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선선해지면서 농원을 하는 수용가에서는 서서히 겨울 준비를 한다. 농원은 주로 식물을 대단위로 재배한다. 서양란을 키우거나 고무나무 같은 관상식물을 키운다. 올 봄을 막 지나면서 너도나도 휴지를 했었다. 4월에 주로 휴지를 해서 10월이면 다시 투입을 해서 식물이 찬 기온에 노출되지 않도록 한다. 봄에 네 군데에서 휴지를 했으니, 이제 서서히 투입해 달라고 요청이 있을 것이다.
이반원예는 17일에 휴지를 끝내고 투입을 하기로 했다. 대성농원도 그 다음날 투입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한 군데 농원이 아무 소식도 없다. 자비농원이다. 아마도 투입을 잊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10도 이하로 내려가면서 식물의 생장에 지장을 주면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농장 주인이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곧 할 텐데, 시일이 급박하면 한전에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니까, 내가 먼저 연락을 해서 투입시기를 알려 달라고 문자를 넣었다.
“자비농원 오사장님께.
전기 투입일자를 한전에는 7일 이전에 신청해야 합니다. 제게도 신청할 시간의 여유를 주시려면 10일 이전에는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에스전기 김부장 드림.“
자비농원 오사장님에게서 그날 오후 점검을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전화가 왔다.
“예, 안녕하십니까? 처음 인사드리겠습니다. 제가 자비농원에 점검은 맡은 안전관리자입니다. 이제 날씨가 차졌으니까, 휴지한 전기를 언제 재사용하실지 투입 날자를 정해서 미리 알려주십사 하고, 아까 문자를 드렸습니다. 한전에서는 7일을 남겨놓지 않고 투입해 달라고 하면 우리가 ‘을’로 바뀌거든요. 7일 이상을 남겨 놓고 투입신청을 하면 우리가 ‘갑’이 되지만요.”
“우리는 휴지한 것 말고, 다른 전기시설이 또 있어요. 휴지한 것은 점검을 하지 않아도, 증설한 것은 왜 점검하러 오시지 않습니까? 지금 6개월 간 점검을 하러 오지 않으셨습니다.”
“뭐라고요? 또 있다고요? 가만있어 보세요. 잠깐만요. .... 제 파일에는 그런 근거가 없는데....? 어쨌든 내일 농원에 들르겠습니다. 내일요.”
“내일은 안 됩니다. 제가 농원에 없어요. 금요일에 오세요.”
“알겠습니다. 금요일에 가지요.”
이거, 큰일이다. 자비농원은 내가 인수를 받을 때 이미 ‘휴지(休止)’라고 일정표에 쓰여 있었다. 휴지라고 해도 장소를 알려고 한번은 찾아 갔다. 농원 입구에 선 전주에 한전 책임분계점인 COS(Cut Out Switch)가 분리되어 전주 허리께 발판에 달려 있는 걸 확인했었다. 4월이었다. 장부를 뒤졌다. 이상하다. 아무리 뒤져도 증설했다는 기록은 없다. 점검기록표 중에 우리가 가져오는 푸른 점검기록표 사이에 흰 종이가 하나 있기는 하다. 들쳐 봤더니 ‘사용전검사....불합격’이 하나 있다. 이후 합격된 기록은 없으니까 사용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사용하고 있다’는데 어쩌겠는가? ‘왜 그동안 점검을 하러 오지 않았냐’는데,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가서 확인해 봐야 한다.
“반년을 점검을 안 했다고 비용을 반환해 달라고 하면, 월급에서 까야하나 어째야 하나....”
우선 가서 부딪혀 보고 판단할 일이다.
사흘을 지나 찾아갔다. 농장입구에는 여전히 COS 세 개가 전주 허리에 매달려 있다. 휴지가 맞다. 하지만 마당 안쪽에 전주가 두 개 더 서있고, 거기에는 유입변압기에 달려 있고, 변압기 위에는 COS를 거쳐, MOF(Metering Out Fit)라고 ‘전력수급용계기용변성기’가 얹혀있고, 이번에는 PF(Power Fuse)라고 전력용 퓨즈를 지나, ASS(Auto Select Switch) 자동고장구분개폐기가 달려있다.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순서다. 그 너머에 한전의 COS가 그대로 달려 있는 걸 보니까 이 전기는 살아있는 전기가 맞다. 전주 바닥에는 저압 판넬도 하나 있다. 저압 판넬에는 울타리가 둘려져 사람이고 짐승이고 접근을 막고 있다. 위험하다는 말이다.
상황 파악을 하고 있는데, 전화 통화를 할 때 비교적 부드러웠던 음성이 들린다.
“아, 오셨어요?”
“예, 안녕하세요. 이 전기가 사용 중인 전기군요. 저건 휴지 중이고요.”
