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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현 Aug 12. 2022

미국에서 캠핑을 간다면?-후편

I’m up in space

    베이스 캠프에 도착한 우리는 우선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가방부터 모래 위로 던져버리고, 간식으로 가져온 건망고를 먹으며 당을 보충해야 했다. 어렸을  소꿉놀이를 하던 때처럼, 우리끼리 임의로 안방과 주방을 정했다.  바위들이 계단처럼 쌓여있던 곳을 주방으로 하고, 비교적 넓고 편평한 모래 바닥을 안방으로 했는데, 나와  룸메들은 옆에 작은방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우리는 별을 보기 위해 'No tent' 선택했기 때문에 바닥에 캠핑매트를 깔고, 침낭 펼쳐두. 그래도  중턱이라 모래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아 다행이었다. Anza Borrego 캠핑을 갔을 때도 텐트 없이 잠을 잤는데 사막 한가운데에서 모래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아침에 눈도 제대로 떠지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하룻밤 보금자리는 30 만에 마련되었다.


    J와 E는 짐을 어느 정도 풀고, 우리에게 같이 게임을 하자 했다. 게임 이름은 '라자냐'. 꼭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박 터트리기로 사용된 모래주머니 같은 공을 사용하는 게임이었다.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는, 모두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서고, 공은 발로 차서 넘겨준다. 서양식 제기차기랄까? 공이 누군가의 발에 닿을 때마다 '라', '자', '냐'를 한 음절씩 외치고, 마지막 카운트인 '냐'가 끝나면 재빨리 공을 손으로 가로채 아무에게나 던진다.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것보다는, 팀전과 개인전이 혼합된 형태의 게임이다. '라자냐' 세 박자를 완성하기까지는 참여자 모두가 최선을 다해 공을 발로 넘기지만, 마지막 카운트에는 각자 공을 잡기 위해 몸을 던지고, 또 빠르게 공을 던지거나 피해야 한다. 급격한 공수 전환이 포인트랄까?


    단연 게임의 강자는 J E였다. 우선 게임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이상의 패스가 필요하고, 바닥보다 작은 공을 발로 넘기는  꽤나 까다로웠다. 나와 룸메들은  그대로 개발이었다. 우리가 멋대로  패스를 J E 심폐 소생해서 끌고 오는 장면이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그래도 몸을 움직이며 게임을 하니 서로 어색함도 사라지고 데이터도 터지지 않는  중턱에서 재밌게 시간을 보낼  있었다. 게임을 하면서 마지막에 공을 던지는 공격권은   번도 가지지 못했지만. 뜨거운  바로 아래서 공놀이를 한참 한 탓인지, 우린 금방 허기가 졌다.


    K 우리가 게임을 하는 동안 짐도 정리하고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J E  합류해 우리의 저녁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캠핑을 함께  친구들  채식주의자가 있었는지, 우리의 저녁 메뉴는 비건 소시지와 바질 페스토를 곁들인 파스타였다. 비건 소시지는 처음 먹어봤는데, 기름기가 조금 덜한 소시지 느낌이었다. 상당히 맛있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미국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너무나 기본이라, 다양한 식사 옵션이 있고 존중받는다. 어떤 식당을 가더라도 비건식은 메뉴에 빠지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 적당한 바윗돌에 앉아서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E 노을을 보러 가는  어떠냐고 제안했다. 나는 당연히, 너무 좋다고  가자고 화답했다. E 제안을 처음 들었을 때는, 밥을  먹고 천천히 산책  나가서 노을을 보는 것일  알았다.


    나와  친구들이 좋다고 하자, E J 벌떡 일어나 손전등을 챙기고, 신발을 신었다.  손에는 여전히 파스타 그릇이 들려 있었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  명은 눈이 동그래져서 J E 쳐다봤다. 해가  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지금  먹으면서 가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손에 포크가 꽂힌 파스타 그릇을 들고, 헤드램프를 챙겼다. 조슈아 국립공원에는 기본적으로 돌산이  많았다. 엄청난 높이의 돌산은 아니지만, 사람이 맨몸으로 올라가기에는  험준한 지형이었다. 당연하지만, 파스타 그릇을  채로 올라갈 수는 없을  같았다. 하지만 J E 정말 가볍게  돌산을 올라갔고, 우리가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며 파스타도 중간중간 맛있게 먹었다. 와중에 우리가 올라오기 쉽도록 우리의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쉬운 길을 알려주기도 하면서. 넘사벽 체력 차이가 느껴졌다.


암벽 등반에 가까운 등산을 하고 마주한 노을

    우여곡절 끝에 산 정상까지 올라와 앉은 우리는 그새 차갑게 식은 파스타를 다시 먹기 시작했다. 등산 뒤에 먹는 거라 그런지, 풍경이 예뻐서 그런지 정상에서 먹은 파스타가 올라오기 전 따뜻하게 먹은 것보다 배는 맛있게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산 정상에서는 데이터가 터져서 가족 톡에 사진도 보냈다. 답장은 하루가 지나서야 확인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샌디에고의 자산은 노을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선셋을 많이 봤다. 조슈아 국립공원 돌산 위에서 보는 선셋도 정말 아름다웠다. 해가 똑 떨어지고, 급격히 찬바람이 많이 불어서 다시 내려가기로 했다. 하지만 해가 져서 바닥이 보이지 않아 헤드램프를 켜야 했고, 원래 산은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더 어려운 법. 정말 떨어져 죽을까 봐 심장이 쿵쾅댔다. 유학생 신분으로 보험도 잘 되어있지 않은데, 여기서 떨어지면 병원비로 10억 깨진다며,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우리끼리 당부하며 산을 내려왔다.


