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Like crazy> - 열기가 사라진 그 쓸쓸한 자리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 Like crazy>는 사랑의 역사에 대한 영화다. ‘미친 것처럼’ 시작했던 사랑이 천천히 사그러들고, 열기가 사라진 자리의 쓸쓸함까지 보여주고 난 후 영화는 물어온다. 당신 역시 이들처럼 미친듯이 사랑했던 적이 있지 않았냐고.
영화를 보고 나니 어쩔 수 없이 지난 연애가 떠올랐다. 4년간 5번을 만났다 헤어졌던, 나의 대학 시절을 함께한 사람이었다. 정말 미쳐 있었던 연애였다. 영화 속 애나와 제이콥처럼 헤어지기 싫어서 계속 뒤돌아보다가 3시간이 지나 있던, 오지은의 가사처럼 상대를 ‘갈아 마시고 싶을 정도로’ 서로에게 미쳐 있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몰랐다. 이 뜨거운 감정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소중함을 알기엔 너무 어렸고 욕심이 많던 스무살이었다. 많은 실수를 했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 서로에게 남겼다. 그렇게 세상이 온통 당신이었던 시간이 끝났다.
이별 다이어트라는 걸 처음 겪었다. 입맛도 없고 며칠간 누워만 있으니 살이 쪽쪽 빠졌다. 눈 뜨면 와있던 카톡, 늘 함께 하던 식사, 같이 걷던 길... 일상의 모든 것이 그로 이루어져 있었다. 매일이 지옥이었다. 무슨 짓을 해도 머릿속에서 그가 떠나질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루에도 수십번씩 그사람의 카톡 프로필만 눌러대며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참는 것 밖에 없었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혀진다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새로운 남자를 만났다. 그럴수록 상태는 나빠졌다. 한두번 만남에 그 사람만큼 나를 잘 알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이었으니까. 어쩌다가 새로운 연애를 시작해도 마음이 늘 허전했다. 그렇게 반년을 잊으려고 노력해봤지만 그 사람만큼 나를 채워주는 이가 없다는 생각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다시 만나니 어땠냐고? 처음 만날 때만큼이나 좋았다. 떨어져 있는동안 서로가 간절했으니까. 그 사람을 잃었던 시간들을 보상받듯이 매일매일 온 감정을 쏟았다. 한두달간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열기가 살아난 것 같았다.
문제는 사람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 우리가 헤어졌던 똑같은 이유로 다시 싸우기 시작했고, 이별을 겪고 나니 오히려 문제가 심각해졌다.
헤어졌던 기간에 만났던 사람은 없을까?
한번 헤어졌는데 또 못 헤어질까?
왜 예전만큼 나를 미치게 사랑하지 않아?
서로의 핸드폰을 뒤지고, 의심하고, 집착했다. 예전의 열정이 그리워서 그를 찾아갔지만 우리의 열정은 그곳에 없었다. 한번 망가진 연애는 회복할 수가 없었다. 다시 연애하는동안 내내 사라진 그 시절의 우리를 더듬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였던 미쳐있던, 뜨겁고 아름답던 시절.
그렇게 만났다가 헤어지고를 4년동안 반복했다. 그리고선 그때의 우리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닫고선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3년은 추억과 이별하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연유로, 헤어진 연인과 다시 만나려하는 친구들을 언제나 뜯어말린다.
예전같지 않을 거라고. 네가 그리워하는, 미쳐 있던 두사람은 이미 죽었다고.
그렇게 여러번이나 이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언제쯤 잊혀지나 싶을 정도로 오랫동안 힘들었다. 그러다가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옛 추억으로 힘들지도 않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게 됐다. 활활 타오르진 않아도 편안하고 고른 햇살같은 사람을 만나 새로운 연애도 할 수 있게 됐다. 아득하고 막막한 시간 끝에 결국엔 잊혀지니,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잊으려고 노력해야지 돌아가지 말라며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얘기하곤 한다. (힘내라고 밥도 먹이고 술도 먹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다시 만나더라...?)
영화 속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애나와 제이콥은 지리한 비자 싸움 끝에 각자의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에서 함께 살게 된다. 오랜 장거리 연애에 지쳐 각자 만나는 사람도 있었지만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해준' 이는 서로밖에 없었기에 문자 한통에 그들은 미국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것은 타고 남은 재였다. 과거의 뜨거웠던 흔적만 남아 있는 관계. 함께 샤워를 하다가 두 사람의 처음을 떠올리는 영화의 엔딩에선 가슴이 저렸다. 그 쓸쓸함이 어떤지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는 미칠듯이 날뛰던 사랑이 천천히 식어가는 과정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애나는 잡지사에서, 제이콥은 가구 스튜디오에서 일을 시작하고난 후 제이콥이 애나를 만나러 영국으로 가게 된다.(애나는 비자 문제로 미국에 입국할 수가 없다) 애나의 친구와 가족들을 만나는동안 제이콥은 어색해하고 불안해보인다. 그리고 돌아갈 때쯤 제이콥은 말한다. '네 삶에 내 자리는 없는 것 같아서 그냥 휴가 온 것 같아' 라고. 이미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삶의 선로로 들어선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안타까워서 떠올려본다. 만약에 애나가 비자 문제없이 영국으로 돌아갔더라면, 만약에 서로가 이토록 인생에 중요한 존재 줄 진작에 알았더라면.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혹여나 그 만약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그 미쳐 있는 감정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망가지면 회복될 수 없다고. 그렇기에 가능한한 오래 그 순간을 꼭 붙잡아두어야 한다고.
+영화 한줄 후기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
5.30 개봉
감독: 드레이크 도리머스
주연: 안톤 옌친, 펠리시티 존스, 제니퍼로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