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우리들의 시간
우리 나무들이 살던 곳은 5층~10층 높이의 저층 아파트로 사람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재건축을 추진하자는 논의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재건축 안전진단 검사를 통과하고, 조합이 만들고, 그리고 시공사를 선정할 때마다 등 아파트 곳곳에 공고들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나무들은 이렇게 살기 좋은데 왜 사람들은 이곳에 무엇인가를 다시 지을까 싶었지만, 사람들은 건물이 낡아서 녹물, 난방문제가 생기고, 그냥 놔두면 안전사고, 도시의 미관 문제뿐만 아니라 주택공급을 늘려야 하는데 도시에서는 더 이상 땅이 없기 때문에 기존 건축물을 허물고 그 땅에 공사해서 새로운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는 우리 나무들은 재건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그것이 진행되더라도 그냥 있으면 되는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 나무들이 살던 아파트 곳곳에는 살던 세입자들은 떠나야한다는 공고장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정해진 날짜까지 이주하지 않는다면 강제 이주시키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자 단지 내에 살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제까지 우리 그늘 밑 대형 평상에 계셨던 할머니들도, 매일같이 우리 곁을 지나면서 바삐 출퇴근하는 주민들도, 그리고 단지 내 학교에 등하교길을 떠들썩하게 지나다니던 아이들도 모두 떠나갔습니다. 대신 사람들이 떠난 그 집이 빈집임을 알리는 ‘공가’라는 글자와 함께 ‘출입금지’ 글자는 계속 늘어갔습니다. 어느새 아파트에는 사람들의 시간이 모두 빠져나간 것처럼 조용해졌습니다.
사람들은 떠났어도 우리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반복되는 흐름에 맞춰 가을, 그리고 겨울을 맞이하였습니다. 40년을 이렇게 살았으니 내년에는 별다른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거의 사라져갔을 때는 무엇인가 불길하였지만 우리들은 다가오는 봄을 준비하는 평화로운 날들을 보냈습니다.
‘이 에세이는 서울연구원·서울특별시 평생교육진흥원에서 수행한 2020년「서울 도시인문학」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습니다’
다음엔 3부 '우리가 그린 그림'이 연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