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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Aug 22. 2024

엄마 죄송해요

며칠 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 여보세요? 어 엄마

- 내가 방금 사진 하나 보냈는데 한번 봐봐

- 잠깐만!


엄마가 보낸 사진은 아빠가 입원했던 병원의 건의서였다.

나는 그냥 대충보고는

- 어 봤어!

- 거기 전화번호 옆에 거기 뭐라고 적어야 하노?

- 전화번호 옆에? 사진이 잘려서 안 보이는데

- 아니 사진 거기 오른쪽에 있잖아?


다른 일을 하다 전화를 받아서 그런지

나는 엄마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엄마는 자꾸 오른쪽에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무슨 소린지 이해가 되지 않아 살짝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 엄마 오른쪽은 사진이 잘려서 안 보인다고!

도대체 뭘 하는 거냐고? 다시 천천히 말해 봐 봐

- 아이참! 거기 비어 있잖아!

(살짝 우물거리며) 거기 전화번호 밑에

빈칸에 뭐라고 적어야 하냐고

엄마는 어렵게 물어보는 눈치였다.


나는 다시 사진을 보았다.

다른 칸은 다 채워져 있는데 전화번호 밑에

비어 있는 칸이 하나 보였다.

그 자리는 E-ㅡmail를 적는 칸이었다.


그 순간 종이를 보고는

얼마 전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앞전에 아빠가 입원해 있을 때 간호사가 너무 친절해서

간호사 이름을 적어 친절하다고

칭찬 메시지를 남겼는데

다음번 아빠가 입원하셨을 때

간호사가 찾아와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더라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럴 줄 알았음 더 자세하게 적을 텐데

되려 미안하다고 했다는 엄마 말이 생각났다.


엄마는 이번에도 아빠가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

칭찬 메시지를 남기려고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영어를 배우지 못한 엄마는

이 메일을 읽을 수가 없었고

빈칸도 다 채워야 간호사에게 더 좋을까 싶어

나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순간 엄마에게 짜증 내며 말했던 게 왜 그리 죄송하던지.

용기 내어 나에게 물어봤을 텐데

말귀도 못 알아듣고 짜증만 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 아 그거! 엄마 그 칸은 안 적어도 돼!

- 아 그래? 안 적어도 되나?

- 어 그거는 비워 놓아도 되니깐 빼고 적으면 돼

- 어 알았다.


엄마는 학창 시절 공부를 참 잘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엄마의 암기력은 정말 끝내준다.

엄마 형제자매 제부 외숙모 조카 사촌 손주들의 생일날

그리고 온 친척분들 제삿날 등

기억하지 못하는 날짜가 없을 정도록 오만 날짜들을

줄줄 외우고 있다.


하지만 엄마는 3남 5녀 중 맏딸로

한창 공부해야 할 시기에 보릿고개를 겪으면서

엄마에게 교육해 줄 여건이 아니었다고 한다.

장남인 외삼촌에게 투자를 하다 보니

엄마는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런 엄마는 60세가 넘어서야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공부할 때도 영어가 참 어렵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형편만 좋았어도

아마 더 멋지게 살았을 우리 엄마

그것도 모르고 짜증만 낸 못된 딸.


나보다 10배 100배는 똑똑하고 지혜로운

우리 엄마

앞으로는 엄마가 물어보면 짜증 내지 않고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 착한 딸이 되어야겠다.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아는 우리 엄마 참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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