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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꼬 Jan 25. 2024

2. 당근으로 오토바이 사보셨나요?

허락과 용서의 중간 서게 된 후로 일이 바 그놈을 실물로 영접하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결심이 섰다. '오늘이다. 지금이다. 지금 데려와야 한다.' 생각과 동시에 손가락을 놀려 당근 앱을 켰다. 그리고 판매자에게 채팅을 넣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볼 수 있을까요?"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상대방이 글을 읽었다는 표시와 함께 답장이 날아왔다.

"네. 보러 오세요."

신나는 마음을 최대한 침착하게 억누르고 만나기로 한 장소로 시간에 맞춰 향했다. 이미 홀라당 반해버린 녀석에게 눈이 멀어 이성적 판단을 한다는 것이 혼자서는 어려울 것 같아서, 이미 와이프의 용서를 하고 간 크게도 오토바이를 수년째 운행 중인 한 형님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갔다. 꼼꼼하다 못해 지독하리만치 깐깐한 이 형님의 눈이라면 판매자의 현란한 감언이설에 속아서, 혹은 아리따운 그놈의 겉모습에 되어서 정신없이 홀라당 사기당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약속장소가 낯선 곳이라 정확한 위치를 지 못하고 조금 헤매다 판매자분께 연락을 넣으니 마중을 나와주셨다. 판매자분을 따라 좁은 골목을 헤집고 들어간 곳은 주택의 뒷마당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 나의 애마가 될, 곧 나를 데리고 이 세상 모든 자유를 만끽시켜 줄 그놈이 기다리고 있었다. 때 마침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며 우리의 만남을 축복해 주는 듯했다.


오토바이의 실물을 확인한 형님은 사뭇 전문가의 솜씨와도 같이 이곳저곳을 만져 보고 열어 보고 뜯어보고 째려보기까지 했다. 누가 판매자고 누가 구매자인지 헷갈릴 정도. 정작 나와 판매자분은 뒷전에 서서 그의 현란한 뚝딱거림을 지켜만 볼 뿐이었다.

"물건은 깨끗하네."

깨끗하지 그럼 더럽겠소? 판매자를 앞에 두고 그 무슨 실례란 말이오. 누가 보면 불법 무기라도 거래하는 줄 알겠소이다! 아무튼 물건에 이상이 없다는 형님의 말에 안심이 되었다. 판매자분은 지금 구매하시면 헬멧과 장갑도 함께 드리겠다는 홈쇼핑적 사은품 증정 행사 멘트까지 얹혀주시며 구매를 독촉했다. 그때 팍! 감이 왔지만 티를 내지 않고 차분히 심호흡을 뱉어냈다. 그리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그럼 10만 원만 깎아주시면..."

원래 그런 거다. 남 듣기에 불편한 소리를 내뱉으려면 적어도 나 스스로한테는 열 번 아니 스무 번도 넘게 불편한 소리를 해야 한다. 싫다고, 하기 싫다고, 그 말은 꺼내고 싶지 않다고 외치는 나의 내면과 싸워 이겨내야만 이런 소리가 나온다. 그런데 그런 나의 노력이 무색한 답이 들려왔다.

"네. 가져가세요. 10만 원 깎아 드릴게요."

할렐루야! 순간의 환열이 나를 감싸며 눈물이라도 흐를 듯 전율했지만 저 깊은 마음 한 구석에서는 '에이, 20만 원 깎아달라고 해 볼걸.' 하며 무한정의 이기심이 깊숙한 곳에서 꼬물거렸다. 하지만 이미 십수 년 갈망하던 비싸고 위험한 장난감을 드디어 손에 넣게 되었다는 희열감이 내 안에 가득 아쉽다는 마음 커 공간을 내어주지 않았다. 이 몇 년 만에 갖게 된 바이크인가! 아니 자유인가!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얻어낸 값진 승리의 전리품! 이 형언할 수 없이 기쁜 마음을 무엇이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서둘러 계좌이체로 돈을 보내면서 오토바이를 언제 가지고 갈지 인도일을 고민했다. 세 명이서 몇 차례 고민을 해보다 내린 결론은 오늘 당장 가지고 가는 것이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날이 더 추워질 거란 예보도 있었고, 이미 물건 구매를 확정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 손에 계속 맡겨두는 것 또한 찜찜했다. 이 귀여운 녀석을 단번에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가 집에 있는 가족들과 상견례라도 올리고 싶었지만 아직 집사람에게 완벽한 허락을 받지도 않았거니와 거리도 거리인지라 함께 간 형님에게 부탁해 15분 거리의 형님네 집에 잠시 세워두기로 했다. 간간이 내리던 촉촉한 축복의 비는 어느새 굵은 방울이 되어 떨어졌다. 나 대신 오토바이를 모는 형님에게 죄송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왕 일은 벌어졌으니 신세 좀 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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