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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Mar 04. 2023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

낯섦의 어색함

   

  

 이사를 했다. 추운 곳. 경기 북부 쪽으로. 따뜻한 부산 근처 양산에서 살다가 이쪽에 오니 바람도 날카롭고, 거리도 낯설다. 나를 따뜻하게 반겨주는 친구도, 남자사람오빠도 친정 엄마도 교회 친구도 있는 곳이지만, 오늘 아침은 한없이 기분이 다운되었다. 날씨라는 것이 이렇게 감성에 영향을 주나 싶다. 나는 감성이 풍부하다만. 아! 이 낯섦에 대한 어색함으로 인해 마음이 요동치는 것이구나. 산책을 한다면 마음이 푸근해지고 주변에 핀 들풀도 보이고 해야 하는데, 이곳은 아파트가 들어서는 신도시인지라 깡! 깡! 쿵! 쿵! 공사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마침 큰 도로 옆에 있는 좁고 울퉁 불퉁한 인도를 걷고 있어서 더 기분이 차가운 것이다. 차디찬 바람까지 얼굴을 때린다. 내가 가진 가장 두꺼운 롱 패딩을 입어도 목 안으로 찬바람이 비집고 들어온다. 양산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날카로움이다. 3월의 양산이란 꽃은 피고 따사로운 햇살에 살랑대는 원피스와 카디건을 두르고 산책이라는 것을 만끽하기 참 좋은 봄 날씨인데 이곳은 한겨울이다. 아직 엄마 집에 가서 따뜻한 밥을 못 먹어서 그런가 보다 한다.

 이사를 한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익숙한 곳에서의 헤어짐과 새로운 곳에서의 만남이 물 흐르듯 이어진다. 헤어짐은 아쉬움을 남기고 익숙했던 것의 편안함을 포기해야 하는 것. 자주 다니던 맛이 훌륭한 단골 카페도, 동네에서 제일 가격이 착한 야채가게도, 아침에 바로 만든 어묵만 파는 신선하고 맛있는 어묵 가게도, 내 집 드나들던 집 앞 작은 도서관도. 모두와 헤어진다. 새로운 곳에서는 훌륭한 맛의 커피가 있을까? 작은 도서관의 화통한 관장님의 끈끈한 신뢰와 따뜻한 눈빛을 만날 수 있을까? 신선한 어묵 가게에서 맛 좋은 어묵만도 감사한데 어묵 한 두 개씩 더 넣어주는 사장님의 인심을 맛볼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지만 새로운 곳에서도 만나보고 싶다. 삶의 즐거움이 더 많아지도록. 

 사실 나에게는 양산이 타지였다. 먼저 서울에 살다가 양산에 이사 간 것이니까 말이다. 아무 연고 없는 곳에서 6년 2개월을 살다가 정들었던 곳을 뒤로하고 친정이 있고 친구들이 있는 고향 근처로 이사를 다시 오게 된 것이다. 양산에 처음 갔을 때에도 이런 느낌이었지. 정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이와 함께 다닐 교회를 찾고, 어린이집을 찾고, 도서관을 찾아다녔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잘 적응했고, 나 역시 컴퓨터 학원을 등록했다. 아이가 원에 있는 동안 배울 수 있어서 감사했었던 기억이 난다. 새로운 동네이긴 하지만, 이곳은 친정도 가깝고 친구도 근처에 살고 있어서 여러 모로 도와주니 어쩌면 전 보다 더 불안하지는 않은 것이다. 

 미니멀한 삶을 살고 있는 나이지만, 이사는 역시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동안 버리지 않고 쌓여 있던 물건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상당히 소모되었다. 단순하게 살고 싶은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내 민낯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짐 정리하는 나를 보면서 배우자님이 말했다. “우리 선애. 미니멀 아직도 멀었네. 먹지 않을 음식이 냉장고에 많고. 책장에도 아이 수준에 맞지 않는 책들은 정리해야지. 다 보관하고 있네."  사실 냉동실에는 4~50% 이상 텅텅 비어 있는데도 곳곳에 나중에 먹어야지 하고 얼려둔 딸기, 바나나가 있었다. 언제 넣어 둔 것인지 기억이 안 난다. 그런 건 자주 버려야 하는데 냉동실이 항상 여유가 있으니까 정리할 생각을 평소에 안 했던 것이다. 뼛속까지 미니멀한 배우자님은 단순하게 목표점을 향해 한 방향으로만 계속해서 이룰 때까지 시도한다. 단순한 것은 좋지만, 계속 제자리에서 시도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훙! 치! 뿡!이다!)

 인터넷 이전설치 신청을 하고 기사님을 기다리고 맞이하고 연결되는 일을 해결하는 일 들도 이사 후 해야 할 일들이다. 학교 전학을 위한 서류 준비, 전입신고, 주소 한 번에 변경하기, 도시가스 이전설치 이런 일들을 하고 있으니 내가 어른이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해외로 이사 가는 일은 얼마나 더 복잡할까? 해외로 이사 가면 다시 들어오기는 더욱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서의 쌓아온 일들. 인맥들 다 포기하고 다시 한국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지 않을까?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일로 다시 들어오게 된다 하더라도 심적으로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쉽지 않을 일을 쉽게 하는 이들도 있으니! 초 긍정 마인드로 새롭게, 즐겁게 할 일들을 미션 수행이라 여기고 감사하며 진행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틀 만에 많은 일을 했어! 수고했어. 선애. 스스로 토닥여 주며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가는 것이다.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힘들 때는 도와달라고 요청도 하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나씩 천천히 해 나가다 보면 이 동네가 조금씩 익숙해지는 때가 올 것이다. 짐작 건데, 근사한 커피맛의 카페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관계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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