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일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가족들을 위한 요리를 하고, 직장을 나가고, 휴일엔 집안일을 하고, 가끔씩 나들이도 가고 시부모님께도 들러 인사도 드리며 정작 자신의 몸은 돌보지 못한 채, 몸이 약해 때때로 앓아 누워 며칠을 고생하는 엄마의 삶을 보고 자란 나는 늘 생각했다.
나 자신을 먼저 챙기지 못하는 일상을 살면서 엄마는 즐거워하시지 않았다. 당신이 얼마나 고생을 하며 사는지 너는 알지? 하는 식의 분위기를 풍기곤 했다. 짧은 내 생각의 결론은 “결혼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지금 나의 모든 상황은 환경의 영향도 있겠지만 어떤 결정에 대해 내가 선택을 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것 아니던가.
몸이 약해 자주 아프셨던 엄마를 보면서, 나는 늘 상비약을 챙겨 다니면서 조금이라도 몸이 안 좋은 것 같으면 아프기 시작하기도 전에 약을 먹곤 했다. 나 자신은 내가 먼저 챙겨야 한다는 강박 비슷한 습관이 생겼던 것은 아닐까. (물론 지금은 약 남용을 하지 않는다) 십 대 시절부터 단단하게 자리 잡았던 “결혼하지 않는 삶”에 대해 뿌리 깊이 흔들리게 한 사람과 지금은 같이 살고 있지만,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않다.
가족을 위한 요리는 아주 가끔 하고, 내가 먹고 싶은 요리를 한다. (반드시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 것에 그리 중점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은 가고 싶을 때 잠깐씩 가고 휴식기를 가진다. (그래서 새로운 일에 자주 도전한다.)
집안일은 하고 싶을 때 하고, (매일 청소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던데 난 그렇게 부지런하지 않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해서 그 시간을 꼭 가진다.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일을 가장 우선순위로 둔다.
결혼을 하고 생명을 잉태하여 살을 찢는 고통으로 낳아 곱게 길러 최선을 다해 양육하고 있지만,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부모의 바람이다. 진심으로 양육을 하더라도 아이는 자신 나름의 가치관으로 바르게 또는 엄마 생각과 다르게 자라날 것이다. 내가 그렇게 자라 온 것처럼 말이다. 아이가 자라는 시간 역시 내가 사라지는 시간이 아니라, 엄마인 나도 자라나는, 성장하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를 먼저 찾고! 내가 무엇을 할 때 즐거운 사람인지 인지하며 살아가고 싶다.
나는 세상에 있는 각양각색의 핑크빛을 좋아한다. 핑크빛 스팽글이 알알이 박힌 여름 샌들, 왕 진주알이 달린 커다란 핑크 리본핀, 하늘하늘 잔꽃무늬가 있는 핑크 시폰 원피스, 은은한 펄감 들어있는 연 분홍, 진 분홍, 네일아트는 내게 가장 잘 어울린다. 가끔은 나만을 위해 꽃집에 들어가 분홍 빛 꽃다발을 안아 들고 온다. 그윽한 꽃향기를 맡으며 시를 쓰려 책상에 앉을 때 나는 나에게 가장 친절한 사람이 된다. 그럴 때 나는 마음이 더 선명해 진다.
얼마 전 10년 만에 대학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만났다. 10년 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만나도 이렇게 편안하고 서로를 잘 아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가슴 벅찼다. 그동안 지내온 일들을 나누며 친구가 말했다.
“선애는, 예전 그대로구나.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치면 그 상황에서 가장 좋은 길은 무엇일지 찾고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모든 시선을 집중했었지. 여전히 너는 긍정적이고 밝고 심플한 사람이야.”
친구는 나를 처음 봤던 20대 때도 지금처럼 그런 사람이었다고 했다. 내 딴엔 그때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은데, 최근 여러 경험을 통해 내가 많이 변화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란다. 나는 원래 단순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단다. 나를 잘 알고 일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오래된 친구가 있다니 입꼬리가 귀에까지 올라가 있다.
삶은 복잡하기도 하고 풀어야 할 문제들 가운데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차 한잔 하며 서로를 다정하게 안아줄 수 있으니 삶은 때로는 달콤하다. 때때로 성장하고파서 독서를 하고 사색을 했던 그 시간 들이 나를 어려움 가운데서 긍정의 지푸라기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늘은 집 앞 꽃집에 들러서 9월 저녁 하늘에 걸린 핑크빛 노을을 기다려야겠다. 하늘색과 흰 구름과 연보라와 핑크가 그라데이션 되는 잠시 잠깐만 바라볼 수 있는 가을의 화려한 스케치북을 감상하러 산책을 나가야겠다.