“예. 그렇습니다. 600kw를 받고 있어요.”
“우선, 죄송합니다. 그동안 증설한 지를 알지 못했어요. 그 대신 점검을 아주 잘 해 드릴게요.”
아주 강력하게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지는 않아서, 이 고비만 잘 넘기면 별 탈 없이 마무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6개월을 뛰어 넘을 수 있을 것 같다.
“농장이 아주 넓은데, 판넬이 어디어디에 있는지 먼저 알려 주세요. 그동안 못 한 것을 한꺼번에 꼼꼼히 볼게요.”
“여기가 주 농장인데요, 여기 가운데 판넬을 몰아서 설치했어요. 아래 농장에는 출입구를 밀고 들어가면 왼쪽에 판넬이 있고, 한라봉 나무 고랑 앞에 판넬이 하나씩 있어요. 그게 다예요.”
흡사 제주도 농장 같다. 감귤보다 큰 노란 열매가 달려있다. 아직 나무의 크기는 내 키만 하다. 열매도 사과나 복숭아처럼 주렁주렁하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한라봉보다 작은 열매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양쪽으로 나무 고랑에 줄지은 가운데 길을따라, 주요 판넬이 있는 곳을 주인이 앞장서 가서 안내한다.
비닐하우스 가운데쯤인가 보다. 지붕이 하나 더 있고, 그 아래 판넬이 대여섯 개 나란히 서 있다. 그 중 가장 큰 판넬을 열었다. 판넬 문짝은 중고인데, 어딘가 전선연결이 어설프게 보인다. 먼저 그동안 점검을 못했으니 연결부위에 열이 있는가 없는가, 케이불 체결상태는 어떤가, 탄화나 열화는 있는가를 보려고 열화상측정을 했다. 사용량은 많지 않은지 열은 대체로 없다.
“전선 연결을 제가 직접 했어요.”
“그래요? 직접 하셨어요? 공사를요?”
“예, 전선 연결부위의 터미널은 내가 기구가 없으니까 업체에게 와서 찝어 달라고 하고, 그 외의 것은 다 내가 했어요.”
“와, 대단하신데요? 이걸 어떻게 직접 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우선 제가 전체적으로 한번 살펴볼게요. 연결은 잘 되었는지, 안전은 한 지를 볼게요.”
아래 농장까지 갔다 왔다. 전기선은 꼼꼼히 체결되어 있다. 하지만 체결이 매끄럽지는 않다. 터미널이 똑바로 연결되지는 않았고, 이웃한 전선이 접속부위를 타고 넘어가기도 한다. 자동차를 주차한 곳에는 자동차를 청소하는 콤푸레셔도 설치했고, 그 옆에는 전기차를 충전하는 기기도 설치해 놓았다.
고압 전주 아래에 있는 저압 메인판넬도 열었다. 우선 판넬 전면에 전압계와 전류계가 없다. 그래도 여기는 전문가가 작업한 손길이 보인다. 콘덴서가 판넬 하단부에 똑바로 서 있고, 접지가 전주에서 내려온 LA(Lightening Arrest, 피뢰기)에서부터 내려 온 것이 판넬 아래 접지단자에 붙어있다. 그러고 보니, 주인이 제작하고 이전했다는 판넬이 왜 어설퍼 보였나 했더니, 단자물림이 똑바르지 않은 것에다가, 접지가 모두 빠졌다. 저압메인에는 접지단자함이 따로 설치되어있어야 하는데, 판넬 안에 네댓 개만 물려 있을 뿐이다. LA에서 온 굵은 접지선 하나에 6SQ(Square, 전선 단면적) 정도 되는 접지선이 네 개뿐이다. 600k 수전에 이정도 접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돌았던 판넬을 다시 돌았다. 접지를 확인했다. 판넬마다 접지가 없다. 접지단자조차 없는 것이 태반이다.
점검기록표를 작성했다. 점검을 마치고 농장 주인을 찾았다.
“사장님, 점검을 다 했는데요. 우선 판넬마다 열이 나거나 접속이 잘못 된 곳은 없어요. 안전은 해요. 하지만 판넬마다 접지가 없어요. 전부 다 그래요. 전주 아래에 있는 저압메인에는 LA에서 내려온 접지는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내가 한번 연구해 볼게요.”
“예, 접지는 내가 다 안 했어요.”
“예, 오늘은 이만 가 볼게요.”
싸인 받은 용지 중에 위에 것을 돌려주었다. 아래 파란 용지는 내가 가지고 가서 철해놓아야 한다.
내려오기 전에 하나 더 확인해야할 것이 있다. 정말 6개월 간 오지 않은 것을 이대로 퉁치고 갈 수 있을까? 더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아니, 사장님. 여기 위치가 아주 기가 막힙니다. 산도 그리 높지 않은 곳에, 동산 하나를 온전히 차지하셨어요. 위로 더 이상 오르내리는 사람도 없잖아요. 언제부터 여기에서 농장을 하신 거예요?”
