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가 들려주는 영국 유학 이야기

1장 도전하는 자에게 허락되는 것

by 쪼꼬

Chapter 16. The City of Gold

런던 테러가 있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가진 비자가 만료되었다. 다니던 어학원의 과정도 끝이 났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긴 했지만 6개월 과정으로는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제 막 적응하기 시작한 런던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이력서에 한 줄을 적는다고 치면 6개월과 1년은 느낌이 다르지 않겠는가? 안정적으로 생활이 가능해졌으니 조금 더 머물면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주변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영국의 교육시스템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한국과 미국의 대학 교육과정은 상당히 비슷하다. 학사과정은 4년이고, 석사과정은 대게 2년에서 3년가량이다. 하지만 영국은 완전히 달랐다. 학사과정 3년과 석사과정 1년으로 한국에서 학사를 졸업할 시점에 그들은 석사까지 마칠 수 있게 된다. 한국 성인 남성의 군 복무까지 고려하면 거의 절반의 기간에 이들은 이미 석사가 되어 있는 것이다. 석사과정은 나에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였다. 더구나 석사과정(정식 학위)을 마치면 런던에서 일정 기간 취업할 수 있는 비자가 주어진다고 하니 더욱이 구미가 당겼다.


한국에서 학사과정을 마친 상황이 아니라 당장 석사과정을 시작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영국에 왔으니 영어성적은 확보해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6개월의 비자가 모두 끝나는 날 비자 연장을 해야 했다. 남은 기간 IELTS라는 어학시험을 준비할 예정이었지만, 정규 어학과정을 이수할 만큼 돈이 있지도 않았고, 설령 돈이 있다 하더라도 비자를 연장하는 에 그 비용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당시 통상적으로 6개월의 비자 연장은 대부분 인근 국가의 여행을 통해서 진행했다. 영국은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로 대부분 국가의 입국자들에게 기본 6개월의 관광 비자를 공항에서 발급해주었다. 6개월이면 내가 목표로 한 1년을 채울 수 있는 기간이었기에 나는 사실상 학생비자를 연장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비자 연장을 위해 프랑스에 다녀오기로 했다. 비자도 연장하고 여행도 즐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적절한 결정이라 생각하고 프랑스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런던과 파리는 샤넬 터널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기차로 왕복이 가능하다. 네다섯 시간이면 충분히 가는 거리여서 해외여행의 느낌마저 없을 수 있다. 이렇게 유럽과의 접근성이 좋은 이유로 어학연수나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영국을 자주 추천하곤 한다.


런던 워털루 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오래지 않아 파리 북역(Gare du Nord)에 도착했다. 도착과 동시에 책이나 티브이에서만 보던 파리의 모습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사실 런던에서 지낸 시간 때문에 파리의 첫인상에 대한 감동이 반감되기는 하였지만, 오래지 않아 파리에서 느낄 수 있었던 여유와 낭만은 고스란히 마음을 파고들었다. 에펠탑과 센강, 몽마르트 언덕 등 유명한 곳엔 그들만의 이유가 존재했다. 파리에서의 일정은 길지 않았지만, 아직도 그때의 잔잔한 감성은 나에게 진한 여운으로 남아 있다.


파리에서의 짧지만, 인상 깊은 일정을 마치고 영국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기차를 타러 가는 길에 영국 이민국을 지나게 되었다. 공항과는 다르게 단순히 기차를 타는 일이기 때문에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늘 타던 것처럼 기차에 올라 몇 시간을 달리면 런던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민국을 지나려 여권을 내밀자 이민국 직원은 나를 따로 불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파리에 무슨 일로 오셨나요? 영국에서는 무얼 하고 있었나요? 영국에 거주지는 어딘가요?"

대부분 간단하게 여권만 확인하고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었지만 나는 쏟아지는 의심 어린 질문들에 대답하느라 기차 시간에 쫓기기 시작했다.

"당신은 영국 비자가 8월 30일 만료되었는데, 왜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려고 하나요?"

그녀의 질문은 정곡을 찔렀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8월 30일까지만 영국에서 머무는 것이 허용되었고 추가로 비자를 받을만한 정당한 사유가 없었다. 이미 6개월이라는 기간을 영국에 머물렀으니 관광비자를 받는 것이 이상하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영국을 여행하기 위해 비자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덜컥 겁이나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출국하러 가는 길입니다. 런던에 짐이 있어서 짐을 가지고 출국할 예정입니다."

그러자 그녀는 나에게 대답했다.

"지금 당신에게 6개월 비자를 드릴 겁니다. 왜냐하면 6개월이 가장 짧은 비자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돌아가는 즉시 비행 일정을 확정 지은 후 영국을 나가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우선은 기차를 타야 했기에 그녀의 말에 대답하고 비자를 받아 기차에 올랐다. 그녀의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고,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기차에 오르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무튼 앞으로 6개월을 머무를 수 있는 비자가 생겼다. 하지만 관광 비자 6개월이 종료되는 시점에 떠나기로 계획했던 약 두 달간의 유럽 여행은 이번 일을 계기로 전면적으로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한 번 더 허위로 비자를 연장하려고 한다면 불법체류자로 낙인찍혀 다시는 영국에 발을 못 들여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런던으로 돌아온 나는 맥도날드에서 일을 계속했다. 사실 관광비자로 일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이미 취업을 한 후였기 때문에 내 비자가 언제 만료되는지 그들이 지속해서 관리하기는 힘들었다. 일을 병행하며 알아본 학원에 다녔다. 가장 저렴하면서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학원이었다. 프로그램이 이전의 학원과는 상당히 달랐고 전문적이지도 않았지만,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았고 수업 스케줄도 빡빡하지 않아 적당히 여유를 즐기며 시험을 준비하기에는 좋은 조건이었다. 11월경으로 시험 일정을 잡아 놓고 일과 공부, 그리고 여유를 즐겼다. 시험 점수에 대한 압박은 전혀 없었다. 단지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을 뿐이었다.


런던에서의 행복했던 시간은 말 그대로 날아갔다. 순식간에 4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IELTS 시험을 치렀고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막상 떠나려니 모든 것이 아쉬웠다. 사귀었던 친구들과도 한국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져야만 했다. 말이 한국에서의 만남이지, 사실 해외에서 사귀었던 친구들은 어릴 적 친구들과는 달리 언제 보게 될지 아니, 다시 볼 수 있을지 없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인연은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당시에는 평생 두고 보게 될 사람인듯싶어도, 막상 살아보면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하지 않은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간다. 그래서 인생이 더 재미있는 게 아닐까?


런던을 떠나기 전, 되도록 많은 런던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혼자 사진기 하나를 들고 런던의 밤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이곳저곳 닥치는 대로 사진에 담았다. 그동안 몰랐던 런던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야경이 아름다운 런던은 누구라도 반하지 않을 수 없는 멋진 도시였다. 템스강을 따라 펼쳐지는 런던의 모습을 본 사람이면, 당시 내가 느낀, 글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가슴 벅찬 느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웨스트민스터의 야경을 템스강 건너편에서 보게 된다면 아마 이런 표현에 동감할 것이다.

"The City of Gold!"

황금빛 조명이 만들어낸 런던과 템스강의 야경을 보기 위해 주저 없이 떠나도 좋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