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을 이용하자
'담배는 끊는 게 아니야. 참는 거지.'
회사 와서 흡연자분들과 친해지기 위해 배웠던 담배가 끊기 힘들어지는 흡연 3년 차에,
술 한잔 하시면 끊었던 담배를 얻어 피시던 나이 지긋하신 아는 분께서 해주신 말이었다.
그때는 정말 공감했었다. 힘들게 업무 한 건 마치면, 술 한잔 걸치면, 또는 스트레스받으면 어찌나 생각나던지.
나름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던 나였는데, 금연에 번번이 무너지곤 했다.
내 의지나 이성과는 상관없이 나의 무의식이 원했다. 그러다가 문득 반대로 하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지와 이성이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생각해도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거부하게 만들 수 있을까?
실험해 보기로 했다. 나는 체구에 비해 체력이 약한 편이기에 조금만 무리해도 몸살의 신호가 온다.
마침 gym을 다니기 시작하던 차였기에, 그리고 마침 열심히 땀 흘리고 운동하고 나면 담배도 당기겠다,
일부러 무리하게 운동하고 나오는 길에 몸이 으슬으슬할 때 담배 한 대 피니, 역시나 다음날 몸살이 찾아왔다.
2~3일 고생하고, 회복하니 다시 gym에 갔다. 다시 무리하게 유산소 운동하고 다시 으슬으슬 추워질 때, 별로 당기진 않았지만 일부러 담배를 폈다. 그리고 역시나 몸살이 한번 더 왔다.
남들은 무슨 몸살이 2주나 가냐고 놀렸지만, 결과는 성공. 내 몸은 '담배를 피우면 아프다'라고 인식한 것 같았다.
담배냄새만 맡아도 싫었고, 술을 마셔도 당기지가 않는다. 그 후로 7년 한대도 피지 않았고, 못했다.
지금도 담배 피우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차갑고, 몸이 추워지는 것 같다.
거짓말 같겠지만, 최근에 실제로 유명대학에서 검증한 실험이 있다. 구글에 "금연 실험 수면 중 악취"라고 검색해보자.
무의식의 사용법을 아는 것은 정말 큰 이점이 될 수 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최근에 읽는 책들에 수많이 언급되는 '대니얼 카너먼'의 뇌에 관한 내용도 같은 맥락인듯하다. 우리는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무의식에 지배를 당하고 있었다.
쉬운 예로는 놀이공원 데이트는 뇌가 심박수가 올라가는 이유를 놀이기구 때문인지, 옆에 있는 이성 때문인 지를 구분 못하고, 스포츠 음료들이나, 생각보다 많은 음식(커피가 첨가된 디저트 등)에 카페인이 들어가는 것은 소비자의 심박수를 올려 해당 음식에 대한 즐거운 무의식을 심어주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검증된 수많은 예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어보거나, 책 내용을 설명해주는 짧은 유튜브라도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업무에 도움이 되는 방법들이다. 이유에 대한 고민을 해본 나의 결론은 무의식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생각이 더 나는 데로 추가하겠다.
1) 제안에 대한: 즉각 거절 vs 시간차 거절
자세한 것은 CS 편에서 다루겠지만, 협력사나 타 팀 등의 이해관계자가 당연히 승낙이 안될 제안을 해온 경우, 그 자리에서 거절하는 것은 삼가자. 나도 처음에는 왜 안되는지 조리 있는 설명이 부족했었나, 혹은 내가 조금 더 공손하게 말씀드렸어야 했나 싶었지만, 대신에 '아시다시피 xx 하기 때문에 승낙하기 어려울 제안입니다만, 제가 내부적으로 한번 더 체크해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정도로 action item으로 받아오면, 상대는 내가 양보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다음 안건도 훨씬 원활하게 진행이 되고, 거절에 대한 반발도 훨씬 적다. (책 '설득의 심리학'에서 상대방이 양보한 경우 나도 양보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작용함을 확인할 수 있다.)
2) 보고 순서
데이트의 끝이 좋으면 성공확률이 좋고, 내기 게임도 끝판을 이기면 모든 것이 좋듯이, 보고 시에도 끝에 어떤 것을 보고할지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총 5가지 보고할 내용이 있다고 하면, 처음 것은 가볍게 시작할, 이미 어느 정도 진행상황을 알고 계실 것을 배치하고 두 번째 정도에는 다섯 개 중 가장 안 좋은 내용. 그리고 세 번째부터 점점 더 잘된 것들을 보고하면, 다섯 개 모두 보고 받으시고 났을 때의 반응이 다르실 것이다. 끝이 좋으면 보고에 대한 전체적인 평점도 좋다. 아마 끝에 들어온 정보에 대한 편향이 전체적인 인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험도 있을 것인데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만, 효과는 있는 것 같다.
3) 긍정적 단어 사용
특히 보고 시에 부정적 단어보다는 같은 내용을 긍정적 단어로 사용한다. 사실 미국에 와서 보니 비즈니스 영어에서 빈번히 쓰이는데, 무의식적으로 조금 더 positive 한 반응을 이끌어 낸다. 예를 들자면 "그 부분은 저희가 부족한 게 많은 게 사실입니다." 라기보다는 "그 부분은 저희가 아직 향상해야 할 점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라고 말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같은 의미이지만, 청자 입장에서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부정의 정도가 다르다. '다니엘 핑크의 파는 것이 인간이다'에 자세한 내용들이 있던 걸로 기억한다. 마케팅에서는 이미 널리 쓰이는 기법들이다.
한국사람들에게 이런 것들을 얘기하면 꼼수라고 치부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내 담배 끊은 이야기를 들은 미국 친구들은 that is very smart라고 했다. 난 남들보다 똑똑하지는 않으니까 이런 나만의 꼼수들이라도 이용할 수 있다면, 뻔뻔하지만 다 이용해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무의식이던 꼼수던 활용 가능한 것은 다 해야지 굳이 안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