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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기주 May 18. 2023

유익한 시간 낭비, 짝사랑

참으로 즐겁다

 나는 짝사랑 마니아다. 새로운 집단에 들어가게 되면 그중 누군가 한 명은 꼭 좋아진다. 일부러 마음먹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된다. 남들은 사랑이 어렵다고 했던가. 짝사랑은 쉽다. 지하철만 타도 같은 칸 안에 있는 승객 중 두 명은 내 마음속에 들어온다. 그 상대가 먼저 내리면 아쉬워하고 내가 먼저 내리면 약속 장소로 가는 동안 훌훌 털고 까먹는다.  

    

 초등학생 때부터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 쉬지 않고 짝사랑을 해왔다. 물론 중간중간 연애도 했지만, 짝사랑한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다. 사실 이렇게 쉽게 사랑에 빠지다 보니 이젠 내가 누굴 좋아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짝사랑하는 나에 취하는 타입은 아니다. 짝사랑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이 한 몸 먹여 살리기도 고된 일이다. 그 마음과 시간을 쪼개 상대를 위하고 생각하는 데 쓰는 건 큰 에너지가 든다. 얼른 이 짝사랑이 해결되어버리거나 내 마음이 식어버리거나 둘 중 하나가 되길 매일 바란다. 하지만 나는 또 사랑에 빠진다.      


 속으로만 앓고 잊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세상 적극적이다. 내가 한 번 찍으면 아주 각설이처럼 들러붙는다. ‘우리 밥 한번 먹어요’, ‘이날 어디 갈래요?’ 하면서 만날 구실을 찾고 연락할 핑계를 찾는다. 불도저처럼 들이댄다. 성공률은 비참하다. 매번 성공적이었다면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계속된다.      


 짝사랑은 유익한 시간 낭비다. 유익한 낭비라니 참 역설적이다. 평소에는 효율과 가성비를 그렇게 따지는 내가 사랑에 빠지면 비효율적인 행동을 숨 쉬듯이 한다. 얼굴 한 번 더 보려고 길을 돌아가고 괜히 연락할 구실을 만든다. 재밌다. 짝사랑은 심심한 내 인생에 간을 쳐준다. 그래서 계속할 힘이 생기나 보다. 그 힘으로 또 재미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나는 시간 낭비하면서 살아간다. 참으로 즐거운 시간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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