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석 Jan 25. 2022

1.녹색예술가의 삶과 죽음-나는 나무입니다.

1. 나는 나무입니다.

나는 나무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이 보실 사진은 나를 ‘녹색예술가’라고 부르던 사진가가 나의 생애를 기록한 것입니다. 내 주위에는 나보다 아름답고, 오래 살고, 그래서 더 유명한 나무들이 많은데 이렇게 사진집의 주인공이 되어 많은 분 앞에 서게 되니 어색하기만 합니다. 나는 서울 강남 재건축 저층 아파트에서 40여 년간 살아온 나무입니다. 우리들은 이 시간동안 5층 높이의 아파트 전체를 가릴 정도로 자랐습니다. 친구들 중엔 아파트 10여 층 높이보다 더 높이 자란 나무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10년, 20년, 30년, 40여 년 동안 자라면서 녹색의 시간을 조금씩 쌓았습니다. 건물만 덩그러니 서있던 아파트는 어느새 우리들의 모습과 함께 살아있는 녹색 풍경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들은 스스로 풍경이 되면서 동시에 우리가 있던 주위 공간의 풍경도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매년 새로운 곳에 이사 온 것 같다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은 내년엔 재건축때문에 어떤 모습으로 변화가 될지 예상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내년에 어느 정도 클지, 어떤 방향으로 가지를 틀지, 그리고 어떻게 잎을 만들지 미리 정하지 않고 현재의 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와 현재를 보는 시각이 다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미래를 준비합니다. 그것을 예상하고 계획하는 과정을 보면 정말 놀라울 때가 많습니다. 특히 미래를 그린 모습을 현실에서 똑같이 만들어내는 능력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런 미래의 그림 속에는 현재와 관계되고 연결되어 있는 것들이 빠져있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미래의 그림을 그릴 때 현재의 굴곡 있는 시간과 공간이 완벽히 사라진 무결정 무결점의 백지에 그려서일까요? 그림 속에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과 공간은 지워지고 사라져서 깨끗하고 완벽한 미래 세계만 보일 때가 많았습니다.      


내가 살던 이곳에도 아파트 재건축 논의가 나오면서 사람들은 미래의 시간과 공간을 앞당겨서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리는 재건축 조감도에는 과연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파트 재건축에 모두 빠져 있을 때부터 오히려 우리들은 더 자유로워졌다고나 할까요? 언젠가부터 매년 봄이 오기 전에 우리들의 가지를 치는 전정작업도 사라지면서 우리들은 그야말로 사람들의 관리에서 벗어난 것 같았습니다. 우리들은 숲에서 자라는 나무들처럼 햇볕을 향해 우리들의 가지를 계속 뻗어갔습니다. 





집으로 매일 지나는 길. 나무는 원래 여기에 있던 건물처럼 항상 그렇게 있었던 존재입니다. (개포주공1단지)





집앞에만 나가도 저 멀리 구룡산이 부럽지 않은 산책길입니다.(개포주공1단지)





본격적인 재건축이 시작되기 전 이곳에 살던 세입자들이 모두 이주를 하고 아파트 단지 도로는 학생들의 등하교 길이 되었습니다.(둔촌주공아파트)





농구대가 있는 놀이터는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여서 한여름에도 시원합니다.(개포주공1단지)






웬만한 성인보다 더 큰  메타세콰이어 길. 뜨거운 한 여름에도 볕이 들어올 틈이 없을 정도입니다.(개포주공1단지)




세입자들이 모두 떠난 아파트 단지안에 자전거를 타고 하교하는 학생들.(둔촌주공아파트)





플라타너스 나무로 둘러싼 놀이터 공원. 공원 안은 대낮이지만 빛이 들어오지 않아 마치 밤처럼 어둡습니다.(개포주공1단지)




아파트 나무길을 걷다보면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서 마치 숲속을 지나는 것 같습니다.둔촌주공아파트)





아파트의 경계에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늘 덕에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뜨거운 여름 볕을 잠시 피할 수 있습니다. (개포주공1단지)




아파트 놀이터 앞에서 네발 자전거 보조 바퀴를 떼고 두발로 달리던 순간.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습니다.(개포주공1단지)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창문과 베란다를 가려서 밖을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개포주공1단지)





아파트와 마주한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이 나무 벽을 만들었습니다. 아파트 5층 높이는 이미 훌쩍 뛰어넘었습니다.(개포주공1단지)


친구들과 함께 요리조리 신나게 자전거를 타던 길.(개포주공1단지)




나무의 뒷모습이라는 게 있을까요? 나무 밑을 지나는 할머니의 뒷모습과 나무의 모습이 비슷해보입니다.(개포주공1단지)




아빠가 초등학교 때 심은 1층 높이의 감나무가,  20여년의 시간 동안 아파트 높이만큼 자랐습니다. 엄마와 기념으로 감나무 앞에서 사진 한 장을 남겼습니다.(개포주공1단지)




양옆으로 거대한 메타세콰이어길을 걷다보면 마치 명상길에 이른 것처럼 경이롭기까지 합니다.(개포주공1단지)




재건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플랭카드. 나무는 재건축이 되면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 알고 있을까요?(개포주공1단지)




슬픈 일, 힘든 일이 있어도 이렇게 단지 내 나무들 사이를 걷다보면 어느새 기분이 좋아집니다.(개포주공1단지)




‘이 에세이는 서울연구원·서울특별시 평생교육진흥원에서 수행한 2020년「서울 도시인문학」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습니다’


*다음엔 2부 '우리들의 시간'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