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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Sep 21. 2015

흙 1: 비

사람이 아닌 모든 것 #1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

비를 싫어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비를 좋아하기도 싫어하기도 하는 사람.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도 비를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 일 것이고


비를 싫어하는 사람은,

비의 순수한 의미를 외면하고 싶어서 일 것이다.


비를 좋아하기도 싫어하기도 하는 사람은,

아마 비의 속성을 잘 알고 있어서 일 것이다.


비는 내 안의 슬픔이다.

비는 온 우주가 나와 함께 울어주는 것이다.



그렇게나 증오했던 비가,

어느 순간 깊은 잠에서 나를 깨웠다.


여행을 좋아했던 시절,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는 자연 속에서 치유받았지만, 여행마저 나를 등지어 아주 깊은 잠에든 어느 날, 나를 깨운 건 비였다.  


나는 이제 비를 즐긴다.


온전히 즐기고,

또한, 우산 없이 비를 맞이한다.


여름 비를 좋아한다.

무더위 속에 내리는 장맛비는

추위에 덜덜 몸이 떨릴 정도의 추위를 선물해 준다; 살아 있음 이란 가장 큰 선물.


나는 비의 속성을 비에게, 슬픔에게서 배웠다.

다양한 형태로 위로를 주는 비.



비의 모습도

각기 다른 사람의 모습처럼 다양하다.


눈에 보이지 않게 내리는 조용한 안개비;

너도 나도 모르게 잠시 왔다가는 슬픔.


나의 존재를 소심하게 알리는 잔잔한 가랑비;

조용히 옆에서 건네는 슬픔의 위로.


잠시 왔다 떠나는 여운 짙은 소낙비;

찰나에 지나간 슬픔을 외면하지 말라는 위로.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 마냥 무서운 장대비;

부서져 버린 마음을 찐하게 안아주는 위로.


친구를 데려와 함께하는 바람비;

흔들리지 않고, 방황하지 말고,

혼자가 아님을 새겨주는 위로.


다양한 모습의 위로를 건네는 비.


비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비를 좋아하게 되는 날이,

그들에게도 왔으면 좋겠다는 소망. 

변화무쌍한 자연의 모습
변화무쌍한 인간의 모습

자연과 인간은 어쩌면 한끝 차이
자연과 인간은 어쩌면 같은 이치

나는 이것을 사람이 아닌 만물에게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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