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오픈 후 몇 달이 지났지만 문의 전화조차 없던 건축사무소의 적막을 깨고 들어온 이는 서연이었다. 느닷없이 들린 목소리에 믹스커피를 휘젓다 깜짝 놀란 이 실장은 고개만 돌려 서연을 바라봤고, 모니터와 전화기를 번갈아 응시하며 한숨을 쉬고 있던 황소장은 벌떡 일어나 서연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
이번에는 부디 클라이언트이길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건넨 인사에 그녀가 답했다.
“여기가 건축 사무소 맞죠?”
큰 키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생머리, 화장기 없는 얼굴 탓인지 조금은 창백해 보이기까지 한 그녀의 말투에는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아닌 건가. 조금 멋쩍어진 황소장은 좀 전에 새어 나올뻔한 미소를 서둘러 감추고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서연이 대꾸했다.
“아직 결정한 건 아니지만… 집을 짓고 싶어서요.”
클라이언트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던. 건축사 시험만 합격하면 꽃길을 걷게 될 줄 알았는데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실전에서 일을 배우고 경력을 쌓아온 세월이 어언 10년. 같은 대학 같은 과에서 만나 같은 해에 건축사 시험에 합격하고 각기 다른 곳에서 일하던 아내와 나는 의기투합하여 3개월 전 건축사무소를 오픈했다. 하지만 여태 문의 전화 한 통 없는 현실에 접고 다시 구직활동을 해야 하나 하던 차였다.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우리만의 스타일이 담긴 집을 설계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한 설계 의도를 구현해 줄 몇 곳의 시공사들을 선정해 파트너십 계약도 마쳤다. 그동안 많은 집들을 설계한 것은 아니지만 유명한 건축 대전 수상 이력도 몇 회 있고, 설계부터 시공까지 믿고 맡길 수 있는 건축사무소는 흔치 않았기에 우리만 열심히 한다면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사업이고 홍보와 영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뒤늦게 사이트 몇 곳에 홍보하는 글들을 올려보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직원이라고는 둘 뿐인, 게다가 주택가에 간판을 내 건 이 신생 건축사무소를 알아줄 사람은 없었다.
그러던 중에 찾아온 첫 손님이다. 황소장은 너무 반가운 나머지 어떻게 알고 오셨냐고 물을뻔한 마음을 뒤로하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일단 들어오시지요. 혹시 차는 뭘로 준비해 드릴까요?”
입구에서 쭈뼛거리던 서연은 발걸음을 옮겨 건축 사무소 안으로 들어왔다. 직접 잘라 붙인 것 같은 ‘그리다 건축 사무소’라는 글자와 가구라고는 책상 두 개가 전부인, 조금은 허술해 보이는 이 공간이 어쩐지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이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집 지을 생각 같은 건 전혀 없었던 그녀는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막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