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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달 Apr 15. 2024

집을 짓고 하이킥 #3

서연이 자리에 앉자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마른 체격에 삐쭉 솟은 머리, 유난히 작아보이는 알의 안경을 쓴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그리다 건축사무소에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축사 황두식입니다.“


명함을 받아든 서연은 잠시 명함에 시선을 멈춘 뒤 곧바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장서연입니다.“


서연도 습관처럼 명함을 꺼내려다 이내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아차 싶어 양해를 구하려던 찰나 희고 뭉퉁한 손이 쑥 튀어나와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이수경이에요. 편하게 이실장이라고 불러주세요. ”


아담한 키에 숏컷트 머리, 그리고 빨간 안경과 깔맞춤한듯한 스니커즈를 신은 그녀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다만 그녀의 시원하고도 털털한 웃음에 잔뜩 흐렸던 기분이 조금 맑아지는듯 했다.


"집을 짓고 싶으시다고요? 토지는 어디에 마련해 두셨나요?"


몇초간의 정적을 먼저 깬 건 황소장이었다.


"아...제가 사실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어요. 다만 집을 한번 지어볼까 라는 생각이 들던 차에 산책하다 이 건축 사무소 간판을 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집을 지으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하는지, 그리고 대략적인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공부를 좀 하고 왔어야 하는데 바쁘신데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그녀는 이야기를 꺼내고 나서야 자신의 행동이 너무 경솔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혹시나 이런 실속없는 손님의 방문에 아침 댓바람부터 재수 없다고 화라도 내시면 어쩌나 내심 걱정하며 두 사람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나 그녀의 걱정과 달리 두사람의 표정은 변함없이 온화했고 눈으로 몸으로 나를 긍정하는 듯한 그들의 태도에 직전의 불안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아, 그러셨군요. 마침 저희도 바쁜 일이 없습니다. 선생님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천천히 설명드려도 될까요?"


네모진 작은 알의 안경을 치켜 올리며 황소장은 말을 이어갔다.


"집을 지으려면 일단 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간혹 설계를 먼저 하고 그에 적합한 땅을 찾는 분도 계신데 아무래도 땅이 먼저 정해지면 지형과 주변 환경을 고려하여 설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설계하는 저희 입장에서도 더욱 수월하고 건축주 분들의 만족도도 높습니다. 그리고 지자체마다 건축 규정이 다 다른데 땅이 정해지지 않으면 그런 것들을 사전에 고려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먼저 집을 지을 토지를 마련하시고 다시 방문해주시면 더 상세한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지. 땅도 안 알아보고 무슨 집을 짓겠다고.'


 더 이상 시간을 뺏는 것은 실례다 싶었지만 서연은 내친 김에 진짜 궁금했던 질문을 건넸다.


"아, 그렇군요. 어제 슬쩍 본 땅이 있는데 집에 가서 좀 더 자세히 살펴봐야겠어요. 그런데 건축비는 대략 얼마나 예상해야 할까요? 시작도 할 수 없는 처지면 그냥 일찍 포기하려고요. 하하."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묻는 서연에게 황소장은 설명을 이어갔다.


"목조 주택 기준 평당 600만원 정도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것은 순수 건축비고요. 그밖에 세금이라던가, 인입비, 설계비, 조경 등은 포함되지 않은 금액입니다.


"아, 그럼 30평 정도 집을 지으면 순수 건축비는 1억 8천 정도 들겠네요."


"그렇죠. 하지만 아파트의 30평을 기준으로 주택을 생각하시면 많이 좁게 느껴지실 거예요. 그래서 보통 4-50평대로 많이 짓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남편과 상의해보고 땅도 좀 더 알아본 뒤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건축 사무소 문을 닫고 나오며 서연은 이곳을 들어서기 전에는 없던 감정이 움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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