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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달 Nov 12. 2023

생일에 양파장아찌를 담다 울었다.


  9월 1일. 나의 생일이다. 생일이라고 별다른 이벤트는 없지만 평소와 같은 별일 없는 하루를 꿈꾸며 아침을 맞았다. 화장실 다녀오기, 양치질하기, 세수하고 크림 바르기, 모닝커피로 이어지는 익숙한 하루의 시작. 이때까지만 해도 오늘 오후 5시, 문이 덜 닫힌 냉장고 경고음에 맞춰 꺼억꺼억 울게 될 줄은 몰랐다.

  커피를 내려 한 모금 마실 때쯤 남편이 일어났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 식전 약을 먹으러 정수기로 향하는 평소의 동선을, 그 역시 몽롱한 상태에서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 이거 무슨 냄새야? “

   지난 주말 고향에 다녀오며 부모님께서 챙겨주신 양파가 원인이었다. 수분을 가득 머금은 햇양파에서 나는 아찔한 냄새는 어느새 집안을 잠식해가고 있었다. 그러자 상대적으로 덜 예민한 나의 후각도 집요하게 그 냄새를 좇기 시작했다.

   “오늘 전부 장아찌 만들게. 얼른 준비하고 회사 가.”



   남편과 아이가 나가고 나니 바닥에 널브러진 이불, 식탁과 주방에 남은 아침 식사의 흔적, 욕실의 젖은 수건과 어젯밤 쌓인 빨래들… 익숙한 평일의 다음 미션들이 날 기다리고 있다. 평소 같으면 느긋하게 하고 점심을 챙겨 먹고 아이를 맞이하면 됐을 테지만 오늘의 숙제가 떠올라 마음이 급해졌다. 청소를 하는 내내 코를 자극하는 양파 냄새가 나를 더 재촉했다.

  서둘러할 일을 마치고 다용도실에 있던 양파를 들고 마당으로 나섰다. 그리고 데크에 앉아 칼로 양파 뿌리를 먼저 전부 쳐내고 까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열, 스물… 양파가 이리 많았나.’

   햇양파라 그런지 껍질도 잘 안 까지고 매운 내가 눈을 찔러 눈물이 났다. 그 와중에 저녁에 파티를 하자는 남편과 아이의 카톡이 울려댔고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 케이크는 언제 사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과 까도 까도 남아있는 양파 앞에서 원망이 불쑥 솟아났다.

   ‘누가 생일 파티 하자고 했나. 해주고 싶으면 알아서 준비를 하던지. 바빠죽겠는데 셀프로 케이크 사고 상 차리고. 대체 누구를 위한 생일 파티야?’


   

   양파를 잘라 큰 밀폐용기에 담으니 무려 다섯 통이 나왔다. 나는 장아찌 간장을 후루룩 끓여 뚜껑을 닫고 식히며 자꾸만 울컥해지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런데 냉장고에 식힌 장아찌를 넣으며 결국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래서 그만, 냉장고 앞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잠시 후 문이 덜 닫혔는지 울려대는 냉장고 경고음에 하나 넣은 장아찌통을 다시 꺼내면서 나는 더 크게 꺼억꺼억 울었다. 부모님의 마음이 생각나서 버리지도 못하고 작은 냉장고에 넣을 수도 없는, 그저 별일 없는 하루를 바랐던 나의 생일을 조급함과 원망으로 채워버린 다섯 통의 장아찌가 미웠다.

    


   터져버린 눈물은 비단 오늘만의 감정은 아니었다.

   ‘왜 버튼만 누르면 온갖 게 바로 배송되는 시대에 여전히 한꺼번에 많이 사서 보관할 곳을 또 마련하고, 그러다 다 못 먹고 묵히고 썩히는 것을 반복하시는 걸까.‘

    양손 가득 자식들 손에 들려 보내는 뿌듯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받아올 때의 감사함, 보관과 기한 안에 먹어야 한다는 부담감, 결국 다 먹지 못해 버리는 죄책감으로 반복되는 이 사이클에 나는 너무 지쳐버렸다. 부모님께 뿌듯함을 오래 선물하기 위해 보관용 김치 냉장고라도 사야 하나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이미 엄마의 김치 지분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냉장고에 양파 장아찌를 넣으려면, 저 김치의 절반을 또 버려야 할 터였다. 당장의 양파 장아찌보다 앞으로도 이 짓을 반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서러움이 폭발했다. 나의 서러움은 잠들 때까지 마음 언저리에 남아있었고 가족들과 어떤 축하의 말도 주고받지 못한 채 생일이 저물었다.



    두 달이 지난 지금 그날을 떠올리면 부모님도, 양파장아찌도, 남편도, 아이도 잘못이 없다. 모든 건 다 내 기대 때문이다. 별일 없는, 평소와 같은 하루는 생각보다 당연하고 쉬운 게 아니었다. 시간에 쫓길 때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나는 너무 큰 생일 선물을 기대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하…

지 않고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억울한, 망할 마흔셋의 생일이다.

   “나 다시 돌아갈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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