들이 담겨 있는데요, 무려 660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전 세계에 마이클 잭슨 열풍을 일으켜요. 이 앨범 하나로 마이클 잭슨은 1980년대를 상징하는 인물이 됐죠. 그가 뮤직비디오에서 입었던 빨간색 가죽 재킷이 대유행을 하는가 하면, 1984년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총 8개의 부문을 석권하며 최다 노미네이트, 최다 수상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고.
이를 통해 마이클 잭슨은 대중음악의 판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요. 바로 철저하게 백인 중심이었던 음악 시장의 생태계를 완전히 뒤바꾼 것! 그가 등장하기 이전, 흑인들은 주로 소울, 펑크, 재즈를 즐겼다면 백인들은 록, 팝, 발라드를 향유했어요. 하지만 마이클 잭슨의 음악은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복합적인 성격이 강했죠. 그 결과, 여러 장르가 매력적으로 뒤섞인 마이클 잭슨의 음악은 인종을 불문하고 남녀노소 즐기고 사랑할 수 있었어요. 이와 같은 그의 성공은 이후 수많은 흑인 아티스트들이 음악 시장에 자유롭게 자리 잡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뿐만 아니라 인종의 장벽을 허문 마이클은 흑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어요. 흑인도 누구나 빈민가를 탈출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었고, 어떤 분야에서든 재능을 마음껏 펼치고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죠. 이는 흑인의 인권 신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음악 활동을 통해 사회에도 선한 영향력을 미쳤다니 마음이 참 따뜻해지네요. 무대 위의 그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마이클 잭슨은 무대 위를 휘어잡는 카리스마로 대중들에게 문화적 충격을 선사했어요. 사실 그가 등장하기 전의 대중음악은 ‘듣는 것’이었지, ‘보는 것’은 아니었거든요. 마이클 잭슨만의 신선한 연출과 화려한 퍼포먼스의 파급력은 대중을 들썩들썩 움직이게 했죠. 무대 퍼포먼스의 지평을 열며 그전까지 없었던 댄스 가수의 개념을 새롭게 탄생시킨 거예요. 달 표면을 걷는 듯한 문워크, 무대 아래에서 토스트처럼 튀어나오는 토스터 기법까지. 그의 퍼포먼스는 대중들의 눈을 완전히 사로잡았다고.
이렇듯 음악에 혁신을 불러온 팝의 황제답게, 그는 뮤직비디오에 스토리를 집어넣은 최초의 가수이기도 했어요. 1980년대의 뮤직비디오는 단지 음악을 홍보하는 하나의 수단일뿐이었지만, 마이클 잭슨은 여기에 스토리와 영상미를 추가해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었거든요. 뮤직비디오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켜,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열었죠. 이로써 라디오나 턴테이블*로만 즐기던 음악은 뮤직비디오나 무대와 함께 보는 콘텐츠로 자리잡았다고.
* 턴테이블: 레코드플레이어에서 음반을 돌리는 동그란 받침대
음악 방송을 태어나게 한 아버지가 바로 마이클 잭슨이었군요!
마이클 잭슨은 전 세계인으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높은 인기를 누렸는데요, 그래서인지 언론사들은 쉽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그를 먹잇감으로 삼았어요. 당시 마이클 잭슨은 몸에서 멜라닌 색소가 사라져 피부의 일부가 하얘지기 시작하는 희귀병을 앓고 있었죠. 하얀 반점을 가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화이트 메이크업을 하고 다녔지만, 언론에서는 마이클 잭슨이 ‘백인이 되고 싶어 성형을 한 것이다’ 라는 루머를 이리저리 퍼뜨렸다고.
또, 마이클 잭슨은 13세 소년을 성추행했다는 혐의를 받기도 했어요. 이는 그가 집을 놀이공원처럼 꾸미고 아이들을 초대해 함께 놀았던 것에서 시작된 파문이었죠. 어린 시절부터 연예인의 삶을 누렸던 마이클은 평범한 유년기 시절을 평생 동경했는데요,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어서도 어린아이와 같은 삶을 살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그는 집 전체를 ‘네버랜드’라는 놀이공원으로 꾸미고 아이들과 놀면서 시간을 보냈죠.
바로 이때부터 언론은 ‘마이클 잭슨은 소아 성애자다’ 라는 프레임을 씌우기 시작해요. 설상가상으로 그는 성추행 혐의까지 뒤집어쓰게 되죠.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피해자라 주장했던 소년의 부모는 마이클 잭슨의 재산을 노리고 아들을 협박하면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증언하라 지시했던 거였다고. 마이클이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도 이와 같은 오해들은 끊이지 않았고, 그가 죽은 이후에야 모든 사건이 거짓임이 밝혀졌대요.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했던 진심이 그렇게 왜곡됐다니, 너무나도 안타깝네요.
이처럼 마이클 잭슨은 수많은 루머로부터 고통받았던 인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어요. 오늘날에는 다수의 연예인들이 기부에 앞장 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도우며 사회 전체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데요, 그 시초가 바로 마이클 잭슨이라고! 그는 1985년 ‘위 아 더 월드 프로젝트’를 주도해 전례 없는 가뭄을 겪은 에티오피아를 위한 모금에 앞장섰어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모인 금액은 총 4400만 달러로, 이를 통해 마이클 잭슨은 기근에 시달리던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을 살렸다고.
또, 그는 1991년 아동 학대에 반대하고 아동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해 ‘힐 더 월드 재단’을 설립했어요. 모금을 위해 진행한 월드 투어 수익금을 전액 기부해 사회의 안전망 바깥에 있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데에 힘썼죠. 이처럼 마이클 잭슨은 기근, 인종 차별, 세계 평화, 아동 인권 등 여러 사회 문제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자신이 갖고 있는 영향력을 선하게 활용했던 예술가였어요. 그랬기에 그가 세상을 향해 던졌던 메시지들은 지금까지도 길이길이 기억되고 있다고.
그저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라고만 생각했는데, 따뜻한 마음과 선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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