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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연 May 27. 2021

서른이지만 여전히 노답입니다

인생이 계단식으로 진화한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얼마 전, 회사 동료와 싸웠다.


치고 박고 싸운 건 아니고 음……. 이걸 싸웠다고 할 수 있긴 한가.

 사연은 이렇다. 여기 옮기기도 민망한 아주 사소한 사건들로 뒷자리 동료에게 꽁한 게 쌓여 있었다. 그러다 기분이 바닥이었던 날, 그 동료가 과자 좀 먹어보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과자 안 좋아한다며 정색했고, 그는 감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편이라서, 당황한 표정이 그대로 보였다. 그리고 그날 말을 걸어오는 그에게 몇 차례 틱틱거렸다. 그도 끝내 기분이 상해 서로 날이 선 말들을 주고받고선 둘 사이에 싸한 공기가 흘렀다.


 퇴근 후 집에 가는 길, 내내 그의 표정이 눈앞에 동동 떠다녔다. 눈치도 많이 보는 성격에 싫은 소리도 못하면서 왜 굳이 그렇게 말을 내뱉어서……. 책상 앞에서 한참 머리를 박다가 편지지를 꺼냈다. ‘To. ㅇㅇ에게. 어젠 내가 너무 심했지, 미안…….’ 문득 이 상황이 데자뷰처럼 느껴졌다. 아, 생각났다. 꼭 15년 전, 중학교 2학년 때도 친구에게 말실수를 하고선 사과 편지를 써서 쭈뼛쭈뼛 건넸는데. ‘현타’가 왔다. 서른 먹고 친구한테 사과 편지나 쓰고 있다니.


  “타인을 견디는 일과 외로움을 견디는 일 중 어느 쪽이 난해한가”라고 어떤 시인이 말했던가.

나에겐 타인이나 외로움보다 나 자신을 견디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난해하다.  스스로가 버겁게  느껴질 때마다 생각한다. 양주연을 데리고 살아가야 한다는 건 인생의 최고 난이도 챌린지야!


나란 인간이 얼마나 ‘노답’인지 셀프로 욕을 해보자면, 덜렁거리는 습관 때문에 곤란에 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비행기 놓치는 건 특별한 일도 아니다. 여권을 두고 와서, 전날 술 마시고 못 일어나서, 그냥 늦잠 자서, 시간 계산 잘못하고 뭉그적거리다가 등등. 비행기에 여권도 자주 두고 내려서 이제는 입국  심사대에서 여권이 없으면 한숨 한 번 내쉬고 게이트로 전력 질주한다. 곤경에 처할 때면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어쩌겠나. 탓할 사람도 없이 나 자신의 잘못인 것을. 인간은 실패에서 배운다던데 이 정도면 인간이길 포기한 것일까?

  인간관계에도 젬병이다. 사람들과 지내다 보면 서운한 게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30년째 앓고 있는 불치병이 있는데, 그건 바로 싫은 소리와 거절을 못하는 병이다. 서운한 게 있어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쌓아두다가 한계치를 넘으면 혼자 인간관계를 끊어버린다. 잘 지내다가도 별안간 차갑게 대하니 상대방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며칠 전에도 친구가 보낸 카톡에 기분이 단단히 상해 버렸는데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내가 기분이 상했다는 걸 어떻게 전달해야 적절한지 방법을 몰라 아직도 말을 못하고 있다.

  감정기복은 또 얼마나 심한지. 이유 없이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는 날이 있다. 침대에 누워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연차 사유에 감정 기복이라고 쓸 순 없으니 겨우 옷을 주워 입고 기어나간다. 어떻게든 가라앉은 기분을 회복해보려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목이 쉬도록 한참을 떠든다. 집에 돌아가는 길,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공허하다. 고작 기분 하나로 하루를 망쳐버린 것 같아 더욱 기분이 안 좋아지고……. 정말 나 자신 노답이구나! 친구도 싫고 맛있는 것도 싫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이 자리를 빌려 나를 거쳐간 남자 친구들과 아직까지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친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서른 살의 나는 이토록 서투르기 짝이 없다.


  서른이란 나이는 뭔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여행자들을 피렌체로 불러 모은 책 《냉정과 열정 사이》의 주인공들이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만나자고 했던 나이 역시 서른이었고(그때 만나던 남자 친구에게 서른에 두오모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그 편지를 제발 그 친구가 불태워버렸길) 서른 살의 내 모습을 상상해보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라인이 쫙 빠진 에이치라인 정장을 입고 멋진 직장에 다니는 드라마 속 ‘어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구체적인 상상조차 불가능하도록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어른의 나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인생 스킬을 하나도 습득하지 못한 채 나이를 먹었다니. 이러다간 60살이 돼도 싫은 소리 못한다는 이유로 고민하고 있겠다!(정말로 그럴 것 같아 잠깐 소름이 돋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 투성이지만 어쩌겠나. 나 자신과 절교할 방법도 없고 어떻게든 평생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있다면 내가 그나마 덜 서툰 인간이 됐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답도 없이 서툴렀다면 지금은 감당 가능할 정도로 서투르다고나 할까.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감정기복이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봄가을만 되면 심해진 일교차만큼이나 아침저녁으로 기분이 오락가락했는데, 이제는 찬바람이 불어도 “가을이 와서 시원해졌네”하고 손뼉을 치는 게 다일 정도로 감정이 꽤나 무뎌졌다. 또 친구와 틀어지는 일이 생기거나 누군가 나를 무시했다고 느끼면 일주일 내내 자괴감에 빠져 괴로워했을 텐데 이제는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기는 여유마저 생겼다. 그러다가도 기분이 땅굴을 파고 지하 239559미터로 가라앉는 날이면 곧장 나를 데리고 한강이든 동네 뒷산이든 걸으러 간다. 그러면 기분이 훨씬 나아진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나는 덜 서툰 인간으로 자라고 있다.


2016년 아이유가 일본 콘서트에서 했던 인터뷰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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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아이유는 2017년에 어떤 진화를 하고 싶습니까?
아이유: 진화가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좀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진행자: 그게 뭡니까?
아이유: 행복이나 안정과 같은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해에는 진화하는 것은 조금 쉬고, 더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제가 포켓몬도 아니고 매년 진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한때는 인생의 목표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내가 가진 결점들을 열심히 메우려고 애쓰면서 인생의 경험치를 쌓으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위 인터뷰의 진행자처럼 나 자신이, 인생이 계단식으로 성장하고 진화하는 것으로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10대의 내가 인생 ‘쪼렙’ 피츄라면 서른 살엔 피카츄가, 50살쯤엔 라이츄가 돼 인생의 어떤 풍파도 백만 볼트 전기로 방어해내는 노련하고 평온한 인간이 돼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것 같다.  지금 인생의 목표를 묻는다면…딱히 없다. 그저 예전보다 덜 사고를 치고 덜 서툰 인간이 돼가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취라 생각한다. 굳이 따지자면 “인생에 여유 있는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다” 정도. 나와 잘 지내는 것이 평생의 숙제니까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인간이 되지 않으려 한다. 뭐,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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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행복의 모양은 삼각형>에 실린 '서툰 서른'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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