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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달 Dec 04. 2023

집을 짓고 하이킥 #1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

  라는 노래 가사처럼,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은 서연에게도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하는 그런 막연한 꿈이었다. 남편이 은퇴를 하고 아이가 독립을 하고 난 후의 일이야 모르겠지만, 맞벌이인 처지에 당장은 직주근접인 도시를 벗어날 수 없었고 손이 많이 가는 주택보다는 아파트에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집을 짓겠다고 건축사무소에 방문하다니. 무엇에 홀리듯 벌어진 지난 한 달 사이의 일들이 서연 역시 여전히 낯설기만 했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그날도 서연의 아침은 주변의 아파트 시세를 검색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코로나의 시작과 함께 2년째 전국의 아파트 값이 들썩했고, 서연이 살고 있는 동네 역시 하루가 머다 하고 최고가를 경신중이었다. 이러다 평생 살고 싶었던 이 동네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밀려나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불과 하루 만에 몇천이나 올라버린 호가를 보며 이건 아니다 싶어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때였다. 서연은 익숙한 인기척에 놀라 황급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또야? 그만 봐! 본다고 뭐가 달라져?”


잠에서 깨서 물을 마시러 나온 상준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서연은 싸움이 될 것 같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고 곧바로 아이방으로 향했다.



  서연도 알고 있다. 요즘 회사에서도 모였다 하면 온통 부동산 얘기뿐이고 먼저 계약서에 사인을 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우월감과 숨죽인 상실감의 기류를. 그 안에서 열심히 일한 노동의 가치는 맥을 못 추고 오히려 일만 잘하는 바보 소리를 듣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아마도 상준 역시 하루아침에 바뀐 동료들의 억대 수입차들 사이에 중고로 산 오백만 원짜리 경차를 주차하는 하루의 시작부터 패배감을 맛봤을 것이다. 이렇듯 15년간 쌓아온 직급과 성과는 몇 달 사이에 허울이 되었고 그렇다고 편승할 여력도 없는 처지에 무슨 낙이 있을까.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서연 역시 속상한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단 두 가지뿐이다. 현실을 받아들이든지. 새로운 돌파구를 찾든지. 이러다가 집도 잃고 가정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에 답답해진 서연은 저만치 밀려난 아이의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어디 가지?'


  집 밖에 나와서야 차키도, 지갑도 아무것도 들고 나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지만 어색한 집안 공기를 떠올리며 다시 올라가려던  마음을 접었다.


  “그냥 좀 걷다 가야겠다."


지난 몇 달간 재택과 아이의 원격 수업이 겹쳐 종일 꼼짝없이 일과 육아, 가사까지 책임져야 했기에 쓰레기 버리러 잠깐 나오는 일 말고는 정말 오랜만에 맡는 바깥공기였다. 오늘은 주말이니 아이가 일어나도 큰 걱정이 없고 이참에 자주 걷던 하천길 말고 옆 동네 산책로를 한 바퀴 돌고 돌아가야겠다고 맘먹었다.


  초가을에 시작된 재택근무로 인해 가을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는데 어느덧 겨울의 기운이 완연하다. 그래도 바람이 불지 않아 급하게 걸치고 나온 경량 패딩만으로 충분한 날씨라 다행이었다. 그래도 혹여 감기라도 걸릴세라 지퍼를 목까지 단단히 올리고 따뜻한 커피라도 한잔 사야겠다 싶어 카페들이 모여있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코너를 돌아 가끔 가던 카페를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못 보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다 건축 사무소? 건축 사무소면 집 지어 주는 그런 곳?'


  순간 서연은 어젯밤 매물을 검색하다 보았던 '주택 용지 급매' 글이 떠올랐다. 아파트 매매만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아직 위치도, 가격도, 기타 다른 정보도 몰랐지만 건축 사무소란 간판을 보는 순간 주택에 사는 것도 한번 고려해 볼까 라는 충동적인 호기심이 일었다. 그렇게 서연은 물어보는 데는 돈도 안 드니까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건축사무소의 문을 두드렸다.




  오래전에 써두고 차마 올리지 못했던 자전적 소설입니다. 4편까지 쓰다가 아직 내공이 부족한 듯하여 멈춘 채로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네요. 부족함도 과정이라 생각하며 용기를 내어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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