    해가 지고 나니 우리가  일은 잠을 자는 것뿐이었다. 하루 종일 산을 타고 짐을 나르고 라자냐 게임을 하느라 에너지는 이미 바닥난 상태였던 지라, 이른 시간인데도 에 들  있을  같았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보통 잠에 들기 전에 화장실을 가야 . 그래도 간절히 기도한 덕택인지 모종삽을  일은 없었다. 그건 아직까지도 정말 다행으로 생각한다. E 안내를 따라, 각자 갈색 비닐봉지와 휴지를 챙겨 들었다. 베이스캠프 주변으로 낮은 언덕들과 나무들이 있었는데, E  지형들을  활용해서 각자 거리를 두고 볼일을   사용한 휴지는  갈색 비닐봉지에 넣어 다시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 나와 친구들은 말없이 흩어졌다가 손에 갈색 봉투를 쥐고 다시 모였다. 세수와 양치를 하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세면도구를 챙겼는데, E는 자연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첫째로 씻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물로만 가볍게 씻는 것이라 했다. 치약, 비누와 같은 화학제품이 땅에 잘 흡수되지 않아 잔여물이 남고, 이로 인해 동식물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E는 양치를 하고 최대한 자연에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을 알려줬고, 우리는 다행히 양치를 할 수 있었다. 치약은 정말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거품을 뱉고 입을 헹굴 때는 입에 물을 오래 머금어 거품을 풀어내고 마치 분무기에서 물을 뿌리듯 뱉어내는 것이다. 치약 거품이 한 곳에 고여있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거품을 분사했다.


양치를 하며 난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당연히 필요한 모든 것들이 자연에 반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우린, 이 지구 상에 가장 불필요한 생물이 아닐까? 이기적인 진화의 산물이랄까. 그런데 또 동시에, 이런 미국에서 분리수거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 어이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자연에 회귀해 적극적인 제로 웨이스트, 비건, 여타 친환경적인 삶을 택할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미국에 살면서, 특히 내가 있는 서부의 아름다운 자연환경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귀로 듣고 청명한 바람을 피부로 느낄 때마다, 퀴퀴한 서울의 공기와 비교해 자연의 중요성을 깨닫지만, 나는 여전히 인간으로서 편리한 삶의 방식도 포기할 수 없는 이기적인 욕심을 부리고 있다.


우리는 잠자리로 돌아왔고, 각자의 침낭에 꼬물거리며 몸을 숨겼다. 밤사이에 추워질 것을 대비해서 가지고 온 모든 옷을 겹겹이 껴입고, 자기 전 핸드폰은 포기할 수 없어 보조배터리에 연결한 채로 침낭 안까지 들고 왔다. 등과 머리로 딱딱한 바닥이 여실히 느껴졌지만, 원래도 잠자리에 예민하지 않아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하늘과 눈을 마주한 채 있으면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잠자리의 불편함 정도야 문제 되지 않았다. 새까만 밤하늘에 촘촘히 자리한 별들이 내 얼굴로 바로 모두 쏟아질 것 같았다. 우리는 나란히 누운 채로 아무 소리도 내뱉지 못하고 반짝이는 밤하늘에 매료되었다. 미국 샌디에고로 처음 오고, 밤하늘을 바라볼 때 나는 하늘이 매우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의 밤하늘과 비교할 때, 거의 두 배는 커다란 달 때문이었다. 서울 밤하늘에서는 북두칠성을 비롯한 어떤 별자리도 두 눈으로 본 적이 없었지만, 이곳에서 확인한 북두칠성은 국자가 아닌 대형 냄비였다. 위도에 따른 별 관측의 차이겠지만, 그런 과학은 제대로 모르니 그저 눈으로 보고 기억할 뿐이다. 조슈아의 밤하늘은 고요했다. 하늘을 빼곡하게 채운 별들은 아름답기를 넘어서 무서웠다.


침낭뿐인 잠자리와 아이폰12 기본 카메라로 찍은 조슈아의 밤하늘

적막한 밤에 유독 샘솟는 감수성 때문인지, 우리는 잠에 들기 전까지 각자의 인생에 대해, 시간에 대해,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얼마 전, 한국에서 들려온 주변의 소식을 생각했다. 어떠한 단어로 형용해야 할지 모르겠는 나의 사유는 멍하니 밤을 떠다녔다. 몇 년 전에, 나는 아빠에게 어른이 되기 싫다 했었다. 아빠는 기억할지 모르지만, 그날 아빠는 내게 어른이 된다는 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말을 아끼고, 세상과 주변의 일들에 무뎌지는 것. 당시에는, 아빠가 내게 말을 줄이라는 조언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아빠의 말이 누군가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응당 그렇게 되는 것임을 알았다. 나는 꽤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를 굉장한 어른이라 생각하는 편이었는데, 지금도 그런 어린 순간 중 하나일까? 과거를 돌아볼 때, 나는 어떤 시점의 과거를 어른이라 인정할 수 있을까. 꼬리를 물었던 생각은 결론 없이 까만 밤하늘로 흩어져버렸다.


해가 뜨고 나서는 자동으로 몸이 일으켜졌고 우리는 자연에서 우리의 흔적을 지운 뒤 집으로 돌아왔다. 바로 전날 밤 한참을 생각하던 나는 또 다음날 해가 뜨고는 해맑은 내가 되어 치폴레를 먹고, 귤을 먹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J, E, K와 게임을 하고, 집으로 와서는 당장 샤워실로 뛰쳐 들어갔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시점은, 이때로부터 또 3개월이 넘게 지났다. 이곳의 낮은 뜨겁지만 시원한 바람이 있고, 조용한 일상이 지루해질 때가 있지만 복잡한 서울의 내가 그립지는 않다. 미국에 잠시 머물다 떠날 사람으로 스스로를 규정했던 나는 어느새 이곳의 삶이 익숙하고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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