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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현 Feb 18. 2024

못난이 인형도 예뻐할 줄 알아야겠죠

진짜 나를 마주하기

    미국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지낸 10개월의 시간은 사실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머리에 계속해서 비집고 들어오는 해결 없는 고민과 불안은 나를 옥죄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모습들을 마주해야 했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내가 아닌 느낌. 내가 사랑하던 나는 어디로 도망갔는지 통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사라져 버린 나를 그리워할수록 어디 가지 않고 자리를 지킨 못난 나를 미워할 뿐이었다. 매일 반드시 존재했던 행복을 알아주지 않았고, 나의 아주 사소했던 결핍은 갈수록 그 덩치를 키웠다. 밉다, 밉다, 싫다, 싫다 반복하니 정말 미워졌고 정말 싫어졌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나의 길을 가는 자유로운 영혼이라 믿었다. 오만하게도.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 덜컥 대학 졸업을 마주했던 나는 미뤄뒀던 현실적인 고민들을 당장 해치워야 했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를 시기가 되니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고, 이제야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싫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은 것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사실은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는 게 당연하니, 나의 고민은 의미 없는 낭비라고 세뇌하고 싶었다. 똑똑하고 영민하다고 자랑하며 정작 '나'를 알아보려 하지 않았던 과거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를 향한 이해와 관용은 더 이상 없고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내가 한심했다.


    속에서 들끓는 욕심을 무시하고 나를 현실에 끼워 맞췄다. 남들보다 일찍, 꽤 괜찮은 스펙을 쌓은 것에 안도하고 남들보다 그래도 낫다고 생각했던 비겁한 나는, 그게 나의 삶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라고 착각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라 나는 나를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 1년 내내 나를 남과 비교하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내가 하고 싶다고 말하는 일들이 남들 귀에 얼마나 웃긴 이야기로 들릴지 겁먹는, 사실은 그런 사람이었다. 모험을 즐기고 도전에 쾌감을 느끼며 두려움이 없는 나를 사랑했다. 그렇지만 나는 스스로의 도전도 끝없이 의심하고 공격하는 사람이었다.


    오만했던 스스로에 대한 강한 확신이 처참히 무너져 내린 뒤, 답이 없는 고민에서 끝없이 정답만을 찾으려고 몰두했던 시간은 지난하고 고단했다. 내가 좋아했던 나의 모습에 깃들었던 모순을 깨닫자, 스스로에 대해 어떤 확신도 할 수 없었고, 그렇게 텅 비어버린 마음의 자리는 불안으로 가득 채웠다. 불안이라는 녀석은 그 존재감이 대단해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이미 마음에 깃든 그 '불온한' 생각을 끝까지 모르는 척하고 싶었지만, 내게 스스로를 속일 수 있는 마법 같은 능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새해가 다가오면 늘 들뜬 마음으로 나의 내년이 어떨지, 1년 동안 어떤 성취를 이룰 것인지 상상하며 희망차게 떠오르는 1월 1일의 햇살을 마주했었다. 지지부진 움직였던 지난 한 해가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가 했던 고민들을 도저히 예뻐할 수 없어서, 이번에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말을 잘 듣는 모범생이었던 나는 모두가 안내하는 길을 순순히 잘 따라갔고, 또 인정받고 칭찬받는 게 좋았다. 그러다 나의 길을 스스로 꿈꿔야 할 때가 찾아오니, 지금까지 정답만을 외치며 살던 짧은 인생에서 당당히 실패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혹시 틀릴까 봐 겁이 나고, 모두가 나의 선택을 의아해할까 봐. 이렇게 멋없는 생각만을 하는 게 미웠다. 내가 왜 이러지?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라고 생각할수록 이런 나의 모습을 더욱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새해를 맞이해 미운 나를 마주하고, 또 타일렀다. 이 불안 또한 숨겨져 있던 나의 작은 부분이며, 내가 사랑하던 나의 빛나는 순간들을 묵묵히 받치던 그늘이라고. 한 길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게 아니라, 드넓은 초원 위를 이리저리 뛰어보고 걸어보고, 어쩌다 또 하늘을 향해 누워도 보는 게 인생이라고. 그래서 인생이란 것에 정답 따위는 없다고.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나를 향한 의심은 거두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불현듯 그 그늘이 나를 다시 덮쳐 잡아먹히더라도 나는 나를 믿고 나에게 의지하기로 약속했다. 차근히 내가 원하는 걸 도전하고 실패를 경험하고, 배우고 또 성장하는 나를 마주해 보기로 했다.


    치열한 고민은 어두운 그늘 안으로 향해보는 멋진 도전일 것이다. 이룬 것이 없고 성장하지 않은 것 같았던 작년 한 해동안 결국 나는 나를 더 잘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나약한 사람인지 파악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끝없이 고민하고 사유하며 스스로를 향한 질문을 던져야 했다. 결국 인생은 '나'를 이해하고, '나'에 대해 탐구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못난 부분을 온전히 다 들춰내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못난이 인형을 귀여워하던 어린 나처럼, 내 못난 모습도 기꺼이 안아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제 나는 온통 아름다운 나의 삶으로 시도 때도 분간 없이 들이닥칠 비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낼 수 있는 성숙한 여유를 갖고 싶다. 언젠가 또다시 나를 향한 의심이 고개를 들고 인생의 방향키를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면, 걱정과 우려보다는 믿음과 응원으로 나를 빛내고 싶다. 그렇게 단단하게 나를 지켜낼 수 있으면, 정말 무엇이든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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