“한 25년은 됐지요.”
“25년이요? 그럼 사장님도 성남에서 오셨어요? 제가 관리하는 농원 몇 군데가 성남에서 그렇게 오신 분이 있어요.”
“예, 나도 성남에서 왔어요. 그때 여기로 온 사람이 많아요. 화훼농원을 하던 사람이 그때 보상을 받고 다 쫓겨났지요. 그때 여기로 들어왔어요."
성남하면 한국 현대사를 한 가운데로 관통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50년 6.25가 나면서 북한에서 피난을 온 사람들이 서울에서 비싼 집을 사서 살 수 없으니까, 청계천변에서 판자집을 지어 살았다. 1960년대에는 청계천에 무허가 주택을 정비한다고, 이들을 모두 성남 허허벌판에 실어다 내팽개첬다. 진흙탕에 내 던져진 사람들은 이 땅을 또 일구어 거대한 비닐하우스촌을 이루고 화훼단지를 조성했다. 2000년 즈음이다. 지금 오사장이 말하는 25년 전이다. 성남이 다시 도시의 면모를 갖추자 다시 쫓겨나 여주 근방으로 몰려왔다. 그때부터 여주에서 살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여주화훼단지에 여럿 있다.
"아니, 땅이 괸장히 넓은데요. 골짜기가 다 사장님 땅입니까?"
"한 1만 5천 평 되요. 그때는 난을 키워서 공기 맑고 물 좋은 곳을 찾은 곳이 여기예요. 지금은 천혜향 나무로 바꿨어요. 두 늙은이 용돈벌이는 돼요.”
“아닌 것 같은데요. 용돈이 뭐예요. 큰 돈 되겠는데요. .... 그나저나 입지가 참 좋습니다. 적당한 비탈에다가, 남이 더 이상 오지 않을 동산에다가, 남향에다가, ....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곳입니다. 거기다가 일도 아주 꼼꼼히 하시니,...”
“아니에요. 보기만 그렇지, 그렇지도 않아요.”
“아무튼 6개월을 오지 못한 것은 죄송하고요, 앞으로는 빠트리지 않고 와서, 꼼꼼하게 봐 드릴게요.”
“예, 여기는 뭐 그렇게 자주 오지 않아도 돼요.”
“그래요? 워낙 관리를 잘 하시니까....어쨌든 다음 달에 뵙겠습니다.”
“예, 조심히 가세요.”
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생각을 했다. 뭐, 대화를 나누면서 파악해 봐도, 큰 탈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접지공사를 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든 도와줘서 그동안 가지 않은 것을 배상해 줘야 한다. 점심을 먹으면서 조부장에게 물어 봤다.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고 접지 없는 판넬을 찍은 사진도 몇 개 보냈다.
“판넬에 접지가 없어요.
자기가 판넬을 설치했데요.
이전도 하고요.
이걸 어떡하지요?”
바로 ‘카톡’하고 답변이 온다. 역시 전기기술사 준비를 하는 전문가답게 책을 펴서 ‘전기기기, 기구에 의한 감전방지 대책은?’의 페이지를 찍어서 보냈다. 그리고 지금 막 식당 종업원이 쟁반에서 내가 주문한 김치찌개를 식탁에 내려놓을 때 전화가 왔다.
“접지를 안 해요? 아주 위험해요. 사람이 감전되면 어쩌려고요.”
“내가 며칠 전에 이야기 했잖아요. 6개월을 안 간 곳이 있다고. 거기에요. 어떻게든 잘 마무리하고, 안 간 만큼 그 농장에 도움을 줘야겠어요.”
“그래요? 이따가 들어가서 또 함께 생각해 봐요.”
그리고는 또 카톡으로 이번에는 공부하는 책을 파일로 보냈다. 한국전기공사협회에서 발행한 KEC 시공가이드인 ‘한국전기설비규정(KEC) 요약’이다. 그 파일은 열어보지 못하고, 먼저 차려진 밥부터 먹었다. 만 원짜리 ‘차돌박이김치찌개(국내산)’가 그냥 깔끔하니 맛있다. 흥천면 소재지에 있는 이 식당에는 다음에 또 올만하다.
“그동안 회사에서 점검비는 꼬박꼬박 받고 있었을까?”
궁금하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아침에 들고 나간 사랑농원의 파일을 다시 넘겨봤다. 아침에 들고 나갈 때는, ‘왜 그동안 점검을 안 왔는지’ 물으면 답변하려고 들고 나갔었다. 지금은 ‘왜 사용전검사에 불합격을 받았는데, 재검사에서 합격해서 재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서류가 없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재검사를 받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재검신청사실도 없다. 당연히 재검사 합격증도 없다.
