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한바탕의 크레파스 꾸러미처럼 온다. 올해도 그랬다. 살랑거리는 햇살은 발그스레한 벚꽃에, 샛노란 개나리에, 그리고 마지막에는 수줍은 백합에 까지 차례로 떨어졌다. 그러면 어김없이 주민들은 집 앞에 나와 수채화 같은 봄날을 음미했다.
집 앞에 핀 봄날을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 엄마 몰래 찾아간 사탕 가게가 기억나곤 한다. 그 즈음에는, 모아둔 쌈짓돈을 주머니에 고이 모셔두고 하교하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어린 시절 유일한 보물창고는 총천연색의 사탕들이 가득한 그 가게였기에, 사탕 가게를 생각하기만 하면 나는 마치 연인을 기다리는 소녀처럼 수업이 끝나기 몇시간 전부터 설레곤 했다. 아마 모든 아이들이 그랬던 것 같다. 학교가 끝나고 헐레벌떡 뛰어가면 이미 나와 같은 수십명의 초등학생들이 가게 안에서 북적이고 있었다. 인기 제품은 금새 동이 났기에 아이들은 경쟁하듯 사탕을 집어가곤 했고, 누가 어떤 사탕을 집었느냐에 따라 하교후의 인기가 좌우되곤 했다. 종종 남자 아이들은 여자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했다. 감히 세계대전에 비유할수 있으려나. 원하는 맛을 집었다며 사탕을 머리 위로 높이 쳐들고는 “아싸, 내꺼다!” 라고 외치던 그 즈음의 아이들은 마치 신성로마제국을 점령한 나폴레옹과도 같았다. 아무튼 학교 후 사탕가게는 그 동네 초등학생들이 모두 모이는 격전지이자, 보물섬이었다. 아, 보물섬이었기에 격전지였던 건가? 어쨋거나 사탕가게는 그 당시 초등학생들에게는 그 어떤 명품매장 보다 핫한 장소였다.
하지만 전쟁중에도 탈영병은 있지 않았던가. 아니, 염탐꾼이라고 해야 할까. 전쟁에 참여해 보물을 차지하고는 싶으면서도 막상 용기가 없어 나서지 못하는 그런 존재들. 그런 자들은 언제나 염탐만을 하다가 하이에나처럼 잔반을 처리할 뿐이다. 운좋게 다이아몬드나 에메랄드를 발견할 수 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얻는 것은 토파즈나 터키석 같은 것들이었다.
부끄럽지만, 내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 나는 언제나 사탕가게 앞에서 멀찌감치 차례를 기다렸다. 치열한 전투가 끝난 뒤 내게 남겨진건 그저 그런 사탕들 뿐이었지만, 나는 그런 소소한 평화를 더 사랑했다. 어쩌면 그 평화를 사랑했던 것은 나의 우유부단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몇 개 남겨지지 않는 선택지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사탕을 고를지 매일 고민했다. 수박사탕은 좋아하는 수박맛이 나서, 회오리 사탕은 오래 먹을 수 있어서, 신호등 사탕은 여러 맛을 골고루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얼마 안되는 용돈을 붙잡고 한참동안 가게 안을 서성였던 기억이 난다. 가끔 운 좋게 인기 사탕들이 남아 있는 날이면 내 고민은 더욱 깊어져서 주인 아저씨에게 “시험공부 하느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오늘도 그랬다. 산책을 하러 나왔다가 예기치 않게 마주한 봄에 길을 잃었다. 벚꽃길을 따라 걸을지, 진달래 길을 따라 걸을지 쓸데 없는 고민을 꽤 오래했다. 나를 따라 나온 강아지마저 어리둥절 하여 한 쪽 다리를 들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아마 우리 모습을 관찰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꽤 우스꽝 스러웠을 것 같다. 주인은 집 앞에서 거리를 두리번 거리고 있고, 강아지는 앞발을 들고 갸우뚱 거리며 주인을 쳐다보는 꼴이라니.
결국 개나리쪽 길을 택했으나 중간에 벚꽃쪽으로 길을 틀었다. 벚꽃향이 너무 향기로웠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어릴적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구나 싶다. 그렇게 고민고민하며 고른 사탕도 막상 집에 와서 먹어보면 생각만큼 맛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곤 역시 사탕은 먼저 선점해야해 라며, 같은 학원을 다녔던 그 시절의 용감한 승리자에게 하나만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어쩌면 우유부단함은 나의 오랜 고질병인 것 같다. 진로도, 만남도, 이별도, 나는 그 무엇에도 이렇다 할 선택을 하지 못해왔다. 고백하자면 남자친구와 헤어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도 나는 철저히 조연이었다.
“내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게 일부러 만들었잖아. 넌 진짜 못됐다.”
아마 그날도 오늘 같이 눈부신 봄날이었던 것 같다. 부모들은 유모차를 끌고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고, 동네 고양이들마저 볕이 잘 드는 곳에서 마음껏 기지개를 펴며 봄을 음미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 헤어지는 남자친구의 머리 위로는 햇볓과 앙상블 하듯 무수히 많은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는데,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미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사탕가게와 하이에나와 전쟁과 같은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지 않았을까.
어쩌면 내게 봄이 한 다발의 크레파스 같이 느껴지는 까닭은 이날의 기억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분홍색, 노랑색, 파랑색, 하얀색들이 한가득 채색된 봄날에 그날의 기억만이 유독 새까만 검정색으로 점점이 박혀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오늘은 오랜만에 산책을 다녀왔고, 봄날은 눈이 부시도록 푸르렀는데 흐드러지게 떨어지는 벚꽃에, 왜인지 나는 크리스 마스에 잘못 배달된 선물꾸러미를 받은 아이 마냥 울음이 터졌다.
수채화가 매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