“어? 있다. 재검사해서, 석달 안에 받은 합격증도 있다. 그런데 어째서 접지가 없는 판넬이 즐비한지 모르겠다....
“그러면, 그러면 뭔가? 사용전검사를 받기 위해서 시설한 상태에서, 농장 주인이 자기 마음대로 공사를 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설치한 거예요....”
“....이전도 내가 했어요....”
“....접지는 전부 안 했어요....”
가만 생각하니,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니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먼저 들어 온 이과장에게 물었다. 자비농원 파일을 들추다가 작년에 정기검사를 받을 때 싸인을 한 이과장의 이름을 보았기 때문이다.
“작년에 자비농원 정기검사 불합격과, 재검사 합격증에 이과장님의 싸인이 있었어요. 합격은 했던데, 접지기 판넬 내에 설치가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합격을 했어요?“
이과장이 조금 머릿속으로 회로 정리를 하는가 싶더니 대답을 한다.
“아, 거기? 주인이 판넬을 이전 설치했다는데, 접지가 빠진 거 나도 알아요.”
“그런데 정기검사에 어떻게 합격을 했어요?”
“아, 부장님 정기검사 때를 생각해 보세요. 안전공사 직원이 저압판넬 전부는 안 봐요. 변압기에서 내려온 저압 메인만 봐요.”
“아, 그렇구나. 저압 메인만 보더라, 참. 고압은 ASS와 변압기를 주로 보고요.”
“맞아요. 저압은 안전공사에서는 전기안전관리자의 지시에 잘 따라서 안전하게 사용하라고 하고 말아요. 그런데 거기 사장은 내 말을 안 들었어요. 나하고 엄청 싸웠어요.”
“그래요? 그런 골치 아픈 데를 작년에는 했는데, 올해는 왜 나한테 떠넘겼어요?”
“부장님의 전전임자부터 거기 점검을 했어요. 나랑 지역을 몇 개 바꿨어요.”
“그럼, 지금 와서 어떻게 하면 접지시설을 갖출 수 있겠어요? 방법을 말해 줘 봐요.”
“주인이 안 한다면 방법이 없어요. 점검기록표에 남기고, 주인한테 말하고,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말아야 해요.”
“그래요? 내가 공사를 해 줄 수도 없는 일이고....”
“못 해요. 그냥 하라고 말로 밖에 못해요.”
성박사인생고기에는 주방에 냉동고 3개가 모두 문을 여닫으려고 만지면 전기가 온단다. 접지시설은 문제가 없는데도 전기기기에서 접지가 연결되지 않아, 누전이 접지시설로 흘러가지 않고, 기기에 모여 있어 감전이 된단다. 거기서는 내가 점장에게 말했다.
“냉동고가 누전이 잘 되요. 왜 그러냐하면 기기에 결로가 많이 생겨서 그래요. 그런 만큼 접지설치가 잘 되어야 하는데, 갖다 놓고 그냥 코드만 꼽았어요. 코드에도 플러그와 콘센트에 접지 단자가 잘 연결 되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그걸 확인하지 않았어요. 접지 단자만 연결이 잘 되어도 해결이 되요. 기기 판매업자에게 연락해 보세요.”
성박사인생고기에 비하면 자비농원은 문제가 훨씬 크다. 엄청 큰 전기가 흐른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큰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은 판넬이 모두 실외에 있고, 콘크리트 위도 아니고 흙바닥에 꼽혀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겠는데, 그 이상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다. 이건 대표에게 보고해야할 일이다. 대표에게 문자를 보냈다.
“대표님, 어제 자비농원에 갔더니, 전기 판넬을 농원 주인이 직접 제작, 이전했답니다. 그런데 접지 시설이 안 되어 있습니다. 점검기록표에 적고, 주인에게 물어 보니, 접지는 안 했답니다.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점검 할 때 찍은 사진 다섯 장을 첨부했다. 오래지 않아서 대표에게서 답변이 왔다.
“어필하고, 일지에 작성했는데도 안 하면 어쩔 수 없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알려 주시면 됩니다.”
그래 여기까지다. 대표도 알고 있는 걸 보니 점검비용은 문제없이 들어 오는가보다. 자비농원이라서 6개월 간 안 간 것은 자비로 넘어가더니, 근본적으로는 안전관리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이건 티끌은 걸러내는 약대는 삼키고 꼴이다.
아래로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여주 들판이 펼쳐졌다. 들판 사이 일정하게 꼽힌 전주가 줄지어 섰다. 전주 사이로 치렁치렁 걸친 전선이 울렁줄렁 춤을 추고 있다. 우리 인생도 전선을 따라 울렁줄렁 춤을 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